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택의료 현장을 가다② 재택의료 새 모델 '이신칸'
방문진료 의사와 연계해 지역사회 차원 의료·돌봄 제공

고령화 사회도 아니고 이제 초고령화 사회다. 의료와 돌봄도 그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그 해법을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를 맞닥뜨린 일본에서 찾기도 한다. 일찌감치 재택의료로 눈을 돌린 일본은 인구 감소, 의료비 급증, 간병 지옥 위기 속에서 실험을 계속 하고 있다. 청년의사는 분당서울대병원 초고령사회의료연구소 이혜진 교수와 함께 일본 재택의료 현장을 찾았다. 일본은 동네의원부터 연 매출 1,000억원대 기업까지 모두 각자 방식으로 재택의료를 하고 있다.

암비스홀딩스의 재택형 의료병상 이신칸은 일본 재택의료 비즈니스 성공사례로 꼽힌다(사진 출처: 이신칸 공식 홈페이지).
암비스홀딩스의 재택형 의료병상 이신칸은 일본 재택의료 비즈니스 성공사례로 꼽힌다(사진 출처: 이신칸 공식 홈페이지).

[도쿄=고정민 기자] 집이 아닌데 재택의료가 된다. 병원이 아닌데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다. 골목상권에 진출한 대형프랜차이즈가 그 골목상권에서 환영받는다.

의사 출신 CEO 시바하라 케이이치 대표가 제시한 '재택형 의료병상' 모델 이신칸(医心館) 이야기다. 암비스홀딩스(アンビスホールディングス)는 재택 기능을 갖춘 요양시설과 지역 내 의료기관을 연계한 이 이신칸 모델로 약 8년만에 연매출 150억엔(약 1,450억원), 사원수 2,239명 대규모 사업체로 떠올랐다.

지난 17일 도쿄 마루노우치에 위치한 본사에서 30분을 달려 도착한 이신칸 교도(医心館 経堂) 주차장에는 '재택의료(在宅医療)' 표지를 단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이신칸 입주자를 찾아온 담당 방문진료 의사다.

이신칸 교도 상주 직원 48명 중 의사는 없다. 입주 전 치료 받던 주치의나 방문진료 의사가 그대로 이신칸을 방문한다. 사는 곳이 바뀌었을 뿐, 환자에게나 의사에게나 이신칸은 새로운 '집'으로서 재택의료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환자가 요청하면 이신칸에서 새 방문진료 의사를 소개한다. 계약은 따로 하지 않는다. 이신칸과 방문진료기관은 공생 관계다.

정원 52명인 시설에 간호사와 개호직이 각각 24명씩 근무하고 있다. 간호사는 파란 유니폼, 개호(요양서비스)직과 헬퍼는 자주색 유니폼을 착용한다.

(왼쪽)층마다 있는 간호스테이션.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라"는 오시바 본부장 말에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금세 업무에 몰입했다. (오른쪽) 이신칸 교도 2층 복도.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면회를 제한하고 있어 복도를 오가는 사람이 적다.
(왼쪽)층마다 있는 간호스테이션.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포즈를 취하라"는 시바하라 대표 말에 직원들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금세 업무에 몰입했다. (오른쪽) 이신칸 교도 2층 복도.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면회를 제한하고 있어 복도를 오가는 사람이 적다.

지역사회 의료와 돌봄으로 마지막까지 "나답게 살기" 지원

이신칸 입주 공간 기본 환경. 입주자는 여기에 본인이 쓰던 가구와 생활용품을 두고 자기만의 공간을 꾸릴 수 있다. 세면대와 화장실 모두 휠체어에 의지하는 입주자를 고려해 디자인했다.
이신칸 입주 공간 기본 환경. 입주자는 여기에 본인이 쓰던 가구와 생활용품을 두고 자기만의 공간을 꾸릴 수 있다. 세면대와 화장실 모두 휠체어에 의지하는 입주자를 고려해 디자인했다.

입주자들은 집에서 쓰던 가구와 생활용품을 그대로 가져온다. '인테리어'는 환자 몫이다. 모든 가정집이 나름나름 다르듯 이신칸 교도 52개 개인실 모두 자기만의 모습을 갖고 있다. 입주자는 평소 보던 TV 프로그램을 시간 맞춰 시청하고 탁상에 올려 놓는 사진을 철마다 바꾼다. 이신칸 운영본부 오시바 후쿠코 본부장은 "이신칸이 정말 집이 될 수 있도록 입주자마다 고유한 삶의 패턴을 존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면회도 자유롭다. 현재 방역 때문에 30분으로 제한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전에는 하룻밤 자고 가는 보호자가 많았다. 침대를 따로 가져다 둔 '집'도 있다. 보호자는 이신칸 담당 간호사와 케어매니저, 방문진료 의사와 함께 환자 진료와 생활 방향을 의논한다.

다툼이 없지는 않다. 낙상 등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본사 법무팀과 운영본부가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 합의점과 해결법, 재발 방지 대책을 고민한다. 시바하라 대표는 "법적 분쟁으로 번진 경우는 없다. 기본적으로 환자와 보호자가 우리 일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신칸도 이들 목소리에 늘 귀기울인다. 서로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에 원만한 해결이 가능하다"고 했다.

