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의료학회 공식 출범…제도 정착 힘쓴다
"'의사가 환자 찾아가는 시대' 준비해야"
민관 협력 이끌고 효과적인 대안 낼 것

지난 2일 공식 출범한 대한재택의료학회는 재택의료 활성화를 위한 공론장을 만들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사진 왼쪽부터)이건세 초대 회장, 강윤규 명예회장, 박건우 이사장(ⓒ청년의사).
지난 2일 공식 출범한 대한재택의료학회는 재택의료 활성화를 위한 공론장을 만들고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했다. (사진 왼쪽부터)이건세 초대 회장, 강윤규 명예회장, 박건우 이사장(ⓒ청년의사).

2년 앞으로 다가온 초고령사회 원년을 앞두고 재택의료 전문 첫 번째 학회가 공식 출범했다. 지역과 직역, 전문과로 흩어진 재택의료 전문가를 하나로 묶는 플랫폼이자 현장과 정책을 잇는 마중물이 되겠다는 각오다.

대한재택의료학회는 지난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초대 회장은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이건세 교수, 이사장은 고려의대 신경과 박건우 교수가 맡았다. 국립재활원 강윤규 원장이 명예회장으로 집행부에 참여했다.

이날 열린 창립 기념 심포지엄에서는 한국 재택의료 현주소를 짚고 우리보다 앞서 재택의료 제도 정착을 고민한 미국과 일본 사례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실제 재택의료기관 활동 경험을 듣고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와 접점을 모색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초대 집행부는 재택의료가 올바르고 신속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한 민관 공조를 강조했다. 정부 정책이 시범사업을 맴돌고 재택의료 현장이 '신념 있는' 극소수 의료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제도 활성화를 위해 효과적인 대안을 내겠다고 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재택의료학회 임원진과 기자단 간 일문일답.

- 재택의료에 참여하고 학회까지 결성한 이유는?

박건우 이사장: 대학병원에서 치매와 파킨슨 환자를 주로 진료해왔다. '한번 와 달라'는 요청에 자택을 방문했다가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환자에게 병원으로 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야 하는 시대다. 이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고민에서 재택의료학회가 출범했다.

이건세 회장: 지난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커뮤니티케어전문위원회와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일차 의료기관과 병원, 보건소의 역할은 물론 돌봄과 의료를 어떻게 결합할지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 사업과 정책만으로는 제약이 크다고 느꼈다. 각 분야 전문가가 모여 경험을 공유하고 체계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해 참여했다.

강윤규 명예회장: 재활원장으로서 공공의료기관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재활원도 장애인 방문진료와 방문재활이라는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의료(보건)와 복지 제도는 정부가 주관하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서 민과 관이 함께 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 제도를 어떻게 운용해야 환자와 국민 모두를 위한 제도가 될 수 있는지 찾고 싶었다.

- 학회 정체성을 재택'의료'로 규정한 이유는? 재택의료가 케어(돌봄)까지 포괄하지 못하면 '왕진'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있다.

박건우: 병원에 갈 수 없는 환자가 필요로 하고 또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 모두 재택의료에 포함된다. 그러나 복지(돌봄)에 비해 재택의료 서비스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재택의료를 제대로 키울 때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약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를 둘러싼 다양한 직역이 함께 하는 학회가 되겠다.

강윤규: 지금까지 '건강'을 구성하는 요소 중 사회적 요인은 복지 영역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의사가 집으로 가 환자를 둘러싼 사회 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가족이 있는지 경제 형편은 어떤지부터 목발은 잘 맞는지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건강을 좌우한다. 사회 구조를 바꾸는 논의에 의료가 더 이상 빠질 수 없다. 보건과 복지를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보고 분절됐던 보건과 복지를 하나로 엮는 것이 재택의료다.

