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건세 초대 대한재택의료학회장
부실한 정부 대신 재택의료 플랫폼 역할 목표
"재택의료는 '블루오션' 시장 활성화 지원해야"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까지 2년도 남지 않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라는 경고조차 진부한 나라다. 발표되는 정책과 제도마다 초고령사회를 대비한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오는 2025년까지 커뮤니티케어 제공 기반을 갖추겠다고 했다. 재택의료는 그 일부다.

그러나 한국은 "'재택'이라는 개념조차 낯선 나라"이기도 하다. 정부가 설정한 계획에 따르면 이제 2년 안에 커뮤니티케어 시스템을 구현하고 재택의료와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재택의료는 여전히 신념 없이는 발 들이기 어렵고 재택의료기관과 의료진은 '사서 고생하는' 이들로 여겨진다.

이런 상황에서 재택의료만 전문으로 하는 학회에 이목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다. 지난 2월 17일 발기인 대회를 갖고 공식적인 출범 준비에 들어간 대한재택의료학회다. 대학 교수와 의사 중심이라는 의학회 공식을 깨고 학계와 현장, 의료와 돌봄까지 사회 곳곳에서 재택의료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날 초대 회장에 선임된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이건세 교수는 회원들을 "재택의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직감'으로 뭉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 교수가 말하는 직감은 초고령사회를 코앞에 둔 절박감이기도 하고 의료의 새 지평에 대한 기대감이기도 하다.

이 교수 역시 지금처럼 공공의료 중심 재택의료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위기감과 의료의 '블루오션'에 대한 기대를 모두 드러냈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원내 진료만 아닌 다른 돌파구를 찾는 이들도 재택의료를 주목하고 있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수립해 도전하는 이들도 생기고 있다. 이 교수는 이런 현장의 경험과 고민을 모아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재택의료 모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택의료학회는 이를 모색하는 소통과 교류의 장이자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목표다.

청년의사는 지난 2월 27일 이 교수를 만나 한국 재택의료 현주소와 앞으로 방향을 짚고 이런 상황에서 재택의료학회의 목표가 무엇인지 들었다.

대한재택의료학회 초대회장에 선임된 건국대 이건세 교수는 지난 27일 청년의사와 만나 재택의료 시장 활성화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학회가 플랫폼으로서 역할하겠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대한재택의료학회 초대회장에 선임된 건국대 이건세 교수는 지난 27일 청년의사와 만나 재택의료 시장 활성화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학회가 플랫폼으로서 역할하겠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 '재택의료' 분야에서 임상 전문가가 모인 첫 학회로 알고 있다. 재택의료학회가 생각하는 재택의료란 무엇인가.

재택의료는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진료실이 아니라 지금 본인이 머무는 공간에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시작한다. 내가 의사에게 갈 수 없다면 의사가 내게 오는 것이다. 반드시 '집'일 필요도 없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머무는 곳이라면 바로 그곳이 재택의료 공간이다. 노인들이 하루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노인정, 노인회관에서 의료를 실시하면 그것도 재택의료가 된다. 최근 늘어나는 데이케어센터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곳으로서 공간의 개념이 확장되면 그만큼 재택의료의 가능성과 필요성도 명확해진다.

- 정부도 초고령사회를 맞아 커뮤니티케어를 강조하며 재택의료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정책 전문가로서 지금까지 정부 성과를 평가한다면.

처음부터 큰 그림은 물론 세부적인 설계도 부족했다.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시범사업이 대부분 마감됐는데 새로운 사업 내용은 구체적으로 공유되지 않고 있다. 시범사업을 하긴 했는데 장단점과 성과, 앞으로 가능성, 예산 확보와 제도 보완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나 보건복지부 등 제도를 만든 쪽은 오로지 본인들 시각에서만 해석하고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쳐낸다. 시범사업을 그렇게 하고도 성과가 축적이 안 되니 확산도 안 된다.

- 이번 정부도 초고령사회에 대한 정책적 대비를 강조하고 있는데.

내 눈에는 그런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지조차 안 보인다. 정권이 바뀌면서 커뮤니티케어 사업을 그저 이전 정부 정책으로 치부해 무위로 돌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비단 나 혼자만의 걱정이 아니다. 정부 차원에서 고령시대를 어떻게 대응할지 뚜렷한 접근법이 절실한 때다. 커뮤니티케어는 고령사회로 가는 큰 물줄기다. 커뮤니티케어라는 그림 구도를 잡고 그 세부로서 재택의료가 작동해야 하는데 어려워 보인다. 우선 그림을 제대로 그려내 완성하려는 사람이 없다.

- 학회가 나서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뜻인가.

지금으로선 그 수밖에 없다. 큰 그림은 못 그려도 세부 어느 한 부분만큼은 계속 파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택의료와 연계한 다직종이 모여 학회를 만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재택의료 플랫폼으로 자리잡고자 한다. 물론 플랫폼도 정부가 만들고 제도화로 이어가야 하지만 지금 정부는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정책 소통의 장으로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공단 같은 정부 기관도 참여하길 바라고 있다.

일본은 10년 보는데 우리는 2~3년하고 성과 없다며 폐기

- 커뮤니티케어와 재택의료에서 일본의 사례가 자주 언급된다. 일본을 참고해야 하느냐에 대해 의견이 갈리는데.