임대료와 식비, 관리비로 구성된 입주비는 월 14만9,400엔(약 142만원)이다. 입주 공간을 임대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 납부액은 다르다. 의료·간호·개호 비용은 의료보험이나 개호보험으로 보장받는다. 본인 부담금은 10~30% 수준이다. 이신칸 입주자 대부분 75세 이상 후기고령자라 10%만 부담한다. 방문진료도 동일하다.

이신칸 운영본부 간호개호부 다카하시 메구미 책임자는 "입주비에 의료와 개호 본인 부담금을 더하면 입주자 한 사람 당 한 달 평균 20만엔(190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설명 중간중간 "한국은 어떠냐"고 되묻기도 했다. 한국은 이신칸 같은 모델이 없어 직접 비교가 어렵다고 하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신칸은 건축 자재부터 인테리어 소재까지 환자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주로 휠체어를 이용하고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환자들을 고려해 벽마다 평균보다 낮은 위치에 목재 소재 손잡이를 설치했다.
이신칸은 건축 자재부터 인테리어 소재까지 환자 친화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주로 휠체어를 이용하고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 환자들을 고려해 벽마다 평균보다 낮은 위치에 목재 소재 손잡이를 설치했다.

지역사회 녹아든 이신칸…의료와 돌봄 연결고리

이신칸 교도는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다. 2차선 길 건너편이 바로 가정집이다. 입주자도 직원도 대부분 지역 주민이다. 방문진료 의사와 간호사, 약제사도 마찬가지다.

이곳은 도쿄에 세운 초창기 지점에 해당한다. 지난 2018년 문 열 당시에는 주민 반대도 있었다. 설명회를 열고 주민들을 찾아가며 설득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신칸은 지역사회에 녹아들었다. 인근에 거주하는 보호자는 가벼운 차림으로 찾아오고, 직원들은 대개 걸어서 퇴근한다. 주차장이 4칸 밖에 안 된다는 걱정에 다카하시 책임자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대답한 이유다.

지역 의료기관들도 이신칸을 반긴다. 시바하라 대표는 "이신칸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의사들이 많다"고 했다. 지역사회 재택의료의 좋은 협력자이자 동반자라는 거다. 이신칸과 연계한 방문진료 의사는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365일 24시간 대응' 역할 분담도 수월하다.

병원들도 연계 파트너로 이신칸을 찾는다. 퇴원 후에도 꾸준한 진료가 필요한데 요양병상도 못 찾은 환자들이 이신칸에 온다. 이신칸은 병원에서 환자를 인계받아 케어하면서 방문진료 의사와 연결시킨다. 의료와 돌봄을 병원에서 지역사회로 옮긴다는 정부 재택의료 구상과 맞아떨어진다.

이제 "어디서나 이신칸 설치를 환영한다"고 말하며 시바하라 대표가 웃었다. 의료와 돌봄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은 특히 호응이 크다. 이신칸이 연결고리가 돼주기 때문이다. 지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2014년 5월 첫 번째 지점이 문 연 이래 지금까지 53개 지점이 입주자를 받았다. 오는 2023년 4월 68개 지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신칸 서울' 가능할까?…법·제도 한계 뚜렷해

"이신칸 서울 어떤가. (이혜진 교수가) 직접 운영해도 된다. 병원이 분당이라고? 그럼 이신칸 분당 1호점은 이 교수에게 맡기겠다(웃음). 본사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한국에도 이신칸과 비슷한 시설이 있는지, 이신칸과 비교해 장·단점은 뭔지 질문한 시바하라 대표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신칸 서울'을 제안했다. 현재 한국 사회와 의료시스템을 봤을 때, 재택형 의료병상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CEO로서 사업성도 가늠했지만, 의사로서 판단이 앞섰다. '암비스 코리아'로 직접 진출이 어렵다면 분당서울대병원과 제휴해 노하우를 전수하겠다고 했다.

이신칸 서울 명예 대표가 된 이혜진 교수는 "하고 싶지만 법부터 바꿔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에서 이신칸과 가장 유사한 형태가 유료노인복지주택인데 장기요양보험 적용이 안 된다. 이신칸 입주자는 개호보험이나 의료보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간병비로 본인 부담금 10~30%만 내면 되지만 한국은 전액 본인 부담이다. "비슷한 형태로 열어도 기대만큼 입주자 구하기도, 수익 내기도 힘들 것"이란 이 교수 말에 시바하라 대표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아웃소싱'할 의료진 구하기도 문제다. 일본은 재택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진료소(의원급 의료기관)가 2만여 곳에 이르지만 한국은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는 말에 생각에 잠겼던 시바하라 대표는 마지막 인사를 하며 "법이 바뀐 다음 시작하면 늦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답을 남겼다.

이신칸 교도 현장 방문에 함께한 오시바 후쿠코 본부장, 시바하라 케이이치 대표, 다카하시 메구미 책임자(사진 왼쪽부터).
이신칸 교도 현장 방문에 함께한 오시바 후쿠코 본부장, 시바하라 케이이치 대표, 다카하시 메구미 책임자(사진 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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