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택의료 현장을 가다④ 재택의료 전문가 쓰루오카 고우키
높은 수가, 관련 기관 연계로 지역사회 방문진료 인프라 성장
부정적인 인식이나 양극화, 경쟁 넘어서 커뮤니티 강화해야

고령화 사회도 아니고 이제 초고령화 사회다. 의료와 돌봄도 그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그 해법을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화 사회를 맞닥뜨린 일본에서 찾기도 한다. 일찌감치 재택의료로 눈을 돌린 일본은 인구 감소, 의료비 급증, 간병 지옥 위기 속에서 실험을 계속 하고 있다. 청년의사는 분당서울대병원 초고령사회의료연구소 이혜진 교수와 함께 일본 재택의료 현장을 찾았다. 일본은 동네의원부터 연 매출 1,000억원대 기업까지 모두 각자 방식으로 재택의료를 하고 있다.

방문진료 의사는 비협조적인 현장에 직접 부딪히며 지역사회와 유대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재택의료 전문 진료소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 '생명의 정거장' 한 장면(사진 출처: 생명의 정거장 영화제작위원회).
방문진료 의사는 비협조적인 현장에 직접 부딪히며 지역사회와 유대관계를 쌓아가야 한다. 재택의료 전문 진료소 이야기를 다룬 일본 영화 '생명의 정거장' 한 장면(사진 출처: 생명의 정거장 영화제작위원회).

[도쿄=고정민 기자] "방문진료 의사는 한국 홈그라운드에 원정 경기 온 일본 선수나 마찬가지다. 환자 집에 들어선 순간 응원하는 사람 없는 고독한 경기 시작이다. 평생 원정 경기만 하는 선수, 그게 방문진료 의사다."

'15년 경력 파트타이머 방문진료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재택의료 전문가 쓰루오카 고우키 교수는 방문진료로 환자를 대면하는 과정을 야구 원정경기에 빗댔다.

쓰루오카 교수는 도쿄도 기요세시에 있는 일본사회사업대대학원 복지매니지먼트연구소(日本社会事業大学大学院福祉マネジメント研究所) 교수면서 도치기현 시모쓰케시 방문진료 전문 진료소(의원급 의료기관) 쓰루카메진료소(つるかめ診療所) 부소장을 맡고 있다. 종합내과 전문의인 부인 유코 씨가 소장이다. 사는 집 방 하나를 진료소로 쓰고 있다. 외래 진료는 안 받는다. 지난 2007년 개업 이래 쓰루카메진료소는 쓰루오카 부부의 '방문진료 베이스캠프이자 경기 한 번 안 열린 홈그라운드'다.

쓰루오카 교수가 의료 자문을 맡은 영화 '생명의 정거장(いのちの停車場)'에도 방문진료를 온 의사를 믿지 못해 사사건건 트집 잡고 화를 내는 배우자가 등장한다. 진료를 못 보게 방해까지 한다.

일본 국민 배우로 불리는 요시나가 사유리나 인기 스타 마쓰자카 도리, 히로세 스즈 등 화려한 출연진은 재택의료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보여주지만 현실은 그만큼 화려하지 않다.

정부는 재택의료 활성화를 위해 높은 수가를 책정했지만 그 바람에 방문진료 의사들은 돈만 밝히는 '나쁜 의사'라는 오명도 썼다. 일부 비양심적인 진료 행태가 이런 인식을 부추겼다.

방문진료 전문 진료소들은 동료 진료소와 병원, 개호시설인 방문간호스테이션 등과 함께 일하며 만성질환 환자부터 중증환자, 완화의료까지 폭넓게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증환자를 보기에 역부족'이라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협력 기관끼리 손발이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기업형 진료소가 등장하면서 양극화도 벌어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커뮤니티에 집중해야 한다. 커뮤니티에서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자고 재택의료를 하고 있는 거다. (방문의료) 집은 혼자 들어가도 그 밖에 원군이 있다는 걸 알면 힘낼 수 있다. 앞으로 재택의료는 이런 방향으로 가길 바란다."

지난 달 17일 도쿄도 기요세시에 있는 일본사회사업대에서 만난 재택의료 전문가 쓰루오카 고우키 교수는 방문진료 발전을 위해서는 커뮤니티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달 17일 도쿄도 기요세시에 있는 일본사회사업대에서 만난 재택의료 전문가 쓰루오카 고우키 교수는 방문진료 발전을 위해서는 커뮤니티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학 교수면서 방문진료를 병행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가능한가.

