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분당서울대병원 CIO 겸 이지케어텍 부사장
"기술적 성숙 이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준수 노력 미흡"
의료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대한 사회적 거버넌스 구축해야

우리나라 병원들이 구축해서 운영하고 있는 전자의무기록(EMR)으로 인해 가치 있는 의료 빅데이터가 생산되고 있지만 공유되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EHR((Electronic Health Record) 도약을 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분당서울대병원 CIO(Chief Information Officer)이자 EHR 기업 이지케어텍 부사장인 황희 교수는 청년의사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가 공동기획한 연속특강 '헬스케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오늘과 내일' 연자로 나서 EHR 시스템의 과거와 현재를 짚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조망했다.

황 교수는 IT 컨설팅 업체 가트너(Gartner)가 제시한 EHR 발전단계를 소개했다. 가트너는 현재 병원 IT의 구심점인 EHR의 발전 단계를 Operation Support, Mobility&Security, Smart Solution, Intelligent Healthcare의 4단계로 구분했다.

황 교수는 "국내 EHR의 역사는 1980년대 말 '병원 전산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초기에는 단순히 워드 프로세서처럼 컴퓨터화나 자동화 관점에서 진행했다"며 "2000년대 초반이 되면서 디지털화 관점에서 EMR 기능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정밀의료, 미래의학, 4차산업혁명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EHR을 보면서 데이터의 중요성도 점점 커졌다"고 했다.

황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EMR을 가장 많이 도입한 나라이기에 이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이용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비교적 잘 돼 있는 나라"라면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는 EMR 데이터들이 표준화 등의 문제로 가치 있게 쓰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Gartner가 제시한 EHR 발달의 4단계(자료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CIO 황희 교수).
Gartner가 제시한 EHR 발달의 4단계(자료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CIO 황희 교수).

황 교수는 이어 국내 EHR이 발전하려면 EMR이 생산하는 의료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데이터 수집은 순전히 의사가 얼마나 성실하냐에 달려 있었다. 각종 기록을 의사 본인이 머릿속으로 요약하고 차트에 한두 줄 남기는 방법 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불과 20년 사이에 기술적 진보와 더불어 임상데이터, 유전체데이터, 라이프로그데이터 수집 차원에서 기술적 한계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본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 병원계는 EMR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도입했고 높은 기술적 성숙도를 갖췄다. 황 교수는 임상데이터 활용에 초점을 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비교적 잘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병원마다 독자적으로 EMR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그 발전 방향성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중시하는 현재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흐름과 유리됐다고 우려했다.

황 교수는 "병원들이 EMR 시스템에 해마다 수십억원 규모로 돈을 쓰지만 대부분 유지보수나 시스템 불편사항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데 돈을 쓰는 게 과연 EMR발전 방향성 측면에서 옳은 일인지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 교수는 "아키텍처(architecture), 데이터 포터빌리티(Data portability) 외에도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 준수도 필요하다"며 "메이저 EMR 벤더가 표준을 주도하는 미국처럼 우리도 EMR 표준과 관련된 스텐스 변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데이터 포터빌리티 등을 고려한 EMR 시스템으로 업그레이드하거나 전면적인 재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외부 솔루션과 오픈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형태로 통신해야 한다. 상호 운용성 문제도 풀어야 한다. 이렇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가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병원들이 기술 도입에만 매몰돼 그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병원과 환자 관점에서 새로운 기술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 명확한 답을 가지고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자칫 길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황 교수는 "많은 병원이 IoT(Internet of Things)도 해야 하고 클라우드도 도입해야 한다면서 기술에만 매몰돼 있다. 도입 후에는 그래서 환자에게 어떤 점이 좋은지, 병원은 어떤 면에서 좋아졌는지에 대한 물음에 명확한 답을 못 내놓는다"며 "판독 시간을 비롯해 근무 강도가 얼마나 감소하고 어떤 면에서 생산성이 좋아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측정 과정이 없다. 그러다 보니 기술을 반짝 적용하고 2, 3년 뒤에는 유지도 제대로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황 교수는 "궁극적으로 데이터를 모으고 적용해서 환자의 위험을 경감시켜주는 길로 가야한다. 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을 세우고 기술적 허들을 어떻게 뛰어넘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전 사회적으로 의료데이터에 대한 거버넌스와 컨센서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황 교수는 "의료현장에서 AI나 빅데이터가 왜 중요한가, IoT로 어떤 데이터를 모을 것인가, 지금 EMR 시스템의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것인가, 현재 EMR을 중심으로 모인 임상데이터와 유전체데이터, 라이프로그데이터를 어떻게 모으고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거버넌스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런 거버넌스 구축에 대한 병원과 학계, 정부당국, 산업계, 무엇보다도 환자나 일반국민 사이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소셜 컨센서스 다음 단계로 '누가 무엇을 어디까지 하는가'라는 역할규정도 명확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기술 발전에 앞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병원이 진료를 하는 관점,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하는 관점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기술이 발전해도 방향성에 변화가 없으면 기술을 실제 진료에 제대로 쓰기 어렵고 새로운 의료서비스 변화를 따라가기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가 전망하는 EHR의 방향성과 과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청년의사 유튜브채널 '의대도서관' 영상 '나날이 발전하는 EHR, 여기까지 왔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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