[중소병원 좌담회②] 2차병원 살아야 지역의료 산다
상종 평가 포함된 ‘입원전담전문의’ 인력 블랙홀
세분화되는 전문과목…수련체계 손질 必
"2차→3차병원 환자 의뢰 시스템 복구해야"

중소병원이 위기다. 코로나19 이후 경영환경 어려워지면서 경영 위기는 생존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형적인 의료 인력시장을 대표하는 수도권 대형병원 인력 쏠림은 중소병원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인력 부족은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구인난이 악화될수록 인건비는 폭증하고 있다. 경영악화를 막기 위한 병원들은 자구책으로 진료를 더 늘리고 싶어도 인력 부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정부가 지역·필수의료 대책 일환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하자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청년의사는 중소병원이 느끼는 위기감을 진단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 청년의사 박기택 편집국장
토론: 김태완 인천사랑병원장
박인호 목포한국병원장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
유인상 뉴고려병원장
(가나다 순)


중소병원장들은 경영난 가중 요인에 상급종합병원 중심의 의료 정책이 있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중소병원장들은 경영난 가중 요인에 상급종합병원 중심의 의료 정책이 있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중소병원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상급종합병원 중심 의료 정책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설계된 제도들이 2차 병원 역할 축소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선택진료비 폐지에 따른 손실 보상 방안으로 지난 2015년 신설된 의료질평가지원금 제도가 대표적이다. 상급종합병원 보상 위주 지표로 설계되면서 종합병원을 비롯한 중소병원이 소외되고 있다. 실제 의료질평가지원금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이 지급되는 곳도 상급종합병원이다.

중소병원 의사 인력 ‘블랙홀’이라는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도 마찬가지다.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인력 지표로 입원전담전문의가 신설되면서 중소병원 인력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중소병원들은 초세분화 된 전문의 양성 시스템도 인력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소병원들은 이런 구조에서는 아무리 의대 정원을 늘려도 소용 없다고 비판했다. 의료전달체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정책적 고민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급종합병원만 잘 굴러가면 의료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상급종합병원 중심 지원체계…중소병원 '인력 블랙홀'

사회자: 의료정책 초점이 상급종합병원에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김태완: 상급종합병원 선택진료비 보상을 위해 만들어진 의료질평가지원금 제도가 도입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바뀐 의료 상황에 맞게 변화가 필요하다.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원이 맞출 수 없는 시설·인력기준으로 줄 세우기식 평가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의료 현실과 맞지 않는 지표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고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보상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박진식: 할 수 ‘없다’와 ‘있다’의 문제라기보다는 할 필요가 없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신생아 중환자실을 왜 중소병원까지 설치해야 하나. 차라리 별개로 평가해 지원금을 주면 되는데 동일한 평가 잣대로 할 수 없거나 필요 없는 부분까지 점수를 매겨 ‘0점’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유인상: 의료질평가지원금 제도는 상급종합병원에 집중하고 중소병원을 도울 수 있는 수가를 별도 책정하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포함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도 중소병원 인력이 유출되는 원인이다. 내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과 의사들이 입원전담전문의를 뽑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다 나갈 정도다.

김태완: 결국 진료기능을 유지해야 하는 병원은 인력을 채워야 하는데 의사 수는 부족하고, 사람을 뽑을 방법이 없으니 인건비를 높여서라도 채용하려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마저도 채용이 어려워 구멍이 뚫리고 있다.

(왼쪽부터) 유인상 뉴고려병원장과, 박인호 목포한국병원장, 박인식 세종병원 이사장, 김태완 인천사랑병원장은 상급종합병원 중심 의료정책이 유지되는 한 중소병원 인력난을 해소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왼쪽부터) 유인상 뉴고려병원장과, 박인호 목포한국병원장, 박인식 세종병원 이사장, 김태완 인천사랑병원장은 상급종합병원 중심 의료정책이 유지되는 한 중소병원 인력난을 해소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의사들이 2차병원을 꺼리는 이유

박진식: 인력난 이면에는 의사 업무 패턴 변화도 있다. 과거 한 명이 하던 일을 두 세 명이 나눠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더 많은 의사 인력이 필요하다. 전문의 수련제도도 문제다. 과거에는 내과 의사면 배 아프다는 환자도, 천식 환자도 다 진료했다. 하지만 지금은 호흡기내과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환자도 그에 따라 본다. 그렇다보니 조금 더 통합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2차 병원 근무를 더 어려워한다. 대학병원 수련과정이 과연 진짜 전문의 수련을 위한 과정인지 의문이다. 2차 병원 인력난이 점점 가중되는 배경에는 전문과목의 초세분화 문제도 있다.

유인상: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대안으로 통합진료팀 구성을 고민하고 있다. 유방외과 의사들은 맹장수술을 안 하고 내과 전문의가 있어도 세부분과 전문의가 없으면 응급실에 온 환자를 볼 수가 없다.

박진식: 지금은 대학병원 교수들조차 자기 분야를 벗어나면 못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가르치겠나. 지금은 인력 유출로 생각하고 달가워하진 않지만 과거처럼 전공의 수련 과정에 2차 병원에서 통합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유인상: 3년으로 단축된 수련시스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내과 전임의가 오면 3~4년차 전공의 수련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직접 환자를 대면한 적도 없고 대면을 해도 본인 이름으로 환자를 본 적도 없고 입원시킨 경험이 없으니 2차 병원에서는 못하겠다는 거다. 심지어 응급실에서 환자 1명 보려면 세부분과별로 의사 6~7명이 내려와야 할 정도다. 과거 심장내과와 호흡기내과 의사만 와도 다 해결할 수 있었다면 요즘은 신장내과, 내분비내과 등 모든 과가 총출동한다. 2차 병원에서는 밀려오는 응급환자를 빠르게 처리해줘야 한다. 앞으로 노인환자가 늘면 복합 만성질환 환자를 봐야 할 텐데 걱정이다.

중소병원 인력난과 경영난, 타개책은?

사회자: 단순한 의사 부족을 인력난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중소병원 인력난과 경영난 해결책을 제시해 본다면.

김태완: 응급·중증환자 해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에서부터 문제가 되고 있다. 응급실은 평가 항목마다 점수를 매기고 이에 따라 수가를 반영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환자를 일정 정도 이상 커버했다면 해당 기관에 일률적으로 수가를 차등해 구간별로 나눠 수가를 지급하는 편이 낫다. 그래야만 2차 병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의료기관에도 재투자할 수 있다. 이런 방향이 아니라면 2차 병원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 것이다.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해 인력을 더 채우라고 한들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박진식: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할 때 중증환자 비율이나 전문질환군 비율을 본다. 그런데 이 환자들을 2차병원에서 보지 못하는 환자들인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 2차에서 3차 병원으로 의뢰를 해야 하는 환자를 본 경우 수가를 더 주는 게 맞지만 지금은 2차 병원에서 볼 수 있는 병을 3차 병원에서 봐도 수가를 더 주는 셈이니 상급종합병원들이 규모를 키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진단명으로 중증도를 나누다보니 엉뚱하게 왜곡이 됐다. 의료전달체계에 맞춰 2차병원에서 의뢰한 환자를 얼마나 수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수가를 더 주는 방향이 맞다. 이런 방향이라면 지역 내 협조적인 의료 생태계가 생기고 2차 병원의 역할과 역량도 커질 수 있다.

박인호: 지역은 중소병원이 제 역할을 못하면 실질적으로 응급·필수의료는 망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욱이 지역 중소병원들이 응급의료를 담당하지 않으면 환자들의 이동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또 중소병원이 중소기업이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 세제혜택을 제공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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