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이번 의사파업을 이토록 격하게 만든 핵심 요인 중의 하나가 ‘의사는 공공재’ 발언이었다. 이 발언은 ‘공공재인 의사가 부족하니, 공공의대를 설립하고 공공의사(지역의사) 티오로 의사를 더 뽑아야 한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의료에 공공적 성격이 있는 것은 맞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의료를 완전히 시장에 맡겨 놓지는 않는다. 방법과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정부의 개입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

그러나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며, 의사는 더더욱 공공재가 아니다. 사람보고 재화라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사람이 사람 취급 못 받으면 당연히 열 받는다. 고시 합격해서 정부의 고위 관료로 일하는 사람이 이렇게 무식하고 무례해서 되겠나.

공공재란 무엇이냐.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로, 대가를 치르지 않더라도 소비 혜택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공공재는 보통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으며, 수익자 부담의 원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국방, 경찰, 소방, 공원, 도로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공재와 관련해서 정부의 역할은 공급 규모를 결정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집행하는 일이다. 세금을 걷은 다음, 그 돈으로 ‘공공재’라는 이름의 재화를 ‘구매’하는 것이다. 의사가 공공재라면, 정부가 의사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말이다. 공공재는 햇빛이나 공기와 같은 공짜 재화(이건 ‘자유재’라는 다른 용어가 있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에 필요한 폭탄이나 전투기를 민간에서 구입하는 것처럼, 민간 기업에 돈을 주고 도로 건설을 맡기는 것처럼, 의사가 공공재였으면 정부가 구매했어야 하는 거다.

(사람보고 물건이라 칭해서 기분 나쁜 건 논외로 하더라도) ‘의사는 공공재’ 발언에 의사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간 정부가 의사를 공공재로 취급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공공재 취급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령, 인구가 적은 지역에 공공재 의사가 없는 건, 정부가 공공재 의사를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일한 구매 결정권자가 물건을 사지 않은 게 문제인데, 물건보고 “너 왜 안 팔렸니?”라고 비난하니 듣는 물건들이 어이없어 하는 거다.

흉부외과, 외상외과, 소아외과, 산부인과, 감염내과, 응급의학과, 예방의학과 등의 전문의와 역학조사관, 기초의학자 등이 부족한 것도, 정부가 그런 분야를 전공한 공공재 의사를 구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는 공공재 의사가 어느 정도 존재했는데, 유일한 구매 결정권자인 정부가 그들을 구매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하는 바람에, 그 공공재들이 피부 미용이나 비만 관리 같은 다른 분야로 팔려가서 재고가 없는 것이다. 사라고 할 때는 안 사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쓸 만한 물건이 없다”고 짜증을 내니, 그 물건들이 묻고 있는 거다. 사실 돈은 있으시고?

공공의대 설립과 특수 분야 의사 양성을 위한 의대 정원 확대는, 복지부 관료들의 ‘의사는 공공재’ 발언을 원용해서 설명하자면, ‘공공재 의사를 생산하는 공장’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짓겠다는 뜻이다. 바보야, 물건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팔리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금 의사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아직은 재고가 좀 있으니, 지금이라도 공공재 의사를 좀 사시라고. 지금부터라도 공공재 의사를 제값 주고 구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향후 공공재 의사 생산이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고. 공장 지어서 물건 더 만들면 뭐하냐고, 그 물건들이 안 팔리면 결과는 똑같지 않냐고. 게다가 공장 짓는데 10년 넘게 걸리는데, 그 동안에는 어떻게 할 거냐고. 새로 짓겠다는 공장의 시설이나 원자재 꼴을 보니 좋은 물건이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은데, 그러지 말고 이미 만들어진 좋은 물건 사시라고. 공공재도 공짜는 아니니, 필요하면 예산을 세우시라고. 도로가 부족한 것이 정부 책임이지 건설회사 책임은 아니지 않냐고.

의사는 공공재가 아니다. 의료도 공공재가 아니다. 의료는 가격이 정해져 있고, 수익자 부담의 원칙도 적용된다. 의료는, 공공성이 매우 높은 특별한 민간재일 뿐이다. 시장에 맡기기 어렵고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의료가 공공재에 가깝고, 이 부분의 조달 책임은 정부에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공공재 의사 구매에 소홀히 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고, 앞으로 얼마나 어떻게 구매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조하기 위한 비유적 표현인 건 알겠는데, 그래도 이 상황에 당신들이 할 말은 아니다.

의사를 공격하기 위해 ‘의사는 공공재’라는 말을 호기롭게 내뱉은 관료들이여, 공공재의 의미를 좀 제대로 이해한 다음, 공공의료 인프라 구축에 실패한 정부의 직무유기나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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