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전문가 홀대는 유별나다. 얼렁뚱땅 탈원전을 결정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제일 끗발 좋은 위원장과 사무처장은 모두 비전문가였다. 비상임 위원 중에도 원자력 전문가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공공의대 설립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도 현 정권의 전문가 홀대는 두드러졌다. 이미 2년 전부터 문 정권은 공공의대를 설립해 일정 기간 의료 오지에 근무할 의사를 배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이며 이 분야의 전문가인 의사는 아예 논의 상대에서 배제됐다. 그러면서도 복지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가 전문가 코스
일부 고혈압약의 원료에 발암물질이 포함됐다고 알려지면서 올 여름이 더 뜨겁게 달궈질 전망이다.발사르탄 원료를 생산하던 중국 회사가 공정을 변경했는데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NDMA가 불순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유럽의약품청(EMA)에 보고했다. EMA는 바로 정밀 검토에 들어갔고 예방 차원에서 이 회사의 원료로 발사르탄을 제조하던 제약회사에 생산 중단 및 리콜을 요청했다. 캐나다, 일본, 홍콩, 타이완의 규제기관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도 발빠르게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메르스 사태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보건복지부에 정작 보건의료 전문가가 없거나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지 못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의사이며 성공한 의료행정가인 정진엽 전 분당서울대병원장이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정부가 보건의료 전문가를 우대하는 제법 괜찮은 그림처럼 비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장관은 호된 신고식을 치르는 중이다.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는 하나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피상적인 답변으로 일관하는 소신 없는 모습에 언론마다 비판 일색이다. 한 술 더 떠 우군일 줄 알았던 의료계도 애초부터 등을 돌리는 양상. 의료계가 반대하는 원격의료에 정 장관이 우호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어도,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보건복지부의 웹사이트 주소가 ‘www.mw.go.kr’인 것은 이 정부가 보건을 얼마나 졸로 보는지 단적으로 나타낸다. 보건복지부의 영문명이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이니 웹사이트 주소는 당연히 ‘www. mhw.go.kr’이 돼야, 즉 보건(health)을 의미하는 ‘h’자가 ‘w’자 앞에 들어가야 옳지 않은가. 그 뿐만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보건을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조직 인사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현직 장·차관과 본부 정책관·실·국장의 고위직 중에 보건의료 전문가는 단 한 명이다.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를 푸대접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4년에 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 개편된 이래, 부처를 거쳐간 장·차관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콩글리시이기는 해도 ‘쇼 닥터(show doctor)’란 말은 참 그럴 듯하다. 물론 ‘메디컬 인포테이너(infotainer)’ 정도가 적절한 영어 표현이렷다. 하지만 ‘쇼 닥터’라고 말 하는 순간, 방송 매체를 통해 근거 없는 의학적 치료법이나 건강식품의 효과를 설파하는, ‘돈 밝히는 돌팔이’ 의사의 삘이 충만해진다. 한 마디로 ‘쇼하고 자X졌네’라는 비아냥거림. 최근 주식 시장을 공황 상태로 몰고 갔던 가짜 백수오 파동에 연관돼 비난을 받는 여의사가 있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의사 남편 역시 특정 회사의 연고를 쓰면 10년 젊은 동안을 유지할 수 있다는 기이한 언급으로 세인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을 포함, 쇼 닥터로 불리는 의사들이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한국 공무원의 절반이 KTX 안에 있단다. 중앙부처가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여전히 수도권에서 출퇴근 하는 공무원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정작 만나야 할 사람, 중요한 사람은 대부분 서울에 있다. 당연히 서울로 오가는 공무원이 길거리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균형’ 또는 넓은 의미에서 ‘평등’은 어느새 한국 사회에서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는 공리 수준의 덕목이 됐다. 중앙정부 부처를 서울 이외의 지역으로 옮기는 것에 반대하면 국토의 균형 발전을 가로막는 이기적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인재와 자본, 문화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수혜는 오직 집중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 혜택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지역으로 균등하게 배분돼야 정의인 양 목소리를 높인다. 지역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려는 정부의 규제 개선안을 놓고 정초부터 의료계가 반대 열기로 후끈 달아 올랐다. 결론부터 말하자.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한다면 지난 60여년 동안 유지해 온 양·한방 의료이원화가 잘못된 정책이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게 된다. 사실 의학이면 의학이지, 어찌 의학을 양의학과 한의학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비록 일제강점기이기는 했어도 경험의학에 불과했던 전통 한방의료를 수행하는 직군을 의사가 아닌, 의생(醫生) 신분으로 격하해 규정한 것은 옳았다. 이 틀을 깬 것은 한국전쟁이었다. 전쟁 중 혼란을 틈 타, 1951년 피난 국회에서 소위 ‘한의사법’이 통과됐다. 