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이번 의사파업은 20년 전의 그것과 다른 점들이 많다.

첫째, 이슈의 복잡성이 다르다. 2000년의 핵심 논점은 의약분업의 시행이었는데, 정책의 세부 사항들이 대단히 복잡했다. 기관분업이냐 직능분업이냐, 성분명 처방이냐 상품명 처방이냐 하는 큰 주제부터, 의약품 분류, 예외조항 마련, 실거래가 상환제 시행과 수가 인상, 조제료 책정, 대체조제 범위 등에 이르기까지, 논점들이 대단히 복잡했다. 전문가들도 세부사항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워낙 큰 틀의 제도 변화라서 제도 변경 이후의 상황을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들었다. 당연히 의료계 내부의 목소리도 갈라졌다. 정책의 세부를 조정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이 협상을 진행할 부분도 당연히 많이 있었다. (그 때문에 파업이 오히려 장기화된 측면도 있지만.) 그러나 이번엔 매우 단순하다. 의사를 4천명 늘린다. 사실상 이게 전부다. 의대 정원 증가폭을 줄이는 것 정도 외에는 협상 테이블에 올릴 내용도 별로 없다.

박재영 청년의사 편집주간

둘째, 정책 변화의 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의약분업의 결과는 ‘즉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비용의 증가든 편익의 증가든, 수입의 증감이든 부작용의 출현이든, 의약분업의 영향은 즉시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당연히 기성 의사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고, 전공의들이나 의대생들은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채 관망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책 변화의 효과가 최소 15년 후부터 나타난다. 정부는 현재의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급하게 밀어붙이는데, 의사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지역의사 부족이 그렇게 시급한 문제라면 시급한 해결책을 내놓았어야 하고, 장기적으로 대비해야 하는 과제라면 이렇게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시간을 갖고 의료계를 설득할 수도 있지 않나.

셋째, 위의 이유로 인해, 투쟁의 동력이 다르다. 사실 이게 가장 큰 차이다. 15~20년 후에 의사 인력이 크게 늘어난다는 건, 현재 50대 이상의 의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한 반면, 20~30대가 대부분인 의대생과 전공의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크다. 2000년에는 개원의들부터 시작된 투쟁이 의대 교수와 봉직의들로 확대됐고, 워낙 바빠서 제도 변화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전공의와 의대생까지 투쟁에 동참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렸다. 게다가 젊은 의사들을 ‘총알받이’로 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나왔었다. 하지만 현재의 전공의나 의대생들은 누가 시켜서 거리로 나온 게 아니다. (누가 시킨다고 말을 듣는 세대도 아니다.) 그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결집한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기성 의사들이 젊은 의사들에게 힘 조절을 주문해야 하는 상황이다.

넷째, 코로나19 위기라는 특수한 상황이 겹쳤다. 개원의들과 병원 경영자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해 있고, 봉직의들도 임금 감소와 노동 강도 증가로 힘들어하고, 전공의들과 의대생들도 노동 강도 증가와 교육의 질 저하로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덕분에 챌린지’라는 국민들의 응원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정부에 대해서는 ‘말로만 때우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하필 이 상황에, 말로는 고맙다고 하면서 선물 대신 엿을 먹인 거다. 특수한 상황이니 의사들이 단체 행동을 자제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특수한 상황이라 의사들의 파업이 더 큰 임팩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건 왜 모르나.

다섯째, 2000년에는 의사들과 정부 외에 약사 집단과 시민단체라는 변수가 더 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의사들과 정부의 싸움이라는 점도 다른 점이다. 지금은 정부가 제삼자로 빠지면서 싸움을 붙일 다른 대상도 없고, 명목상으로라도 중립을 지키며 중재에 나설 수 있는 시민단체도 없다. 누군가 중재를 하면 정부도 크게 체면 구기지 않고 못 이기는 척 타협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이렇게 일대 일로 붙으면 정부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여섯째, 정책의 명분이나 합리성 측면에서도 2000년보다 훨씬 못하다. 의약분업은 워낙 논의 기간이 길었고, 의약분업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별 이견이 없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아직도 못 하고 있는 게 비정상적이라는 것에는 충분한 공감대가 있었다. ‘어떻게’ 하느냐에 있어서도 선택의 문제가 있었을 뿐, 각각의 선택지의 구체적 모델이나 장단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서로 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원을 400명 늘리는 것과 지역의 의료공백을 메우고 특수 분야 의사와 의과학자를 확충하는 것이 서로 어떻게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다. 대학 입시에서부터 아예 별도로 선발한다는 계획인 모양인데, 자유로운 미래가 보장된 의대생들과 ‘지역 근무 10년’이라는 특별한 조건이 붙어 있는 ‘지역의사 후보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데 따르는 문제는 없을까? 지역의사 전형을 통해, 필시 일반전형보다 낮은 커트라인을 통과하여 의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지역 의료를 책임진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갖게 될까 아니면 ‘2류 의사’가 될 ‘2류 의대생’이라는 콤플렉스를 갖게 될까. 그들이 지역에서 10년간 일한다고 해도, 사명감으로 기쁘게 일하는 사람과 국방부 시계를 쳐다보듯 대도시로 나갈 날짜만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을까. 게다가 그 지역의사들의 일자리는 누가 어떻게 만들 건데? 각자 대출 받아서 개업하라는 건가? 인구가 자꾸 감소하는 지역에 병원을 열었다가 망하면 누가 책임질 건데? 공공병원 확충? 말은 많이 했으나 수십 년 동안 공수표였다.

