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전문간호사 자격인정 규칙' 개정·공포
논란됐던 문구 빠지면서 반발했던 의료계도 '수용'
전문간호사협 임초선 회장 "합법적 의료 제공 가능"
"전문간호사 직무 표준과 별도 수가 마련 필요" 강조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PA(Physician Assistant) 합법화’ 논란을 불러온 ‘진료에 필요한 업무’ 문구가 수정됐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지도하에 수행하는 업무’를 명시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것이다.

이에 관련 규정 폐기까지 요구했던 의료계도 “100%는 아니지만 지적했던 부분이 반영됐다”며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건복지부는 19일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를 구체화하도록 개정한 ‘전문간호사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칙’을 공포했다. 전문간호사 자격 인정 요건을 명시한 개정 의료법은 지난 2020년 3월 시행됐지만 구체적인 업무범위는 2년 뒤에야 마련된 것이다.

업무 범위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의 반발을 샀던 ‘진료에 필요한 업무’는 13개 분야별 ‘진료에 필요한 업무 중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지도하에 수행하는 업무’로 바뀌었다. 그 밖에 ‘진단’, ‘시술’ 등의 단어도 삭제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지적했던 부분이 반영됐다”며 반겼다. ‘마취 진료 중단’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했던 마취통증의학과도 수용하는 모습이다.

의협 박수현 대변인은 “의견이 100%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의료법이 허용한 면허 범위 내에서 업무범위가 정해져야 한다는 지적은 수용됐다”며 “그 자체에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전문간호사들은 적극적으로 반겼다. 의료법에 전문간호사가 명시된 지 22년 만에 업무 범위가 규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 임초선 회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업무범위 법제화로 전문간호사가 합법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임 회장은 분야별 전문간호사 직무 표준을 마련하고 별도 수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 임초선 회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전문간호사제도 도입 48년만에 법제화된 업무범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전문간호사협회 임초선 회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전문간호사제도 도입 48년만에 법제화된 업무범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 진통 끝에 전문간호사 업무범위를 구체화한 규칙 개정안이 공포됐다.

그동안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에 대한 법령이 없다보니 병원이나 진료과마다 전문간호사에게 요구하는 업무가 다양했다. 또한 전문간호사들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이식이나 항암화학요법과 같은 고위험 치료 전반에 대한 관리, 병원 내 감염관리, 급성기나 만성기질환자의 질병 치료와 관리를 위한 다양한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업무 범위가 법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의료법 체계 내에서 간호사의 업무를 넘어서는 행위는 불법으로 호도되곤 했다.

이번 개정을 통해 그동안 전문간호사가 의사와 간호사 간 역할의 틈새를 메우고 환자 건강에 기여해 온 시간에 대해 인정을 받은 것 같다. 무엇보다 업무 법제화로 전문간호사들이 합법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 개정된 규칙은 '진료에 필요한 업무'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수행하는 업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도 현장에서 전문간호사들이 하는 ‘진료에 필요한 업무’는 대부분 의사의 위임이나 지도 하에 수행된다. 그동안 일부 의사들은 전문간호사가 의사를 대체하는 인력으로 활동하는 미국 전문간호사를 염두에 두고 경계를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구 하나로 전문간호사가 단독으로 무면허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작위적인 해석이다.

현재 의료법상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돼 있는데, 법정에서는 ‘지도 하에’라는 부분이 행위 상황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합법으로 입증되기 어렵다. 때문에 단순 진료를 넘어 의사의 의료 행위를 적극적으로 돕는 전문간호사의 행위가 불법의료행위로 몰릴 수 있다.

이에 ‘의사의 지도’를 증명하기 위해선 ‘처방 하에’라는 문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의사집단과 간호계가 생각했던 ‘처방’의 의미가 달랐던 것 같다. 전문간호사들이 생각한 ‘처방 하에’는 전문간호사가 항암화학요법 교육을 시행한 경우, 의사의 처방지시에 ‘항암화학요법 교육(전문간호사)’이라고 남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의료현장에서는 구두처방이 이뤄지고 있는데, 의사의 지시에 따랐다는 것을 증빙하기 어려울뿐더러, 업무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아 처방에 내용이 있어도 전문간호사의 업무범위인지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공포된 규칙은 입법예고안에서 이슈가 됐던 일부 문구들이 조정됐다. 의료현장에서 의사 수 부족으로 전문간호사에게 많은 의료행위를 요구하는 현실을 법으로 인정하기엔 우리나라 의료계가 아직 보수적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앞으로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 이번 규칙 개정으로 전문간호사 업무범위에 대한 논란이 잦아들 것으로 보는가.