당연히 하나여야 할 의료가 양방과 한방으로 이원화된 것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미드 ‘하우스(원제: House M.D.)’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드라마의 주인공인 닥터 하우스와 그가 이끄는 의료팀의 학문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 특히 다양한 기초의학 지식 앞에 경외심을 갖게 된다. 하긴 닥터 하우스가 기초의학 지식을 체계적으로 임상 상황에 적용해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는 것을 보면 실제 의사도 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약간의 과장과 극적 요소는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더라도 현실에서 미드 하우스에 등장하는 의사를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다. 왜? 현행 의과대학 교육으로는 닥터 하우스 같은 의사를 길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약 백 년 전인 1910년, 카네기 재단의 아브라함 플렉스너가 후에 ‘플렉스너 보고서’라고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잘 나가던 검사 출신으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던 모 변호사가 해당 기업의 비자금을 폭로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변호사가 7년 동안 100억이 넘는 돈을 받았고, 퇴직 후에도 고문 변호사 자격으로 수억원을 챙겼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대우 받을 것 다 받다가 왜 갑자기?’라며 시큰둥했다. 대기업의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주었다기보다는 폭로자의 과거 행적이 생뚱맞아 공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이 폭로는 석연치 않은 내부고발자 코스프레로 막을 내렸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부터 10년간 흡연과 연관성이 높다고 알려진 세 종류의 암으로 진단받은 3,400여명의 흡연자들에게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월급을 너무 많이 주는 것 아냐?” 회사 외부인이 사장에게 충고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귀가 얇은 사장이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우리 회사가 월급이 많긴 해.’ 그리고는 갑자기 다음 달 월급을 삭감했다. 그것도 15%나. 필경 이런 회사는 오래 버티지 못 한다. 좋은 인재들이 금방이라도 떠나 버릴 게 뻔하니까.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 주는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야 할 주부들의 원망이 녹록하지 않을 터. 당장 아이들 학원비를 줄여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일이 국가 연구비 지원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아직 최종 결정이 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선도 임상시험센터의 지원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상태. 사연은 이렇다. 어떤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효능을 입증하지 않아도 의약품의 허가는 물론 판매가 가능할까? 그것도 십수년째? 매출액도 어마어마해 최근에는 연간 800억원이나 팔렸다면? 동아ST(구 동아제약)의 스티렌을 보면 확실히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2002년에 스티렌이 허가를 받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처(구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출한 자료의 종류나 범위는 일반적인 화합물 신약의 허가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스티렌이 약쑥을 추출한 천연물신약이기 때문이었단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천연물신약연구개발촉진법’이었다. 어쨌든 스티렌은 임상시험을 실시하지 않고도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 투여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위염의 ‘예방’이라는 적응증을 덤으로 받았다. 그러다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문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집 대출금 상환과 신용카드 결제에 사용하던 미국 은행 계좌에서 지난달 갑자기 돈이 제 때에 빠져 나가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이 사실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은행에 전화를 했다. 대학생 아들 녀석의 세금 환급금이 내 계좌로 들어 왔던 게 화근이었다. 사정은 이랬다. 올해 세금 보고를 할 때 얼마 되지 않던 아들의 소득에 대한 신고를 대신 해주었는데 100불 정도의 세금 환급액이 내 계좌로 이체되도록 했다. 사단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거래 은행에서는 내 계좌로 입금된 세금환급금의 내역에 내 이름이나 사회보장번호가 없다는 이유로 아예 계좌를 동결해 버렸다. 세금 사기(tax scam)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네 보안 매뉴얼에 따라 그렇게 했다는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미 동부 북버지니아의 명문 공립학교인 우드슨 고에서 최근 수년 동안 잇달아 학생 자살 사건이 발생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워싱턴포스트 4월 12일자) 자살한 학생 중 한 명은 배치 고사를 앞두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글로도 표현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담당 선생은 거기에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들을 찾아 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라고 한다. 놀랍게도 한국의 자살사망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높아, 하루에 무려 44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자살에 관련된 사회·경제 비용이 연간 5조원에 달한다니 폐해가 심각하다. 남겨진 가족들이 평생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운동을 하다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행정 착오 때문에 의료보험회사에 제출한 클레임이 계속 기각됐다. 