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병원 좌담회]① 코로나가 바꿔 놓은 의료생태계
치솟는 인건비에 경영난 허덕이는 중소병원들
대형병원 선호하는 환자들, 무너진 의료전달체계
의료진 압박하는 사법부 판결, 방어진료로 이어져

중소병원이 위기다. 코로나19 이후 경영환경 어려워지면서 경영 위기는 생존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기형적인 의료 인력시장을 대표하는 수도권 대형병원 인력 쏠림은 중소병원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대학병원 수도권 분원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인력 부족은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고, 구인난이 악화될수록 인건비는 폭증하고 있다. 경영악화를 막기 위한 병원들은 자구책으로 진료를 더 늘리고 싶어도 인력 부족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다.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대책 일환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고 의료계는 반발하고 있다. 청년의사는 중소병원이 느끼는 위기감을 진단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 청년의사 박기택 편집국장
토론: 김태완 인천사랑병원장
박인호 목포한국병원장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
유인상 뉴고려병원장
(가나다 순)


중소병원장들은 코로나19 이후 심각한 경영난이 의료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중소병원장들은 코로나19 이후 심각한 경영난이 의료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청년의사).

코로나19 일상회복은 중소병원들에는 먼 이야기다.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의료 지형은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지역 병원을 떠나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발길을 돌린 환자들의 회귀 속도도 더디기만 하다.

중소병원 경영난은 건강보험 진료비 통계에서도 드러났다. 지난해 상반기 상급종합병원 진료비가 큰 폭으로 상승한데 비해 같은 기간 종합병원은 증가폭이 미미했고 병원은 오히려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종합병원과 병원은 외래 진료비 감소 타격이 컸다. 이들의 외래 진료비 감소율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3.82%, 22.42%였다.

경영난을 가속화한 원인 중 하나는 인력난이다. 수도권 대형병원 인력 쏠림으로 인해 인건비가 걷잡을 수 없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 소송 등 위험 부담이 큰 응급 등 필수 분야 인건비는 부르는 게 값이다. 이에 의료현장에서는 의료생태계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코로나 팬데믹이 부른 경영난, 버텨야 사는 중소병원들

사회자: 중소병원이 위기라고들 한다. 코로나19 이후 경영 환경은 어떤가. 의료 현장에서는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나.

박인호: 그저 버티고 있다. 지난해 병원에서 낸 자체 통계에서도 외래·입원환자 감소율이 4% 정도였다. 예상했던 것 이상이다. 전남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어 코로나19 이전 병상가동률 90% 이상을 유지했다면 지난해 70~80%로 10%p 이상 떨어졌다. 이에 따라 수익률도 전년 대비 4~5% 하락했다. 지난해도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심정으로 버텼지만 향후 4~5년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유인상: 상급종합병원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중소병원) 환자풀이 크게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동했다. 특히 수도권은 중소병원으로 환자 유입이 급감했다. 300병상 중 95% 정도 유지되던 입원환자가 평균 220~230병상으로 감소했다.

김태완: 우리 병원도 지난해 데이터를 보면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외래환자는 15% 가량 감소했고, 입원환자는 20% 정도 줄었다. 2차 병원을 건너뛰고 3차 병원으로 가는 환자 비율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도 피부로 많이 느끼는 부분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의료전달체계가 더 엉망이 된 것 같다. 우리 병원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환자들도 진료비 차이가 크지 않으니 3차병원에 가겠다고 진료의뢰서를 써달라고 한다. 환자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이지만 2차병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환자들도 3차병원으로 몰리면서 결국 대형병원 쏠림을 악화시킨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유인상: 대표적으로 2차 병원이 흔들리면서 응급의료체계가 붕괴됐다. 상급병원 중심의 ‘줄 세우기식’ 정책으로 인해 중소병원의 본래 역할들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우리 병원 뇌수술 전담인력만 4~8명이 있다. 오히려 응급수술이나 외상수술은 중소병원 시스템이 효율적이다. 그런데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이후 또 다시 권역으로 몰아주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더라도 상급병원으로 환자 이동이 이뤄져 재정 효과성일 떨어지면 규모를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상급병원 응급실은 과밀화되고 대기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박진식: 하루 이틀 사이 벌어진 일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쌓여 온 문제가 이제 누구나 다 느낄 정도로 커진 것 같다. 의료전달체계에서 2차병원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중소병원들도 대형화되고 전문성을 키워오면서 2차 병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정부 정책은 3차 병원으로 가야 환자가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렇다보니 2차 병원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떨어졌다. 때문에 역할이 줄어들면서 역량이 축소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2차 병원 역량을 키워야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지속할 수 있다.

