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사 고원중’ 출판 기념 겸한 3주기 추모식 열려
“훌륭한 의사 먼저 희생당하는 한국 의료 모순”
“좋은 의사들이 영혼 갈아 넣어 유지하는 의료체계”

故고원중 교수 추모위원회와 청년의사는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생명빌딩 슈바이처홀에서 ‘참의사 고원중’ 출판 기념을 겸한 3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故고원중 교수 추모위원회와 청년의사는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생명빌딩 슈바이처홀에서 ‘참의사 고원중’ 출판 기념을 겸한 3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의사들이 먼저 희생당하는 대한민국 의료의 모순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도록 두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좋은 의사들이 자기 영혼을 갈아 넣어서 의료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지 안타까움을 느낀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고원중 교수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들이다. 결핵·비결핵항산균(NTM) 분야 권위자였던 고 교수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안타까움도 쏟아졌다.

고 교수 추모위원회와 청년의사는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원로 삼성생명빌딩 슈바이처홀에서 ‘참의사 고원중’ 출판 기념을 겸한 3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고 교수의 동료 의사 등 50여명이 참석해 그를 기렸다.

고 교수의 일생을 담은 책 ‘참의사 고원중’을 쓴 이화의대 의학교육학교실 권복규 교수는 “그대로 보내기는 너무 안타까웠다. 어떤 형태로든 (그의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기들과 선후배 등이 협력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세계적인 업적을 많이 남겼지만 본인의 영리와 영달을 위한 게 아니었다. 환자를 잘 보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었다”며 “앞으로 (고 교수의 죽음과 같은 일이) 또 있어서는 안된다. 대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20일 열린 故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는 동료 의사, 연구자 등 50여명이 참석해 그를 기렸다.
지난 20일 열린 故고원중 교수 3주기 추모식에는 동료 의사, 연구자 등 50여명이 참석해 그를 기렸다.

고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우리나라 의료환경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의대에서 함께 공부한 구형진 강남구의사회장(눈에미소안과의원 원장)은 의료체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고 교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구 회장은 “돌아가시던 그 날까지 매일 12시간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다”며 “결국 디스크가 악화돼 통증으로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견디기 힘들었고 과도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반복됐다. 그러다 본인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만 5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안타까워했다.

구 회장은 “죄송하다. 우리는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의사들이 오히려 먼저 희생당하는 대한민국 의료의 모순을 오롯이 형 혼자서 감당하도록 그냥 두었다”며 “평생의 업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켜주지 못한 점 너무나도 안타깝다”고 했다.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은 4년 넘게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가 최근 사망한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송주한 교수를 보며 고 교수가 떠올랐다고 했다. 송 교수는 병원을 떠나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다 뇌출혈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4년 넘게 입원해 있었지만 지난 7월 27일 끝내 숨을 거뒀다.

박 주간은 “송 교수는 집에 가지 않고 환자를 진료하는 걸로 유명했다. 정말 열심히 환자를 진료하던 친구였다”며 “뇌출혈로 쓰러져서 중환자실에서 4년 넘게 버티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고 교수와 같은 호흡기내과여서 더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좋은 의사들이 자기 영혼을 갈아 넣어서 의료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지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두 사람의 죽움이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던진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동료인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임재준 교수는 고 교수에게 보내는 이메일 편지 형식으로 준비한 추모사를 통해 그와 일상을 나눴다. 임 교수는 “비결핵항산균 분야에서는 특별한 혁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치료 효과는 좋지 않고 환자들은 약 부작용으로 힘들어한다”며 “형(고 교수)이 있었으면 함께 고민했을 텐데라고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고 교수가 생전 결핵연구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했던 일을 다른 교수들과 나눠서 하고 있다며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있는 양이 아닌데 정말 치열하게 일했다”고도 했다.

고 교수와 비결핵항산균 분야 공동연구를 해온 연세의대 미생물학교실 신성재 교수는 “현재도 (고 교수가) 남겨주신 연구 주제를 하나씩 풀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저를 포함해 많은 공동연구자들, 제자들은 망망대해에서 우리를 비춰주고 이끌어주신 고 교수의 부재를 크게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고 교수는 약자를 보호하고 환자를 우선 생각하고 후배들을 먼저 챙기는 훌륭한 의사이자 학자였다”고 했다.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에서 고 교수와 오랫동안 함께 근무해 온 전경만 교수는 “학창 시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스승이었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니라 대화와 토의를 통한 가르침이었으며 본인의 실수까지 공유했다”고 회상했다. 전 교수는 고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참석했던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환송회에도 함께 했었다.

전 교수는 “많은 사람이 고 교수를 세계적인 의학연구자로 기억하지만 저는 ‘참의사 고원중’을 존경한다”며 “해결되지 않는 임상 현장에서의 질문이 연구의 시작이었고 연구 그자체는 환자를 위한 것이었다. 또 항상 후배들이 우선이었다. 후배들의 어려움을 대변했고 후배들의 영광 앞에 절대 나선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족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고 교수의 아들 성민 씨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정작 변해야 하는데 그대로 인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변해야 하고 모두가 나아가야 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런 이정표가 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은 고 교수의 죽음을 ‘직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에 직무상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지만 부결되자 지난 6월 사학연금공단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관련 기사: 故고원중 교수 유족, 힘들고 긴 ‘싸움’ 시작…“직무상 재해 인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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