착오를 수정했지만 급여가 원래 계약했던 것보다 적게 지급됐다. 결국 수차례 의료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 및 상황 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이 와중에도 아들이 거쳐갔던 병원들은 약 8,000불에 달하는 고지서를 계속 내게 발송해 댔다. 이러기를 수개월,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급여 클레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다. 물론 의료보험회사를 상대하느라 그동안 난 진이 빠질 대로 빠져 버렸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보험은 피보험자(환자)와 보험자(의료보험회사) 사이의 계약이니 불평할 일은 아니다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3년 연속 흑자를 냈다고 한다. 특히 작년의 흑자 금액은 거의 3조7,000억원으로 최대 기록에 해당한다. 이로써 공단의 누적적립금은 8조2,000억원을 훌쩍 넘겼다. 작년에 13개 국립대학병원의 적자 총액이 1,000억원 정도였다. 따라서 단순 계산만으로도 공단의 누적적립금이 13개 국립대학병원의 적자를 82년 동안 보전해 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공단은, 병원들이 청구했지만 아직 지급하지 않은 진료비가 5조3,000억원이나 되기 때문에 실제 재정 여력은 약 3조원 정도라며 에둘러 과잉 해석을 경계하는 눈치다. 일반 회사였다면 공단의 흑자는 칭찬받아 마땅한 경영 성적일 게다. 하지만 경쟁자가 전무한 상태에서 이렇게 대규모의 흑자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연초 모임에서 한 영화평론가를 초청했다. 고액의 강연료를 받는 특A급 강사였다. 명불허전이라고,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되던 강연 내내 단 한 순간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강연이 끝난 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비싼 강연료를 지불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바 있는 클린턴도 고액의 강연료로 유명하다. 작년에는 이스라엘에서 45분간 강연을 하고 약 6억원을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클린턴 대통령의 비싼 강연료에 시비를 거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 정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부르지 않게 될 테니까. 그렇다면 한국에서 의사의 강연, 특히 제약업계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강연에는 얼마의 강연료가 지급될까? 강연 한 건에 보통 50만원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19세기 초 영국에서 발생한 ‘러다이트 운동(The Luddite movement)’은 흔히 기계 파괴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 이후 공장의 기계화에 내 몰린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통제에 반대해 기계를 부수는 방식으로 조직적인 저항을 벌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기계 도입으로 이전에 숙련된 작업공만이 할 수 있던 많은 일을 덜 숙련된 사람들도 할 수 있게 된 사실이 자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러다이트 운동 당시의 노동자들은 기계 도입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이들의 염려는 다른 데 있었다. 견습 과정을 거쳐 만족스러운 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이러한 기계를 운용하지 못 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현행법에 따르면 '새로운 학술 또는 기술 개발을 위해 수행하는 새로운 이론·방법·공법 또는 공식 등에 관한 연구용역'은 면세 대상이다.(부가가치세법시행규칙 제32조) 그래서 의약품의 허가 이전에 실시하는 1상부터 3상까지의 임상시험은 물론, 허가 이후에도 안전성 및 효능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탐색하고자 수행하는 4상 임상시험은 면세 조건을 만족하는 연구용역으로 간주돼 세금을 내지 않는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허가 유지를 위해 대부분의 의약품이 재심사의 일종인 4상 임상시험을 반드시 실시해야 하므로 연구비 비과세는 더욱 타당하다. 그런데 몇 달 전, 어느 대학병원이 비과세로 신고한 4상 임상시험 연구비에 대해 갑자기 국세청이 밀린 세금을 내라며 압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면세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지난 8월 한국제약협회는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잘못된 국민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제네릭 의약품의 우리말 명칭 공모전을 펼친 바 있다. ‘잘못된’ 인식이 무엇인가? 흔히 사람들이 제네릭 의약품을 ‘카피약’, ‘짝퉁약’, ‘복제약’이라고 부르며 폄하하는 것을 가리킴이다. 제약협회의 고민과 의도는 십분 이해하나, 용어를 바꾼다고 엇나간 신뢰가 회복될 리 만무하다. 그리고 제네릭은 이러한 종류의 의약품을 가리키는 전세계 공통 용어다. 이미 ‘동일제제’라는 용어도 국내법에 존재한다. 하지만 양질의 제네릭 의약품 사용이 활성화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바람직한 일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저가약의 대체조제 활성화와 성분명 처방을 정책 방향으로 표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의사들은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중요한 것은 방법론(methodology)이 아니라 대상(subjects)이다.” 초년 의사 시절, 대학원 지도교수께서 자주 강조하셨던 말씀이다. 당시에는 이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십수 년이 지난 지금, 오래 전 지도교수께서 강조하셨던 ‘방법론이 아니라 대상’이라는 그 말씀이 얼마나 예지로 가득한 것인지 문득 문득 깨닫는다. 방법론이란 연구의 ‘툴(tool)’을 가리킨다. 자료분석기법이라든가 컴퓨터를 이용한 모델링, 신기술을 사용한 검사법 같은 것이 이런 툴에 해당한다. 그런데 학문의 연륜이 짧을수록 방법론, 즉 툴에 마음을 뺏기기 마련이다. 새로운 연구 툴이 나올 때마다 유행처럼 그것을 쫓아다니기 쉽다. 방법론에 대한 집착은 브랜드 상품을 향한 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