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희의대에 이어 고려·이화·제주의대도 준비 중
심폐소생술과 가상 환자 실습 등으로 확대
"결국 콘텐츠 싸움"…학계와 기업이 손잡았다

가상과 현실을 잇는 ‘메타버스(Metaverse)’가 의과대학 강의실에 들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계기였다.

의대들은 메타버스를 이용하면 시·공간 제약을 받지 않고 학습 효과도 증진할 수 있다는 데 주목했다. 해부학 실습의 경우 메타버스를 활용하면 학생들이 가상현실에 구현된 장기의 모양이나 근육의 위치, 움직임 등을 좀 더 몰입감 있게 배울 수 있다.

서울의대와 경희의대는 지난해 ‘VR(Virtual Reality)’을 적용한 메타버스 해부학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호응을 얻기도 했다.

고려의대, 이화의대, 제주의대 등에서도 메타버스 심폐소생술, 비대면 가상 환자 실습 등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의대, VR·AR·3D 프린팅부터 메타버스 해부학까지

서울의대는 메타버스를 해부학 실습에 적용하고 별도 이론 수업도 하고 있다.

해부학교실 최형진 교수는 지난 2018년부터 '해부신체구조의 3D 영상 소프트웨어, 3D 프린팅 기술 활용 연구 및 실습'이라는 강의를 4주 동안 진행하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매년 교육하는 내용에도 조금씩 변화는 생긴다. 지난해에는 '메디컬이미징(Medical Imaging)'과 '딥러닝(Deep Learing)'에 대한 이론·실습 수업(1~2주차)과 메디컬아이피를 방문해 VR, 'AR(Augmented Reality)', 3D 프린팅 등을 체험하는 수업이(3~4주차)이 진행됐다. 의대생들은 AR 기기인 ‘홀로렌즈(HoloLense)’를 착용해 마네킹의 심장 위치에 3D 심장 모델을 띄워 놓고 수술 과정을 시뮬레이션 해본다.

메타버스 해부학 실습도 진행됐다. 서울의대 의학과(본과) 1학년생 154명은 기존처럼 '카데바(cadaver)'를 이용한 해부학 실습 외에 메타버스를 이용한 실습도 한다. 메타버스 실습은 메디컬아이피가 개발한 해부학 플랫폼 '엠디박스(MDBOX)'를 활용한다.

최 교수는 학생들이 카데바 실습보다 메타버스 실습에서 더 높은 몰입감을 보였다고 했다. 최 교수는 "해부학 수업의 목표는 공간 지각적으로 위치 관계를 잘 아는 것"이라며" "(메타버스를 통해) 몰입감 있게 위치 관계를 보면 체감적으로 더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 진행한 경희의대

경희의대는 지난해 5월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를 선보였다. 경희의대 해부학·신경생물학교실 김도경 교수는 해부학 실습에서 의학과 1학년생 100명을 대상으로 카데바 실습과 ‘오큘러스 퀘스트2’ 장비를 이용한 VR 실습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해부학 실습 기간 동안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VR을 이용해 해부 실습을 반복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수업 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은 VR 실습에 대해 반복 학습이 가능하고, 질병 모델링을 제공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반면 VR의 한계로 실제 카데바와 이질감을 느끼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김 교수는 "기증받은 카데바의 경우 근육이 압착되거나 장기가 없는 경우가 있다"며 "그래서 실습을 하기 전에 VR로 해부할 부위를 미리 연습해 볼 수 있도록 했으며, 카데바 실습 이후에는 놓쳤던 부분을 피드백해 VR로 보완할 수 있다"고 했다.

경희의대는 지난해 5월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를 선보였다(사진제공: 대한의학회).
경희의대는 지난해 5월 ‘하이브리드 해부학 강의’를 선보였다(사진제공: 대한의학회).

“우리도” 메타버스 교육 시작하는 의대들

메타버스를 수업에 접목하는 의대는 늘고 있다. 그리고 그 범위도 해부학뿐 아니라 심폐소생술, 비대면 가상 환자 실습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화의대는 메타버스 교육을 추진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교육과정을 개발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고 있다. 우선 심폐소생술 실습에 메타버스를 적용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이화의대 관계자는 “현재 임상 실습의 시간적·공간적 한계에 대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메타버스의 장점을 활용하고 의학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이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의대는 지난 1월 메디컬아이피와 공급계약을 맺고 엠디박스를 구입해 의대 내 스마트 강의실을 조성했다. 다음 학기부터 본격적으로 해부학 실습에 엠디박스를 활용할 계획이다.

고려의대는 의학교육학교실을 중심으로 메타버스를 이용한 비대면 가상 환자 실습을 추진 중이다.

"결국 콘텐츠 싸움"…학계와 기업이 손잡았다

전문가들은 의대 교육 현장에 메타버스가 자리를 잡으려면 콘텐츠의 질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메타버스 콘텐츠가 대면 수업을 보완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설 양질의 콘텐츠가 없다는 지적이다.

메디컬아이피 박상준 대표는 “메타버스는 결국 콘텐츠 싸움”이라며 “기존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아직 메타버스가 초창기 단계라 그런 콘텐츠가 많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최형진 교수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콘텐츠,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모두 중요하다. 이 세 가지가 골고루 발전해야 하는데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 비하면 콘텐츠는 그렇게 발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대 교육에서 메타버스로 해결 가능한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의 방식으로 한계가 있는 분야를 찾아 메타버스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의대 교육에서 메타버스를 더 확대시키기 위해선 이전의 교육으로 해결되지 못한 빈틈을 찾아내야 한다"며 “예를 들어 공간지각적인 문제로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을 VR이나 AR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부분에 메타버스를 적용해야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개발자들이 만드는 것과, 의료계에서 원하는 것 사이에 미스 매치가 상당하다”며 “학생들에게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의대생들이 이런 관점을 갖고 향후에 임상에서 진료하다 보면 메타버스가 필요한 부분을 발견하고 기업에도 요구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해부학회가 지난 6월 20일 메디컬아이피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유도 교육 콘텐츠 개발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해부학회는 메디컬아이피에 의학 자문을 한다.

해부학회는 메타버스연구회도 설립해 운영할 예정이다.

해부학회 유임주 이사장은 "기초의학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판단해 메타버스 기업과 협업하기로 했다"며 “당장은 의대에 메타버스 수업이 자리 잡기 어렵다.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여러 프로그램이 나왔는데, 테스트베드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메타버스가 적용됐을 때 학습효과가 있을 법한 부분을 찾아서 기업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며 “앞으로 이쪽 분야의 일이 많아질 것이다. 산업계를 뒷받침해줄 만한 다양한 해부학적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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