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체계의 新패러다임①] 생물감시 플랫폼 구축 연구 맡은 탁상우 박사 “상황적 인식 위해 필요”

지난 2015년 5월 발생해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 사태로 한국 의료체계가 가진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중 하나가 국가방역체계였으며 이를 강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감시체계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출발한다.

아직은 생소한 ‘생물감시(Biosurveillance)’가 그것이다. 생물감시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생물감시 국가전략보고서(The National Strategy for Biosurveillance, 2013)’는 생물감시를 ‘인간과 동·식물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모든 위해요소와 질병의 활동에 관한 필수적인 정보를 수집, 통합, 해석하고 이를 소통해 모든 대응 단계에서 보다 나은 의사 결정을 돕고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인식을 증대하는 데 기여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미국은 지난 2013년부터 생물감시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관련법인 ‘Pandemic and All Hazards Preparedness Reauthorization Act of 2013’을 제정했으며 국립생물감시센터(National Biosurveillance Integration Center, NBIC)도 설치했다.

지난해 4월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 공동으로 설립한 재단법인 ‘방역연계범부처감염병연구개발사업단’은 선진국 수준의 국가 감시시스템으로 생물감시체계를 주목했다. 사업단은 ‘감염병 공중보건 위기의 범정부 공동대응을 위한 한국 생물감시체계 플랫폼 구축’을 연구과제로 발주했다.

연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환경연구소 탁상우 책임연구원이 맡았다. 탁 책임연구원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에서 근무했으며 미국 국방부 소속 수석역학조사관으로 활동했다.

탁 책임연구원은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분절된 정보들을 통합해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하며 그 틀이 생물감시체계라고 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재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현실적인 대응책이 나온다는 것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환경연구소 탁상우 책임연구원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한국형 생물감시체계'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 생물감시라는 개념이 낯설다.

생물감시라는 용어는 미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01년 탄저균 테러 이후 미국에서는 BioWatch, BioShield 등 생물테러 위협을 감지하고 대응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법규도 만들었다. 이후 생물테러 대응을 감염병 대응 틀에서 바라보면서 공중보건 감시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생물감시(Biosurveillance)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생물감시는 생물테러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과 동·식물의 건강에 위협이 되는 모든 위해요소가 감시대상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조기에 위해 요소를 감지해 상황적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방역체계 등은 조기 감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상황적 인식이 더 중요하다.

- 상황적 인식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현재 상태를 인지하고 이해한 뒤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상황적 인식이다. 상황적 인식을 했다면 이를 토대로 정책을 결정하고 대응한다. 그 결과를 피드백한 후 현재 상태와 함께 놓고 다시 상황적 인식을 한다.

상황적 인식을 하려면 정보를 한자리에 모아 분석하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해석된 내용을 환류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 생물감시체계가 왜 필요한가.

이미 생물감시체계를 구축한 미국을 예로 들어보겠다.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이후 밝혀진 사실인데 미국 내 모든 정보기관에서 9·11 테러 징후를 감지했지만 이를 공유하지 않았다. 정보를 공유해서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봤으면 상황적 인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보 공유의 중요성이 주목받았고 생물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자료제공: 서울대 보건대학원 탁상우 책임연구원

- 이상적인 시스템인데, 분야별 정보를 하나로 취합해 분석하는 시스템 구현이 실현 가능한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미국은 9·11 테러를 계기로 생물감시체계 구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그래서 우선 부처별로 이미 구축된 감시체계를 통합할 계획이다. 각 부처에서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데이터를 플랫폼에서 함께 놓고 봤을 때 어떤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를 먼저 보여주려고 한다.

- 현재도 부처별로 필요한 정보는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정보를 통합하겠다고 하면 중앙집권식으로 결정권자만 활용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구축하려는 ‘한국형 생물감시체계’는 전체주의 국가 방식 정보체계가 아니다.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도 들어가서 볼 수 있고 정보를 활용하려는 기관도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정보가 환류되는 시스템이다. 물론 보안 문제는 부처별로 논의해서 열람 수위를 정하면 된다.

필요할 때만 정보를 공유해서는 상황적 인식을 하기 어렵다. 조류 인플루엔자를 예로 들면 환경부는 야생 조류를 모니터링한다. 철새 중에서 사체가 발견되면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그 결과 인간 전염성이 있는 경우 질병관리본부에 보낸다. 병원성이 없으면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어느 시점에 철새의 사체가 늘어나면 이를 통해 조류 인플루엔자 유행에 대한 상황적 인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이같은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지 않아 상황적 인식에 한계가 있다.

- 부처별 감시체계가 분절돼 있으면서 단편적인 정보만 주고받는 게 현재의 문제인가.

탁상우 책임연구원은 이미 생물감시체계를 구축해 운영 중인 미국을 예로 들며 한국도 분절된 정보를 통합, 분석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편적인 정보를 방향성 없이 공유하는 게 문제다. 정보를 제공한 기관에서는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 수 없다. 일방적인 관계라는 의미다.

이번 연구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정보 공유다. 부처나 기관별로 정보 공유가 원활해지면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정보 공유이기도 하다. 필요한 정보만 그때그때 공유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들어 원헬스(One Health) 정책이 추진되면서 항생제 내성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부처 간 협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정보 공유는 빠져 있다. 동물 영역 정보와 인간 영역 정보를 필요할 때 주고받는 게 아니라 실시간으로 같이 놓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사람, 동물, 환경을 관리하는 부처는 각각 달라도 ‘국민건강은 하나’라는 인식하에 다양한 건강위해요소로부터 국민건강 확보를 위한 범정부적 통합 대응체계인 원헬스 플러스(One Health+)를 추진하고 있다.

- 이번 연구로 ‘한국형 생물감시체계’ 플랫폼이 구축된다고 해도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처럼 관련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야 부처마다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관련 법이 제정되고 독립적인 제3의 기구를 설치해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질병 정보도 파악해서 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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