특수 분야나 의과학자 의사 확충은 더 이해가 안 간다. 특수 분야는 대부분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가장 긴 시간의 수련을 필요로 하고, 의대를 다니고 수련을 받는 과정에서 해당 분야에 매력을 느껴 투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고교 졸업생 중에서 소아외과나 흉부외과나 외상외과나 감염내과 등을 전공할 사람을 미리 선발한다고?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별도의 정원으로 ‘의과학자 후보생’을 따로 뽑는 게 얼마나 웃긴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 중에서 정말 노벨상급 연구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가? 주요 대학 수석 졸업자들이 연구자에겐 미래가 없다고 피부과나 성형외과에 지원하는 현실에서?

설마 선발할 때는 조건 없이 400명을 더 뽑고, 해당 분야 티오만 늘린다는 건가? 지금도 티오가 안 채워지는데, 늘린 티오가 안 채워지면 강제로 배치할 건가? 무슨 수로?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의사국가고시 하위 10%는 지역으로 보내고 상위 1%는 기초과학자 코스로 보낼 건가? 이런 의문에 대해 정부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면, 정부도 답이 없는 거다. 안 될 거라는 걸 아는 거다. 갑자기 정부가 여기에 꽂힌 이유는 모르겠지만 전체 의사를 좀 늘리고 싶은데, 그냥 늘린다고 하면 명분이 약하니 지역의사, 특수분야 의사, 의과학자 양성이라는, 현실성 없는 명분을 갖다 붙인 건 아닐까. 10년쯤 지난 후에 여전히 소아외과 의사가 부족하면 또 의사들의 탐욕 탓으로 돌리면 된다는 계산까지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일곱째, 2000년의 의사들과 2020년의 의사들은 같은 종족이 아니다. 그때는 환자 보는 것 외에는 세상사에 관심도 없고 지식도 부족한 백면서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 의사들은 의료의 정치경제사회적 측면에 대해 훨씬 깊은 이해와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성의사들은 2000년의 의료대란을 통해 강제로 사회화되었고, 그 이후에 의대에 입학한 젊은 세대들은 의사가 교과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교육을 받았다. 의사도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일 뿐이라 생각하고, 의사-환자 관계나 학생/전공의-교수 관계도 하나의 계약관계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슬픈 사실이지만, 2000년의 의사들이 했던 ‘의사가 이런 행동을 하면 환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2020년의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덜 한다. 이유야 뭐가 됐든, 공연히 폼 잡다가 호구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욕먹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20년 전보다 늘었다는 의미다.

물론 같은 점들도 제법 있다. 정부의 정책 설계가 정교하지 못하다는 점과 의사들의 기본 정서가 억울함, 배신감, 자괴감, 분노 등의 감정이 격하게 뒤섞인 상태라는 점이 대표적이다.

몇몇 분야에 의사가 부족하다거나, 의사의 지역별 분포 불균형이 심하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의사를 4천명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의사들이 지방에서도 일할 수 있고 소위 ‘기피과’를 전공해도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대책까지 함께 내놓았더라면, 의대 정원을 늘리자는 정부 제안을 의료계가 큰 저항 없이 수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400명은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수라서, 어느 정도 조정을 요구했을 것 같긴 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부가 다른 몇 가지 대책을 함께 제시하면서 2000년 의료대란 이전 수준으로 200명 정도만 정원을 늘리자고 했으면 의료계가 반발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정부는 다른 대책은 거론하지 않으며 오로지 의사를 늘리겠다는 방안만 내놓았고, 그들이 ‘지역의사 300명과 특수 분야 및 의과학자 100명’이 될 것이라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서 그리 된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그 와중에 ‘한방 첩약 급여화’라는, 의사라면 누구도 동의하기 힘든 정책까지 함께 추진하고 있다. 파업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정치인들이 의사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참을 인자 세 번 쓰고 나왔다’, ‘의사는 공공재’ 발언은 압권이었고, ‘의료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장관의 말, ‘어떤 타협도 없다’는 집권당 대표의 말, ‘공권력의 엄정함을 세우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젊은 의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평소 의사들을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정부 지시를 따라야 하는 부하로 생각한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이렇게 자극할 필요가 있나. 2000년에도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 헛소리나 거짓말만 좀 덜했어도 일이 그 지경까지 흘러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정파가 집권하고 있다는 것과, 의료계에 제대로 된 리더십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20년 전 의사파업의 경과와 결과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지금의 의사파업이 어떤 경로를 밟아갈지 궁금하다.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부디 2000년의 의사파업과 현재의 의사파업이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지금은 그때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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