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산부인과醫 "분만의 없다…안전한 출산 보장 못해"
불가항력 의료사고 의사 책임 덜고 안전망 마련 요구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당장 10년 뒤 산부인과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면서 젊은 의사들의 외면 속에 산부인과 인프라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당장 10년 뒤 산부인과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면서 젊은 의사들의 외면 속에 산부인과 인프라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산부인과의 '수명'이 빠르게 닳고 있다. 저출생 기조는 물론 무거운 의료사고 책임과 필수과 외면 속에 산부인과에 남은 시간이 단 10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경고가 나왔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정부가 이제라도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공개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2월 말 기준 산부인과 전문의 평균연령은 53세로 외과와 함께 가장 높았다. 전체 전문의 평균 49세와 차이도 컸다. 30대 이하 산부인과 전문의는 761명으로 전체 산부인과 전문의의 12.78%에 불과했다. 60세 이상(26.7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2019년 155명이던 전체 산부인과 전공의 수는 올해 119명으로 감소했다. 전공의 5명 중 1명은 수련을 중도에 포기한다. 신 의원실이 공개한 '필수의료과목 전공의 이탈률'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과 2022년(7월) 수료하지 못하고 이탈한 산부인과 전공의 비율이 18.5%였다. 지난 2018년부터 2022년 7월까지 평균 이탈률은 13.1%에 이른다. 흉부외과 다음가는 수치다.

이런 산부인과 위기는 수치상 문제만 아니다. 현장 의사들은 '산부인과의 끝'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지난 16일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기자간담회에서는 산부인과 위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전문의들의 우려가 쏟아져 나왔다. 분만 인프라 붕괴에 대한 위기의식이 특히 컸다.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 손문성 부회장은 "산부인과 전문의 평균 나이가 53세다. 앞으로 10년 후면 이들 대부분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지금 사명감으로 분만실을 지키는 의사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켜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젊은 분만의'인 김미선 공보이사는 "전공의 동기 6명 중 분만하는 의사가 저 1명 남았다. 지금 근무 중인 병원도 5~10년 뒤면 선배 분만의 모두 은퇴한다. 저조차 몇 년 안에 분만을 접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서 "낮은 수가와 의료분쟁 위험 속에서 일과 가정을 병행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김 공보이사는 "젊은 분만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4년 차 전공의와 산과 전임의 설문 결과 80%가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당장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과연 안전한 분만 환경이 남아있을지 두렵다"면서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신속한 재정 투입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김동석 명예회장은 정부와 국회가 지금이라도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산부인과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김 명예회장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산부인과는 없어질 것이다. 분만할 의사가 없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대책을 안 세우면 정말 큰일 난다. 나이가 들면 의사들이 아무리 하고 싶다해도 당직과 응급상황 대처에 한계가 생긴다"면서 "기본적인 정책부터라도 개선해 나가야 조금이나마 전공의 지원이 늘고 전문의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 책임 지우려는 법·제도에 필수과가 무너지고 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집행부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도 의사 책임을 지우려는 법·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집행부는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도 의사 책임을 지우려는 법·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해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가 요구하는 법·제도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재원 100% 국가 부담과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이다.

최근 정부가 보상 재원 의료기관 분담 비중을 30%에서 10%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직선제산부인과의사회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의사에게 무조건 책임을 지우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재유 회장은 "'불가항력' 의료사고라면서 의사에게 계속 10%를 분담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면서 "법정에서는 '10% 분담 조항'이 의사가 무과실 사고에서조차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근거로 인식된다. 법조계와 국민 여론이 그렇다. 이런 분위기가 산부인과 병·의원을 없애고 인프라를 깨트린다"고 했다.

김동석 명예회장은 "지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재원 분담으로 의료기관에 총 8억8,000만원을 징수했다. 분만 건당으로 치면 1,1,60원을 부담한다. 의사들이 이 돈을 내기 싫어서 없애라는 게 아니다. 1년에 1억 남짓한 돈조차 더 부담하기 싫어서 의사에게 끝까지 책임을 씌우려는 정부의 문제"라고 했다.

'필수의료 살리기'가 다시 부각된 만큼 그간 무산됐던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했다. 산부인과를 비롯해 소아청소년과, 외과 등 환자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필수과' 의사들이 의료사고 분쟁 위험 때문에 현장을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재유 회장은 "의사가 자율적이고 적극적으로 진료하기 위한 안전장치로서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대로면 의료현장이 위축되고 의사가 방어 진료하는 경향을 멈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성윤 부회장은 "특례법은 의사를 넘어 국민을 위한 법이다. 지금 산부인과는 물론 소아청소년과도 (의료분쟁에 대한 부담으로)신규 의사를 배출하지 못해 인프라가 무너지고 있다. 지방 대학병원은 조교수와 부교수까지 그만두는 상황이다. 남은 교수들이 메꾸고 있지만 앞으로 5~7년 후는 기약할 수 없다. 새 전문의를 육성하지 못하면 그 이후는 방도가 없다"고 했다.

종합병원 필수 개설과에 산부인과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현재 100병상 이상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은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4개 과 중 3개 과를 개설하고 전문의를 배치해야 인가를 받을 수 있다. 최근 대한병원협회가 정부에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를 인가 기준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재유 회장은 현재 기준조차 병원에서 산부인과를 배제하고 있다면서 '종합병원'이라면 산부인과를 설치하고 분만 시스템을 필수로 갖춰야 한다고 했다.

김재유 회장은 "지금도 종합병원 90%가 사실상 산부인과를 제외했다. 의료사고 문제, 낮은 수익에 비해 높은 시설·유지비 때문"이라면서 "4개 과를 모두 설치하거나 3개 과에 산부인과가 필수로 포함해야 무너지는 산부인과 인프라의 최저선은 지켜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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