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운영되는 분만실 급감…모성사망률은 증가
“분만 취약지는 농어촌? 수도권 등 대도시도 문제”
산부인과학회, 분만실 유지 기본 수가 신설 등 제안

분만을 하는 의료기관도, 산부인과 의사도 사라지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분만 인프라가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수가체계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 청년의사DB).
분만을 하는 의료기관도, 산부인과 의사도 사라지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분만 인프라가 완전히 붕괴되기 전에 수가체계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 청년의사DB).

분만실이 사라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임산부와 의료진이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임신·출산 과정에서 사망하는 임산부가 늘면서 모성사망률도 증가세다. 전문가들은 무너지고 있는 분만 인프라를 다시 구축하려면 더 늦기 전에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중 하나가 분만 건수가 적어도 분만실을 유지할 수 있는 수가체계다.

대한산부인과학회는 11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108차 학술대회에서 ‘산부인과 보험수가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정부 정책이 저출산 시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황종윤 교수는 이날 ‘안전한 출산을 위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발표하면서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분만 환경이 달라진다며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분만실’을 유지하도록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산율은 떨어졌지만 전체 임산부 중 35% 가량이 35세 이상 고령이고 조기 진통이나 양막 파열 등으로 입원하는 환자는 늘고 있다. 하지만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줄면서 임산부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일이 늘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모성사망률은 10만명당 11.8명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높다. 2019년 기준 OECD 회원국 평균은 8.9명이다.

분만병원 수는 급격히 줄어 2021년 기준 전국에 487개소분이다.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371개소이던 분만병원은 2021년 487개소로 64.5%나 줄었다. 전국 20개 시군구에 산부인과가 없으며 산부인과는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지역은 43곳이다.

황 교수는 “저출산 시대는 베이비붐 시대와 달리 고위험 임신이 많고 의료분쟁은 증가하는데보상이 적다 보니 민간병원들이 폐업하고 있다”며 “분만 취약지라고 하면 농어촌을 생각하는데 경기도 과천시나 의왕시처럼 수도권에도 분만병원이 없는 지역이 있다. 분만 취약지 문제는 수도권 인근 대도시에도 다가올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위험 산모를 치료할 수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도 부족하다. 현재 고위험 산모·신생아 통합치료센터로 지정된 대학병원은 총 19곳이다. 하지만 이들 중 10곳은 근무하는 산부인과 교수가 5명 미만이며 울산 지역은 교수 1명이 모체태아의학을 전담하고 있다. 젊은 의사 유입이 줄어 산부인과 자체도 고령화되고 있다.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황종윤 교수는 11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대한산부인과 108차 학술대회'에서 ‘안전한 출산을 위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발표했다(ⓒ청년의사).
강원대병원 산부인과 황종윤 교수는 11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대한산부인과 108차 학술대회'에서 ‘안전한 출산을 위한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발표했다(ⓒ청년의사).

산부인과학회, ‘분만실 유지 기본 수가’ 신설 제안

황 교수는 분만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려면 분만실을 24시간 운영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원하고 산부인과 전문의 인력 확보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분만 건수를 기반으로 한 현행 수가체계를 ‘분만실 유지’에 기반을 둔 수가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분만 건수 기반 수가 외에 분만실 운영에 드는 기본 비용을 보전하기 위한 ‘분만실 유지 기본 수가’를 신설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의료 질 관리를 위한 ‘분만실 질 향상 수가’도 신설해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분만실은 24시간 운영돼야 하는 곳으로 ‘임산부 응급실’”이라며 분만 건수가 적어도 유지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저출산으로 분만 건수가 많이 줄었기 때문에 현재의 수가로는 분만실을 운영하기 어렵다.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분만실 유지 기본 수가’로 기본 비용을 보전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부인과 전문의 양성을 위해서는 보건복지부의 기피과 지원사업에 산부인과를 포함해 전공의들을 지원하고 24시간 분만실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에 산부인과 전문의 수당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원분만실 전담 전문의 지원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황 교수는 무엇보다 출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과실 의료사고는 국가가 책임져야 산부인과를 전공하려는 의사가 늘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산부인과 의사는 출산과 임신을 도와주는 것이지 모든 책임을 지고 아이를 낳게 할 수는 없다”며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 보장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고위험산모‧태아집중치료실(MFICU) 입원료와 관리료를 현실화하고 6개로 제한된 MFICU 입원 적응증을 확대해 산부인과 전문의의 임상적 판단에 따라 입원시킬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 “분만 인프라 유지하려면 마중물 성격의 수가 개선 필요”

복지부도 필수의료 강화 차원에서 분만 인프라 유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분만실 유지 기본 수가 신설 등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조영대 사무관은 “분만 인프라 문제는 건강보험 수가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도 분만 인프라가 유지될 수 있는 마중물 성격의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부분에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했다.

조 사무관은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의료 인력이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데 따른 보상이 필요하다. 또 수가에 위험도를 일정 부분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며 “건강보험 수가 개선도 그런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분만실 유지 기본 수가 신설에 대해서는 “분만 건수 기반 수가를 일정 부분 상향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판단한다. 다만 유지 비용은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은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가 발생해야 수가로 보상된다”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사무관은 “수가 외에 다양한 정책들이 같이 개선돼야 한다. 종합적으로 진행된다는 전제하에 건강보험에서 분만 관련 수가 개편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부인과학회 박중신 이사장은 이날 기자와 만나 “임신부들이 안전하게 분만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저출산 시대에 기존과 같은 정책을 고수하면 분만실은 유지되기 어렵다”며 “건강보험 체계상 분만실 유지 기본 수가 도입이 어렵다면 공공정책수가 등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