(왼쪽부터) 유인상 뉴고려병원장, 박인호 목포한국병원장(ⓒ청년의사).
(왼쪽부터) 유인상 뉴고려병원장, 박인호 목포한국병원장(ⓒ청년의사).

의료진 역량은 줄고 인건비는 치솟고

사회자: 중소병원 경영난의 원인 중 하나로 인력난이 꼽힌다. 인력 채용을 위해 인건비를 올려주다 보니 경영을 압박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진료과목 의사들이 근무 시간이나 강도 등을 정해 임금 수준을 맞추는 일종의 ‘담합’ 양상을 보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박인호: 의사 정원 가운데 15명이 공석이다. 소화기내과와 영상의학과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소화기내과는 외래환자와 입원환자 커버할 수 있는 인력이 5명 정도 필요한 상황인데 일단 면접을 보면 입원환자는 보지 않으려고 한다. 모두 내시경 검진 전담을 원한다. 또 카카오톡 등 대화 채널이 많다보니 임금 정보도 빠르게 퍼진다. 응급의학과도 지난해 임금을 올려줬는데 올해 3명이 나가면서 임금 인상폭이 또 다시 상승됐다. 응급·필수분야 임금은 60~70% 정도 다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줘도 못 구한다. 그보다 더 많이 줘야 오겠다고 하니 문제다.

유인상: MZ세대 의사 채용 면접을 보면 독특한 문화가 보인다. 이 때문에 의료 인력은 더 부족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몇 주 전 소화기내과에 지원한 의사들 채용 면접을 봤는데 지원한 12명 모두 내시경실 전담의를 하겠다고 했다. 입원환자나 외래환자를 보겠다는 이는 단 1명도 없었다. 뿐만 아니다. 임금 보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더 중시한다. 임금을 덜 받더라도 시간제 혹은 요일제 근무를 요구한다든지 일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박인호: 요즘은 의대생들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적다보니 임금에 대한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전임의로 있든, 임상교수로 있든 편하게 있고 싶어 한다. 그러니 응급환자나 입원환자, 외래환자 보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분위기다.

(왼쪽부터) 유인상 뉴고려병원장, 박인호 목포한국병원장,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 김태완 인천사랑병원장(ⓒ청년의사).
(왼쪽부터) 박진식 세종병원 이사장, 김태완 인천사랑병원장(ⓒ청년의사).

김태완: 우리병원 외과 전문의가 4명인데 모두 40~50대다. 초빙 공고를 내고 젊은 의사들이 지원해서 면접을 보면 응급센터가 있는 종합병원이니 응급환자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응급환자를 안 보겠다고 한다. 외과 세부 전문의 선택할 때 응급환자를 보지 않는 유방·갑상선 분야 지원이 80% 넘는다고 한다. 심뇌혈관질환 뿐 아니라 복막염이 생겼을 때 병원 가도 해결할 의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게 현실이다.

유인상: 무엇보다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의료인들 역량도 바뀌었다. 호흡기 감염병을 진료하지 않은 의료인들은 3년간 다소 느슨했던 것도 사실이다. 의사와 간호사 역량을 경제적 효과성을 따져보면 3분의 1정도 감소한 것 같다. 과거 외래환자 50~60명을 쉽게 처리했다면 요즘은 30~40명만 넘어도 힘들어한다. 과거 혼자 해냈던 일을 지금 하려면 둘이 필요하고, 둘이 할 일은 셋이 필요한 상황이다. 배출된 인력들의 역량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 법적 기준을 넘어서는 인력을 배치하고 있음에도 과거보다 업무 피로도는 줄지 않았다. 인력 부족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게 이런 의미다.

방어 진료를 부르는 사법부 판결…필수의료 피하는 의사들

사회자: 최근 사법부 판결이 의료계에 미치는 파장도 큰 것 같다.

박진식: 그렇다. 응급실 환자가 왔는데 안 보려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밤에 혹시 문제 생기면 책임질 거냐고 하더라. 결국 여러 사건들을 통해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커졌고 그 역풍이 이제 나타나고 있다. 또 외래환자보다는 입원환자 보는 리스크가 더 크니 돈 덜 받고 말지 감옥갈 일 만들 게 뭐 있냐는 생각인 거다. 점점 입원진료를 두려워하는 곤란한 상황이 됐다.

김태완: 최근 독감 치료 주사를 맞은 후 고등학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하반신이 마비된 사건으로 병원이 6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런 판례가 나오면 의사들은 환자를 보며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방어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방어 진료를 하지 않으려니 응급환자나 입원환자를 기피하게 되는 현상이 굳어지는 것 같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