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체계의 新패러다임②]존스홉킨스대 제니퍼 누조 교수 “공중보건 위기에 빠르게 대응”
한국이 국가방역체계 강화 수단으로 주목하기 시작한 ‘생물감시(Biosurveillance)’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생물감시란 용어도 미국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발생한 9·11테러와 탄저균 테러가 생물감시체계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은 지난 2013년 국립생물감시센터(National Biosurveillance Integration Center, NBIC)를 설치했으며 관련법인 ‘Pandemic and All Hazards Preparedness Reauthorization Act of 2013’도 제정했다.
청년의사는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방역연계범주처감염병연구개발사업단이 지난 11월 19일 개최한 ‘2019 한국 생물감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존스홉킨스대 제니퍼 누조(Jennifer B. Nuzzo) 교수를 만났다. 누조 교수는 미국 정부와 국회가 생물감시체계 구축을 위해 구성한 각종 자문위원회 등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온 전문가다.
누조 교수는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중보건의 안전을 위해 생물감시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2001년 발생한 테러로 그 필요성을 체감하고 선도적으로 시스템을 갖췄지만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도 했다.
- 한국에서 생물감시는 낯선 개념이다. 생물감시라고 하면 생물테러를 먼저 떠올리기도 한다.
생물감시는 정보를 수집, 분석, 해석해서 조기 감지 시스템을 갖추고 전염병 발생과 기타 공중보건 응급상황을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말한다. 의사 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정보를 모으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넓게 봐야 한다. 질환별 환자 수 등 공중보건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떠올리는 지표들이 있고 학교 결석률, 의약품 구매목록 등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지표들도 있다. 이는 인간과 관련된 정보들이다.
동물 관련 정보도 있다. 여기에는 가축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날씨, 기후변화 등 환경 정보도 수집 대상이다. 우리는 환경이 인간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하고 있다.
- 생물감시가 왜 중요한가.
우리는 공중보건 위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전염병이 늘고 있으며 전 세계로 확산되기도 쉬운 환경이다. 생물감시는 어디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정보를 취합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생물감시는 새로운 개념 같지만 한국도 일부 요소는 오랫동안 해온 일이다. 그러다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면서 기존 시스템으로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을 것이다.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탄저균 테러로 인한 전염병 발생 후 시스템 부재를 인지했고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미국 생물감시체계에도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 2001년 발생한 테러가 생물감시체계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인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미국은 연방제이기에 주 차원에서 생물감시를 수행한다. 미국 중앙정부는 주정부 보건부가 정보를 모으고 분석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게 정보 취합이다. 기관마다 정보를 모으는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처나 기관별로 정보를 공유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생물감시체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생물감시에 관심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관심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다른 정치적 쟁점들이 생기면서 생물감시에 들어가던 지원금도 줄었다.
효과적인 생물감시체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초기에는 위기 상황을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위기 상황 발생 이후에 대해 고민한다. 적절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면 그와 관련된 정보도 필요하다.
정보 수집만 중요한 게 아니라 모아진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지 고민해야 한다.
누조 교수는 미국도 생물감시체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운영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좌절도 경험했다. 지난 2013년 설립한 국립생물감시센터(NBIC)가 대표적이다. NBIC라는 별도 기구까지 설치했지만 정부 부처나 기관들이 정보 제공에 소극적이라는 게 누조 교수의 지적이다. 정보를 제공해서 얻는 이득이 불분명하고 그 결과도 예상하기 힘들다는 게 정보 제공에 소극적인 이유다. 정보 소유권 문제 때문에 제공하기 힘든 경우도 많다고 했다.
누조 교수는 “NBIC는 지금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기관들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했다”며 “NBIC가 설립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성과를 내지 못하자 국회가 지원금을 삭감했다”고 말했다.
- NBIC는 관련법까지 제정해서 설립한 기구인데도 재정적 지원이 끊겨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그렇다면 한국이 생물감시체계를 구축해 꾸준히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 부처나 지자체, 연구기관들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줘야 한다. 또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재정적 지원 등 이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법적인 제재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도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묶이는 경우가 있다.
- 정권에 따라 지원이나 정책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모든 정권과 정당이 생물감시가 포함된 공중보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분야에 비해 지원이나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경제적인 문제가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 어떤 지도자도 국민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건에 대한 정보 부재를 원치 않는다.
- 생물감시체계 구축 작업을 이제 시작한 한국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크게 잡으면 자리를 잡기 더 힘들 수 있다. 초반에는 어느 한 분야를 정해서 정보 통합 등을 먼저 경험해보는 게 좋다. 추천하는 분야는 식품과 관련된 전염병이다. 경제적으로도 영향이 크고 다양한 정부 기관이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정보 공유나 통합을 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