아내가 진료소장이고 나는 15년째 비정규직 파트타이머다. 교수가 되면서 진료소 일은 아내가 맡고 있다. 월, 화, 수 3일 오전 동안 일하고 아내는 매일 다닌다. 둘이서 한 달에 보통 환자 80명 정도를 본다. 외래 진료는 안 한다. 하루에 5~6곳을 돌고 환자 1명당 진료 시간은 20~25분 정도다. 이동시간이 꽤 걸린다. 큰 문제 없는 환자는 월 1회 방문한다. 세밀한 관리가 필요할 때만 2번 간다. 방문진료를 마치면 오후에는 지역 의사회나 동네(커뮤니티) 일을 한다. 365일 24시간 체제라 부부 둘 중 1명은 반드시 자리를 지킨다. 행사나 연수로 피치못할 경우 예전에는 파트타이머 의사를 썼지만 지금은 같은 재택의료 그룹 진료소에 부탁한다. 그룹 진료소는 보통 가까운 곳 2~3개가 연합한다. 정부도 가산 수가를 주고 그룹 만들기를 독려하고 있다.

- 환자 80명이면 경영이 어렵지 않나. 재택의료는 시설이나 휴대 장비 때문에 투자 비용이 많다고 들었다.

정부가 책정한 재택의료 수가가 높아서 크게 어렵지 않다. 방문진료 1회당 기본 8,880엔(8만5,248원)을 받는다. 왕진은 7,200엔(6만9,120원)이다. 여기에 진료 내용에 따라 수가가 따로 붙는다. 심야나 응급진료시 1,300엔(1만2,480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재택의료 전문기관인 재택요양지원진료소는 2,300엔(2만2,080원), 그룹 진료소는 2,500엔(2만4,000원)이다. 보통 진찰료가 초진이 2,880엔(2만7,648원), 재진이 730엔(7,008원)이다. 방문진료는 재진이어도 8,880엔(8만5,248원)을 주기 때문에 10배 이상 차이나는 셈이다.

- 수가만 보면 의사들이 방문진료만 하고 싶을 것 같다.

수가만 보면 그렇다. 예전에는 한 사람 당 무조건 8,880엔을 주는 식이었는데 이 점을 이용해 맨션(아파트) 한 동을 쭉 돌며 30명씩 방문진료하는 의사들이 생겼다. 한 달에 1회만 해도 되는데 굳이 2회씩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거 때문에 한동안 방문진료 의사는 '나쁜 의사'라고 불렸다. 돈 때문에 한다고. 이제 맨션처럼 같은 건물이면 첫 번째 환자는 8,880엔(8만5,248원)을 받고 두 번째 환자부터는 2,130엔(2만440원)을 받는다. 정부가 계속 방지책을 내고 있지만 수가 자체가 높기도 하고 방문진료 의사는 나쁜 의사라는 인식이 남아있는 편이다.

하지만 수가 때문에 하고 싶어도 '365일 24시간'이라는 조건 때문에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 진료소도 부부 2명이 여유를 두고 운영하고 있지만 중증 환자가 하루에 4~5명이 몰리거나 응급상황이 생기면 꽤 벅차다. 잠도 거의 못 잔다.

- 그럼 이때도 같은 그룹 진료소끼리 서로 돕는 건가.

그룹 진료소는 물론 방문간호스테이션 등 개호시설과 연계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도 인근 방문간호스테이션이 퍼스트콜을 대신 받기 시작하면서 중증 환자 진료에 한숨 돌리게 됐다. 심야나 응급진료도 여기서 우선 대처하고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만 우리에게 연락한다. 그래서 요즘은 심야나 응급 진료를 많이 하고 있지는 않다. 지역 병원들하고 연계해 필요하면 바로 입원 조치하고, 반대로 연말연시나 5월 골든위크(연휴)로 병원이 휴진하면 우리가 병원 환자를 대신 담당하기도 한다. 지역 내 재택의료 기관들과 연계만 제대로 하면 혼자서도 환자들을 돌볼 수 있다.

- 재택의료 관련 기관 연계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인센티브를 따로 주기도 하나.

다른 기관과 협력해서 24시간 체제를 구축하면 가산 수가 2,160엔(2만736원)이 나온다. 통원치료와 방문진료 연계를 위해 담당의사들이 협진하면 외래재택공동지도료를 추가로 준다. 나는 통증치료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할 때 가까운 의대 교수한테 도움을 받는데 그럼 기본 수가에 4,000엔(3만8,400원)을 더 받고 교수도 6,000엔(5만7,600원)을 받는다. 도쿄 같이 큰 도시는 아예 방문진료 의사 10~20명을 고용해 재택의료 전문팀을 운영하는 진료소들도 있다. 이런 곳은 환자를 600~800명까지 담당한다. 지금 일본 방문진료 현장은 지역사회끼리 뭉친 소규모 진료소와 기업화된 대규모 진료소로 양분돼 있다.

