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사①] 구형진 강남구의사회장

결핵·비결핵항산균(NTM) 분야 권위자였던 고원중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의학계는 물론 환자들에게도 그의 죽음은 여전히 ‘충격’이다. 고 교수가 의학계에 남긴 업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제도가 그를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아붙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청년의사는 지난 20일 ‘참의사 고원중’ 출판 기념을 겸해 열린 고(故) 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서 나온 추모사 전문을 소개한다.

원중이 형. 1991년 본과 3학년 여름 어느 날로 기억합니다. 모두가 꽃다운 청춘들이었죠. 우리 실습 조 친구들은 형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다들 환호했습니다. 형이 여자 친구와 함께 ‘칠수와 만수’ 연극 공연에 우리 실습 조 친구들을 초대할 테니 다 함께 보자고…. 우리 모두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공연장으로 달려갔죠. 연극도 재미있었고 연극이 끝난 후 함께 사진도 찍고 맥줏잔을 기울이면서 잊지 못할 평생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형수님과 해맑게 웃던 그 날의 형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고원중 교수와 서울의대에서 함께 공부한 구형진 강남구의사회장은 지난 20일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그를 기렸다. 
고원중 교수와 서울의대에서 함께 공부한 구형진 강남구의사회장은 지난 20일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그를 기렸다.

형은 우리 동기들보다 2년 먼저 입학했지만 휴학을 해서 본과 2학년 때부터 우리 학년이 되었지요. 휴학 중에는 시골에서 의료 봉사 활동과 학생 운동을 하셨다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본 형은 학업에 충실한 모범생으로 늘 진지한 모습이었고 뭐든지 물어보면 막힘없이 설명해 주는 척척박사였습니다. 하나의 질병에 대해서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의학자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요.

원중이 형은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의대를 졸업하였고 내과 레지던트, 펠로우 과정을 거쳐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결핵환자를 돌보셨죠. 아마도 그 길은 형에게 운명처럼 다가왔을 겁니다. 평생 나환자를 돌보셨던 아버님의 영향이었을까요. 그런데 형은 그저 그런 평범한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환자들의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고 탐구하여 우리나라 다제내성결핵환자의 상당수가 비결핵성항산균폐질환(NTM)인 것을 밝혀냈고 NTM 환자 치료와 연구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총 399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NTM 치료법을 개척하였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국내외 각종 의학상을 수상했으며 미국미생물학회 교과서에 NTM 챕터를 저술하는 등 이 분야의 국제적 대가로서 의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셨습니다.

또 형은 진료와 연구뿐만 아니라 산업안전 분야, 공공의료 분야 등 사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교육에도 성심을 다했기에 성균관의대 본과 3학년 학생들로부터 Best Teacher로 선정되기도 하셨지요. 하지만 형은 자신의 업적 쌓는데만 몰두하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환자들에게 더없이 친절한 의사였고 후배 의사들과 공동연구자들을 생각하고 끝까지 뒤를 챙겨주는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우리의 원중이 형은 3년 전 우리의 곁을 떠났습니다. 형은 돌아가시던 그 날까지 매일 12시간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습니다. 남들처럼 골프나 다른 취미 활동에 관심도 없었고 그럴 시간조차 없었기에 오로지 일만 하고 지내셨다 합니다. 결국 디스크가 악화되어 통증으로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들었고 과도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형은 본인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만 5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시게 된 것입니다.

원중이 형, 죄송합니다. 우리는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의사들이 오히려 먼저 희생당하는 대한민국 의료의 모순을 오롯이 형 혼자서 감당하시도록 그냥 두었습니다. 또한 평생의 업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켜드리지 못한 점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형의 따뜻한 심성, 그리고 의사로서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의학자로서의 빛나는 연구 성과를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벌써 3년이 흘렀네요. 하지만 아직도 하늘나라에서 가족과 환자를 걱정하고 계시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형,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내과 의사로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셨고 누구보다도 고귀한 삶을 사셨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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