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사③] 임재준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결핵·비결핵항산균(NTM) 분야 권위자였던 고원중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의학계는 물론 환자들에게도 그의 죽음은 여전히 ‘충격’이다. 고 교수가 의학계에 남긴 업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제도가 그를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아붙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청년의사는 지난 20일 ‘참의사 고원중’ 출판 기념을 겸해 열린 고(故) 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서 나온 추모사 전문을 소개한다.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는 고 교수에게 보내는 이메일 편지 형식으로 추모사를 준비했다.

원중 형,
형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네요.

시간이 참 빠르지요? 형이 떠난 이듬해 초부터는 변종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번져서 지금껏 계속 되고 있습니다. 2015년에 형이 악전고투했던 메르스보다 치사율은 훨씬 낮지만, 전염력은 더 높아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2020년, 2021년에는 거의 모든 학회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고 올해부터 조금씩 직접 참석이 가능한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는 지난 20일 고(故) 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서 고 교수에게 쓴 이메일 편지를 낭독했다.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는 지난 20일 고(故) 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서 고 교수에게 쓴 이메일 편지를 낭독했다.

지난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호흡기학회는 대면/비대면 하이브리드로 진행되었는데, 11월에 세계항결핵연맹학회는 비대면으로만 진행된다고 합니다. 저도 3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호흡기학회에 참석했답니다. 학회장에서 형의 멘토였던 Dr. Daley를 만났는데 형 이야기는 애써 서로 피했습니다. 그리고 형이 떠난 직후, 2019년 가을에 열렸던 유럽호흡기학회에서는 Dr. Griffith가 강의를 마친 후에 형을 위한 묵념을 제안했다고 해요.

형이 맡고 계셨던 결핵연구회 총무는 제가 물려받았습니다. 그리고 형이 결핵연구회 회원에게 매주 보내주시던 결핵이나 비결핵항산균 관련 최신 논문 정리는 젊은 교수 3명이 나누어 맡아 하고 있습니다.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양이 아닌데, 형은 정말 치열하게 일하셨어요.

그나저나 비결핵항산균 분야에서는 특별한 혁신이 나오지는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치료 효과는 좋지 않고 환자들은 약 부작용으로 힘들어합니다. 형이 계셨으면 함께 고민했을텐데라고 늘 생각합니다.

참, 형이 기꺼이 도와주셨던 MDR-END 연구는 덕분에 잘 마무리되어서 투고하였습니다. 2014년에 연구를 기획할 때 ‘MDR-END’라는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며 형이 제게 얘기하셨던 것 기억하세요? 논문 원고 제출할 때 형 성함을 저자명단 대신 Acknowledgment에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정말 슬펐습니다.

형이 늘 그립습니다. 이제는 결핵연구회 동료들에게 메일을 보낼 때 지메일에서도 형을 수신인으로 더 이상 추천해 주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메일을 주고받은 지 3년이나 지났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형이 생전에 보여주셨던 열정, 배려, 통찰, 헌신은 저를 포함한 후배들의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형이 생전에 목표로 했던 비결핵항산균 폐 질환 진단과 치료의 혁신을 저희가 이루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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