이번 규칙은 큰 틀에서의 업무 범위만 설정됐기 때문에 그동안 행해졌던 행위들이 법적 기준에 합당한지에 대해선 현재로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문간호사의 과도한 침습적 의료행위가 중단돼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일부 전문간호사들은 법적 근거가 없을 때보다 전문간호사의 역할이 하향 평준화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번 개정으로 최첨단 치료팀의 일원으로 일하는 전문간호사가 이 역할에서 배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공의가 기피하는 과에선 전공의·펠로우(전임의)가 부족해 이들의 업무를 전문간호사들이 맡고 있는 실정인데, 이번 개정으로 전문간호사들이 업무에서 배제된다면 당장 진료와 치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에 일부 전문간호사들은 당장 환자에게 피해가 간다면 불법이어도 지금의 역할을 유지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법 보다 임상현장이 먼저 변하고, 이에 따라 법이 변하는 상황이 반복됐던 탓도 있다. 때문에 복지부를 중심으로 분야별 직무 표준세부지침을 마련하고 의료기관 내에서 조율해 나가야 한다.

- 앞으로 남은 과제는.

우선 ‘진료에 필요한 업무’의 수준과 직무 표준의 예가 마련되고 각 기관마다 상황에 맞게 조율돼야 한다. 이번 개정으로 현장에서는 전문간호사의 업무와 역할을 조정하는 부분에서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복지부는 책임감을 갖고 간호계·의료계와 협의해나가며 관련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전문간호사 수가를 도입해야 한다. 그동안 전문간호사가 의료행위를 해도 의사의 행위수가로 지급돼 왔다. 이제 업무범위가 규정됐으니 법적 기준 안에서 의사와 전문간호사의 수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문간호사 수가를 도입하면 중소병원에서도 전문간호사 고용이 확대돼 의료의 질이 향상될 뿐 아니라 환자 회송 시 전문간호사 간 연계를 통해 유기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환자들도 큰 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은 후 집 근처 병원에서 전문간호사 간 연계 시스템을 통해 사후 관리를 받을 수 있다.

더불어 환자 교육·상담·연구 분야에서 전문간호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전문 간호 업무에 대해서는 간호사 수가와는 별도로 전문간호사 추가 가산 보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 최근 진료지원인력(PA)를 두고 의료계 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PA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국내 PA 업무를 분석해보면 단순반복 의료행위 위주의 진료보조업무와 전문적이면서 고위험 시술이나 치료에 협력하는 상급실무로 나눌 수 있다.

진료보조업무의 경우 간호사의 ‘진료의 보조’ 인정범위를 좀 더 확대한다면 간호사의 업무로 해결할 수 있다. 일례로 1970년대에 의사의 의료행위로 분류됐던 정맥주사도 이제는 간호사 업무로 인정된다. 교육·훈련 과정을 거쳐 간호사가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PA의 진료보조업무는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고위험 시술에 협력하는 상급실무에 종사하는 PA 중에서는 전문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도 있다. 이제 전문간호사 업무 범위가 제정된 만큼 앞으로 전문간호사의 역할에 가까운 PA들은 전문간호사 자격증을 갖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복지부에서 PA 타당성 검증 사업을 진행 중인데, 이를 통해 PA 역할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 후 이를 전문간호사 업무로 재편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될 업무에 대해선 엄격한 재정리가 필요하다. 그 외 전문간호사와 별도로 PA가 꼭 필요한 분야가 확인된다면 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또한 PA는 현장의 필요에 의해 양성된 인력이지만, 검증된 교육이나 자격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의료기관별로 합리적인 관리·운영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2000년 전문간호사가 의료법에 명시된 이후 22년 만에 전문간호사의 업무 법제화가 이뤄졌다. 이는 의료계에서도 전문간호사의 필요성이 더 확고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과 간호의 발전으로 의료 현장에는 더 위험한 약물과 치료, 복잡한 시술이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이 복잡하고 위험한 치료를 잘 받도록 하는 매개 역할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지킬 수 있게 돕고 있는 전문간호사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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