- 진료소 외에 방문진료나 왕진처럼 재택의료 서비스를 하는 병원들도 있던데.

병원 입장에서 재택의료가 그렇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기본 수가 외에 가산 수가는 거의 못 받는다. 인원도 20명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다만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곳은 병원에서 왕진이나 방문진료를 하기도 한다. 내가 실습한 곳도 이런 병원이었다. 무의촌은 인근 대학병원에서 진료소를 만들어 재택의료 서비스를 하고 실습생 교육도 한다. 우리 현에 있는 지치의대(自治医科大学) 부속병원이 이렇게 하고 있다. 의사 입장에서 병원 재택의료가 더 편하긴 하다. 상태가 나쁜 환자를 계속 집에서 지켜볼지 아니면 병원에 입원시킬지 의사가 온전히 매니지먼트할 수 있다.

- 실습생 교육은 진료소에서도 하는지 궁금하다.

우리 같은 소규모 진료소도 실습생을 받는다. 의대 커리큘럼상 내과 전문의가 되려면 재택의료 실습을 거쳐야 한다. 재택의료를 전문으로 하고 싶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 재택의료연합학회에서 재택의료 인정 전문의 자격을 따려면 현장 경험이 필수다. 우리는 가까운 지치의대와 독쿄의대(獨協医科大学) 실습생이 주로 온다. 아내가 지치의대에선 강의도 맡았고, 독쿄의대 외래교수라 협력 진료소로 등록돼 있다. 내 모교인 준텐도대학(順天堂大学) 실습생들도 도쿄 오차노미즈에서 배우러 온다. 다만 실습에 필요한 자료나 교재는 우리쪽에서 준비해야 한다. 내가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어서 다른 곳보다 관련 자료 확보가 수월한 편이기는 하다. 숙박비 등 실습 비용은 대학이 부담한다. 진료소에서는 가끔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차려주는 정도다. 어르신들은 젊은 학생이 오면 "못 보던 얼굴들이 왔네"하고 말 걸면서 좋아한다. 우리 진료소에서 방문진료를 받는 100살 할머니는 실습생들이 가면 눈에 띄게 반색한다. 보송보송한 녀석들이 온다고. 나는 완전히 차별받고 있다(웃음).

- 방문진료 진료소는 상태가 안정적인 환자를 주로 보고 병원이 중증환자를 담당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바로 그런 인식을 바꿔야 한다. 방문진료는 중증환자를 보기 어렵다거나 병원하고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 말이다. 여기 도치기현 사람들은 지치의대 부속병원에서 죽는 걸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방문진료를 하면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다거나 나중에 병원 입원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훌륭한 영화가 나오는 것도 좋지만 정부 차원에서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앞으로 10년, 20년 사이에 '심부전·신부전 팬데믹'이 도래한다. 병원만으로는 쏟아져 나오는 심부전·신부전 환자를 감당하지 못한다. 재택의료에서 이들을 맡아야 하고, 충분히 맡을 수 있다. 이미 암환자 재택의료 인프라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빠른 시일 내 심부전·신부전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 소아 환자까지 중증환자 재택의료 인프라를 강화하고 인식 전환을 이뤄야 한다.

- 그 외에 또 필요한 게 있다면.

재택의료 기관마다 체계가 다르고 대응법이 달라서 손발이 안 맞는다. 제도 손질도 필요하지만 커뮤니케이션도 강화해야 한다. 한 번은 환자가 마실 음료 문제로 케어매니저, 개호서비스 직원, 방문간호스테이션 간호사, 방문진료병원 간호사, 약제사까지 모두 모였다. 개호 직원이 '포카물'을 주자고 제안했는데 뭔지 몰라서 바로 준비 못했다. 분말 형태로 나온 포카리스웨트를 물에 개서 주자는 얘기였다. 나만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 자리 있던 사람들 다 아는 척 시치미 떼고 있는 거였다. 모두 베테랑이지만 서로 전문인 분야도 다르고 경험과 지식도 다르기 때문에 자주 모여서 배워야 한다. 경쟁자끼리 같은 환자 재택의료에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비즈니스 필드에서 경쟁해도 재택의료라는 커뮤니티에서는 모두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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