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사②] 신성재 연세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결핵·비결핵항산균(NTM) 분야 권위자였던 고원중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다. 하지만 의학계는 물론 환자들에게도 그의 죽음은 여전히 ‘충격’이다. 고 교수가 의학계에 남긴 업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제도가 그를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아붙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청년의사는 지난 20일 ‘참의사 고원중’ 출판 기념을 겸해 열린 고(故) 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서 나온 추모사 전문을 소개한다.

고원중 교수님의 3주기 추모식과 ‘참의사 고원중’ 출판을 기념해서 공동연구자 대표로 교수님과의 추억, 또 함께 연구하면서 느낀 바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많은 선생님이 교수님의 인간적인 면과 정의롭고 선한 면을 말씀해 주실 것으로 생각되어 저는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제가 공동연구자로서, 후배로서 또한 제자로서 느끼고 배웠던 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세의대 미생물학교실 신성재 교수는 지난 20일 진행된 고(故) 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고 교수와 함께 비결핵항산균 분야 연구를 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연세의대 미생물학교실 신성재 교수는 지난 20일 진행된 고(故) 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고 교수와 함께 비결핵항산균 분야 연구를 했던 경험을 공유했다.

저는 교수님과 2005년 8월 26일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한창 공부 중일 때 잠깐 한국에 들어왔는데요. 이때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고 그 자리에 고원중 교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 교수님께서 먼저 다가와 주셨고 한국에서 자리 잡게 되면 꼭 함께 연구하자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007년 한국에 들어와서 교수님을 현재 질병관리청 워크숍에서 다시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후 교수님이 한국에서 결핵/비결핵을 연구하기는 쉽지 않고 비결핵항산균(NTM) 폐질환은 꼭 기초연구와 함께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바로 2007년 4월부터 함께 연구재단 과제를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공동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진심으로 대해주시고 먼저 공동연구를 제안해 주시면서 타 분야 연구자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교수님께서 주도하신 연구 그룹은 어느덧 매우 큰 연구그룹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현재 교수님이 계시지는 않지만 공동연구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현재까지 80여 편의 논문과 10건 이상의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하였습니다. 저희는 지속적으로 과제도 함께 도전하고 보건복지부 과제도 NTM 폐질환을 주제로 6년 동안 함께 수행하였습니다. 논문은 2009년에 처음 나오기 시작하였고 2021년까지 계속 공동연구 논문이 나왔고 현재도 남겨주신 연구 주제를 하나하나 풀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크게 세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시는 간절함입니다. 저 같은 기초연구자는 우선 데이터가 복잡해야 뭔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교수님은 논문을 읽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데이터가 화려하고 훌륭해도 논문의 값어치가 높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초안을 작성해 가면 교수님께서는 정말 간단명료하게 고쳐주시면서도 그 수고스러움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하셨습니다. 논문의 표현도, 단어도, 문장도 모두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단순화시키셨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설득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책에서도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보수적인 연구집단에서 타 대학, 그것도 의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임상 연구를 함께 진행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저를 삼성서울병원 IRB에 포함시켜 주셨고 임상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선생님이 잘 하셔야 제가 편안합니다”라며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특히 왜 이 연구가 인성적으로 중요한지 무엇을 풀어야 하는지 많은 시야와 인사이트를 넓혀 주셨습니다.

세 번째 내용은 ‘앞서감’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연구에 대한 성전 지명이 매우 뛰어나셨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연구, 저러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고 한국 의료계의 장점을 살려서 코호트를 구축하는 일을 10년 전부터 하셨습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조차 이제 막 시작하는 일들을 10년 전에 미리 내다보고 시작하셨습니다. 그 앞서감에 때로는 힘들어하고 힘에 벅차하셨지만 이 코호트를 구축해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그 앞서감을 유지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하셨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공동연구자, 제자들은 망망대해에서 저희를 비춰주고 이끌어주신 교수님의 부재를 크게 느낄 것입니다. 저는 3년 동안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밤바다에 표류하는 느낌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방향을 잡을 수 없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출판기념회를 통해서 다시 한번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교수님으로부터 귀중한 연구 주제와 8년 동안 어렵게 모아온 500여개의 소중한 코호트 샘플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남겨주신 귀중한 코호트 샘플을 이용해 어떻게든 좋은 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유족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수님은 약자를 보호하고 환자를 우선 생각하고 후배들을 먼저 챙기는 훌륭한 의사이자 학자셨습니다. 유족분들도 저희도 이런 교수님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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