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 전공의 부족으로 촉탁의로 돌아가는 응급실
응급의학과 전문의 “5~10년 소아응급질환 암흑기”
당직 서는 소청과 교수들 “인력 충원 위한 대비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확산세가 무섭다. 특히 코로나19 예방접종 대상에서 제외된 12세 미만 코로나19 소아 환자 증가세가 두드러지면서 정부는 소아환자 증가를 코로나19 대응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꼽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3월 1주차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확진자는 전주 대비 1.3배 증가한 4만8,912명이다. 특히 18세 이하 확진자 비중은 2월 1주차 대비 소폭 줄었지만 11세 이하 소아 확진자는 크게 증가했다.

18세 이하 연령에서 하루 평균 확진자는 2월 1주차 5,824명(26.2%)이었지만, 3월 1주차 들어 4만8,912명(24.9%)으로 늘었다. 11세 이하의 경우 2월 1주차 3,263명(14.4%)에서 3월 1주차 3만1,898명(16.2%)으로 10배 가량 늘었다.

연령별 하루 평균 발생률에서도 소아 연령대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3월 1주차 0~9세 연령대의 인구 10만 명 당 하루 평균 확진자 발생률은 669.6명으로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 같이 오미크론 확산으로 소아 환자가 크게 늘면서 의료대응체계도 비상이 걸렸다. 재택치료 중 증상이 급격히 나빠진 코로나19 영·유아 환자들이 응급실 도착 전후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지난 달 코로나19에 확진된 생후 7개월 된 아기가 제때 응급실로 이송되지 못해 숨진 것은 응급실 내 격리병상이 없거나 병상이 있어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으로 수용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며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출산율 감소로 ‘기피과’로 전락한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이 수년 째 이어지며 현장에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인력 부족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

2022년도 전공의(레지던트) 모집결과에서도 전국 수련병원 55곳에 소청과를 지원한 전공의는 42명뿐이었다. 소청과 전공의 충원율은 지난 2020년 74.1%에서 2021년 38.2%로 급감했으며, 올해 27.5%로 떨어졌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병원 사정은 그나마 낫지만 전공의 부족으로 지방 대학병원의 약 50%는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아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 양성의 기회가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소청과 의사 부족은 응급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A권역응급의료센터는 소아 응급환자를 볼 수 있는 소청과 촉탁의를 고용해 응급의학과 전문의들과 번갈아 진료하고 있다. 인천의 B대학병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주일에 2~3번 소청과 촉탁의가 소아 응급환자의 진료를 맡고 있다.

A권역응급의료센터 한 관계자는 “그나마 다른 응급실에 비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응급의학과가 소아 진료를 많이 커버하는 편”이라며 “오미크론을 떠나 진짜 큰일이다. 향후 5~10년은 소아응급질환은 암흑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도에 있는 B대학병원 응급의학과 C전문의는 “소아응급은 필수의료 중 하나로 봐야 하는데 소청과가 수년 째 전공의 미달이다. 대부분 병원에서 소청과 인력이 없고 (전공의들이) 지원 자체를 안 하다 보니 전공의가 없다”고 말했다.

C전문의는 “코로나19 환자는 아니었지만 아기가 안 좋아 타 응급실 40~50곳에 전화를 돌려봤지만 받아줄 병원이 하나도 없었다”며 “인력이 없어지면서 소아 중환자를 아예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러니 환자를 타 병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C전문의는 “코로나19로 가장 힘든 게 아기들을 전원 보내는 일이다. 병원을 폐쇄할 각오를 하고 받겠다는 입장이지만 감염되면 그 이후 어떻게 할 건지도 생각해야 한다. 이 아이로 인해 병원을 폐쇄하면 다른 환자들은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방 대학병원 50% 교수들이 ‘당직’…소아 특성 고려한 전문인력 必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된 지난 1월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와 대한소아감염학회도 소아청소년 오미크론 변이 대응에 코로나19 진료 병상 및 진료인력 확보를 제안했다. 일부 기저질환이 있는 소아환자의 중증 전환 대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이야 전공의 부족으로 대학병원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서라도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진료인력 확보 등 장기전에 나서기 위한 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잇따랐다.

D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E교수는 “코로나19로 소아 진료인력이 성인 진료인력으로 활용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소아 환자가 늘어났을 때는 소아 환자를 보겠다는 의사가 없다. 성인 환자와 다른 소아 환자 특성상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에 소아의 중등도를 떠나 소아를 볼 인력이 없다는 게 현장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E교수는 “정부에서 군의관을 진료인력으로 충원했지만 전공과목이 아니라 못 보겠다는 분들도 있고 소아청소년 전문의를 딴 군의관들 수도 적다”며 “특히 강원지역 대학병원의 경우 전공의가 없다. 교수들이 계속 당직을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경증환자든 중증환자든 몰리니 의료진이 ‘번 아웃’ 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고 했다.

E교수는 “수도권은 그나마 낫다. 지방 대학병원들은 인력이 없으니 교수들이 계속해서 당직을 서고 있다. 나이 많은 교수들이 계속해서 당직을 서다보니 중환자 케어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며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장기화 되면 결국 환자를 볼 인력이 없지 않겠냐”고도 했다.

이에 장기전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인력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아청소년과를 선호하는 ‘마니아 층’이 지원할 수 있도록 수가 지원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F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G교수도 “서울대병원의 경우 올해 졸업하는 학년 중 전교 1등부터 10등까지 흔히 말하는 인기과에 지원했다고 들었다”며 “소청과는 소아 환자 보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마니아들이 있는데 그게 무너졌다. 다시 소명을 살려주는 건 국가차원의 지원 말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G교수는 “인력 충원을 위한 방안들을 고민해야 한다. 소청과는 전공의 모집 자체가 어려워진지 얼마 되지 않아 수가 등 정부 지원이 전무하다. 소아 호스피탈리스트 등이 들어와 부담을 나눠지는 등 인력 충원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G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이런 일이 지속해서 생긴다면 그 때는 병상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력 부족으로 소아 응급실을 닫는 곳들도 너무 많을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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