- 재택의료 정착은 수가가 관건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현재 행위별 수가제로는 재택의료도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건세: 행위별 수가제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맞다. 또한 요양병원과 급성기병원으로 향하던 재정을 재택의료로 돌려 새로운 흐름을 만들려면 단순히 수가 한두 개 추가하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 재택의료 서비스 전체를 아우르는 패키지형 수가가 나와야 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치료사에 대한 수가를 신설하고 일본처럼 방문진료 제공 형태와 성과에 따라 가산수가도 적용해야 한다. 환자는 물론 가족과 치료 계획을 수립할 때 상담수가를 줘야 한다. 의료기관들이 방문진료 전문은 아니라도 병행하는 형태부터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박건우: 방문진료 수가는 현재 시범사업 수가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차원에서 시범사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제성 분석과 검토가 이뤄져야 하나 제대로 안 되고 있다. 그렇다면 민간에서 이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학회도 이런 대안 모델을 준비하고 한다. 민관이 함께 바람직한 수가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

- 대학병원 의료봉사가 지역 의료기관 수요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처럼 재택의료도 지역 내 의료 수요를 흡수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지역사회 일차 의료기관이 재택의료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데.

박건우: 재택의료 대상 환자는 '고관절 골절로 외출이 불가능한 다세대주택 4층 거주자' 같은 사람이다. 이런 환자가 재택의료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지역 의료기관을 찾아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또 지역 의료기관에서 이런 환자를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 이상 의료기관을 방문할 수 없는 환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답을 찾는 것이 재택의료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이건세: 대한의사협회 커뮤니티케어 특별위원회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다. 시각을 바꿔봤으면 한다. (재택의료기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본인 의원을 다니던 환자가 사고나 노화로 방문이 어려울 때 의사가 찾아가는 것도 재택의료다. 필요하면 의사가 단골 환자를 얼마든지 직접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세우자는 것이다.

- 일본은 재택의료 정착 시기를 베이비부머 세대 전원 후기고령자(75세 이상)가 되는 2025년으로 본다. 그럼 한국은 2030년까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가능할까.

이건세: 지금으로선 어렵다. 현재 정부 기조에서 재택의료 활성화를 위해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을지 모르겠다. 정부 의사결정과 정책 성과가 대통령 의지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요양이나 급성기 의료 흐름을 재택의료로 바꾸는 과정에서 발생할 사회 갈등을 조율하는 것부터 힘든 과제다. 정부 정책과 제도가 사회를 변화시키지만 지금으로서는 환자와 국민이 재택의료를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게 먼저 같다. 따라서 재택의료 경험을 확대하는 게 우선 과제다. 오는 2030년에는 방문진료를 충실히 제공하는 기관이 대도시에 최소 4~5개는 자리 잡길 바란다.

박건우: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더 알려져야 한다. 찾는 사람이 있어야 공급도 발생한다. 지금은 의사가 환자에게 방문진료를 제안해도 '그런 게 되냐'는 반응부터 돌아온다. 필요하면 의사가 환자에게 갈 수 있고 환자에게 기꺼이 가려는 의사가 있으며 이를 위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 다음 단계로 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 재택의료 중요성과 별개로 여건은 어렵다. 앞으로 재택의료하는 의사가 많이 나올까.

박건우: 어디나 미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웃음). 사실 지금 재택의료가 의사를 끌어들일 요인은 별로 없다. 경제적 유인 요소도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처럼 제도보다 먼저 재택의료에 뛰어든 이들도 있다. 의사로서 본인이 세운 당위와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환자를 찾아가는 길이 의사로서 가장 즐겁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려워도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도가 이들을 뒷받침하도록 목소리 내고 재택의료를 하겠다는 의사를 발굴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 학회가 할 일이다.

강윤규: 수가를 비롯해 제도가 뒷받침해야 겠지만 개인의 의지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도 만들어야 하다. 40년 전 의대생 의료봉사 광경과 지금 대학병원들의 지방 의료봉사 현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40년 동안 한국이 발전했는데 의료 사각지대는 여전하다. 제가 그랬듯 이런 문제의식이 동기가 돼 행동에 나선 의사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믿고 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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