일본 후생노동성 공무원들을 만나면 한국과 일본이 쌍둥이 같다고 한다. 일본 정책을 한국이 몇 년 후 따라 하면서 실패도 똑같이 한다는 거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을 살펴봤을 때 우리가 참고할 사례는 일본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로나19 이전인 3~4년 전만 해도 일본 재택의료나 재택호스피스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재택의료 담당 기관과 의료진이 꾸준히 늘었고 이제는 재택의료 현장이 완전히 달라졌다.

- 그렇게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보나.

단기간에 평가 내리지 않는 점이다. 적어도 5~10년을 두고 평가한다. 제도 설계나 추진 속도가 우리와 전혀 다르다. 중앙 정부가 제도 설계를 정교하게 하고 투자도 많이 한다. 퇴원환자 지역사회 연계사업 때문에 일본에 갔을 때 현지 공공병원 자료를 요청했는데 일부 병원은 준비 단계라 외부에 공개할 내용이 없다고 답했다. 우리라면 '아직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업 설계는 엉망으로 해놓고 준비도 급박하게 하고 2~3년 하자마자 평가하고 성과 없다고 폐기한다.

- 제도적 측면에서 우리가 채택할 만한 것은?

현재 시범사업 중인 재택의료센터에서 의료진을 파견하는 모델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장기요양보험에서도 돈을 지불하고 방문간호스테이션(사업소) 개념의 의료기관 보급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도 정기적인 의료비 청구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고 재택의료 대상자 범위도 넓혀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재택의료도 '돈벌이' 시켜줘야

- 한국과 일본이 '쌍둥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일본의 길을 답습하지 않으면서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을까.

어쩌면 일본보다 더 효율적인 재택의료가 가능할 수도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파트 중심 주거다. 생활의 장소 차이가 재택의료 양상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아파트 단지에 의사와 간호사 등이 상주하는 재택의료센터를 설치하고 고령층 공동식사와 정기검진을 실시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재 시 빠르게 파악해 조치할 수 있고 재택의료 전문가들이 전 세대를 상시 케어할 수 있다. 재택의료기관과 주거지가 초밀접하니 비용 감축 효과도 크다.

재택의료 현장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이를 실현하려면 법·제도적 체계가 잡히고 투자가 뒤따라야 하는데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 아무것도 못 한다. 정부는 괜히 일 키웠다가 사고 나면 뒷감당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고 있다.

- 재택의료는 공공의료적 성격이 강조되다 보니 민간의 참여가 '지나친' 상업화와 계급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도 이를 염려하는 것은 아닐까.

의료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누려야 하는 기본 권리지만 제도화 과정에서 현실적 문제를 피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 공공의료 수준으로는 재택의료 수요에 완벽하게 부응할 수 없다. 퀄리티도 낮다. 제도도 미흡하고 인력은 한계고 투입하는 예산은 적기 때문이다. 보건소에서 재택의료사업을 해도 상담 수준에 그친다. 즉, 상담만 해도 되는 사람만 방문한다. 드레싱하고 혈당 체크할 여유가 없다. 진정한 의미의 방문도 아니고 의료도 아니다.

그런데도 재택의료는 공공의료니까 돈벌이하면 안 된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돈벌이 시켜줘야 한다. 어떤 분야든 돈 있는 사람이 돈 쓰고 이용해야 커진다. 취약계층에게 해주는 수준이면 아무리 해도 공급이 늘지 않는다. 지금 재택의료는 수요가 워낙 커서 돈 벌 생각 없이 들어온 분들도 '벌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 어떻게든 이 시장을 현실화하고 빠르게 키워야 한다.

- 의료계 비즈니스 모델로서 재택의료를 키워야 한다?

그렇다. 재택의료는 비즈니스로서 블루오션 그 자체다. 개원을 준비하는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진료실 안에만 머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택의료를 활로로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 재택의료 전문을 표방한 이들 가운데 시장 선점을 염두에 둔 이들도 있다. 시작은 어렵지만 일단 체계만 갖추면 경쟁력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쟁자는 적은데 필요로 하는 대상자는 많다. 지금 수가 수준으로도 수익이 나는 거다.

'신념'이든 '사업'이든 재택의료 피할 수 없다는 '감'으로 모였다

- 재택의료 시장 형성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파격적일 정도는 아니라도 수가 구조를 조금 더 손봐야 한다. 소득에 따라 본인부담금에 차등을 두고 비급여 규제를 조율하는 정책적 뒷받침도 뒤따라야 한다. 의료 공급 측면에서 질 관리는 어떻게 할지 고민도 필요하다. 이를 모두 아울러 재택의료 시장 형성을 도와야 한다.

- 그렇다면 의료계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건강 형평성이나 접근성 향상, 의료 사회 운동 차원에서 재택의료를 하는 사람이든 의료 분야 블루오션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선점하려는 사람이든 모두 재택의료 시장에 들어와야 한다. 본인 의술을 보완하고자 재택의료를 선택하는 사람도 대학과 병원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바라는 이들도 모두 재택의료 일원으로서 함께 가는 방법을 모색할 때다.

우리 학회는 서로 출발점이 다르고 바라보는 도착지가 다르더라도 결국 재택의료는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는 '감'으로 모였다. 각자의 지향과 목표가 교차하고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쌓이는 경험과 고민을 어떻게 포용하고 발전적으로 직조하느냐가 재택의료학회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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