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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제네릭 허가제도 개선 없인 발암물질 원료사태 재발 불가피이형기의 좌충우돌
  • 이형기 서울의대 교수
  • 승인 2018.07.11 15:29
  • 최종 수정 2018.07.12 14:09
  • 댓글 1

일부 고혈압약의 원료에 발암물질이 포함됐다고 알려지면서 올 여름이 더 뜨겁게 달궈질 전망이다.

발사르탄 원료를 생산하던 중국 회사가 공정을 변경했는데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NDMA가 불순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유럽의약품청(EMA)에 보고했다. EMA는 바로 정밀 검토에 들어갔고 예방 차원에서 이 회사의 원료로 발사르탄을 제조하던 제약회사에 생산 중단 및 리콜을 요청했다. 캐나다, 일본, 홍콩, 타이완의 규제기관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도 발빠르게 유사한 조치를 취했다.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여기까지만 보면 웬 호들갑인가 싶다. 혹자는 식약처가 주말에 발표를 해 혼란이 가중됐다고 비판하지만 호사가의 입방아다. 국민 안전을 위협한다면 새벽인들 뭔 상관이랴.

이번에 식약처가 제조와 판매를 중단한 발사르탄 제품은 54개 회사의 115개 품목에 달한다. 하지만 EMA가 리콜을 요청한 품목은 수개에 불과하고 영국은 두 회사의 8개 제품만 판매 중지 대상이다.

리콜 품목의 숫자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이유가 뭘까?

2000년대 초반, 당시 정부는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을 강행하면서 대체조제가 가능하도록 제네릭(복제약) 숫자를 크게 늘려야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생물학적동등성(생동성) 시험을 실시할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제네릭 숫자를 늘리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전 세계 의약품 규제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희한한 제네릭 허가제도가 등장했다. 바로 ‘위수탁 생동’ 또는 ‘공동 생동’이라는 제도다. 쉽게 말해 제네릭을 개발할 능력이 안되는 제약회사가 --- 이런 회사를 ‘제약’회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지만 --- 다른 회사에 ‘빌붙어’ 제네릭을 생산해 팔거나(위수탁 생동), ‘고만고만한’ 몇개 회사가 공동으로 출자해 생동성시험을 실시하고 판매하는 방식이다(공동 생동).

그 결과, 2001년에는 생동성을 인정받은 제네릭이 186개였는데, 2004년에는 무려 2,555개로 증가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위수탁 또는 공동 생동 방식으로 우회해 허가를 받은 제품이다.

그러다가 2006년에 생동성 자료 조작 파문이 발생했다. 당황한 정부는 위수탁/공동 생동을 제한했지만 몇 년 못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말았다. 예를 들어, 2015년에 생동성을 인정받은 품목은 총 1,215개이지만 이 중에서 직접 생동성 시험을 실시한 경우는 20%도 안 되는 238개에 불과했다.

정상적인 경로를 따라 생동성 시험을 실시하고 제대로 허가를 받은 제네릭이라면 숫자가 늘었다고 탈 잡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제네릭 진입 장벽을 비정상적으로 낮추면서 제품 개발 능력도 없고 제약회사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회사가 구렁이 담 넘듯 제네릭 허가를 받았다.

석연찮은 방식으로 제네릭 품목이 양산되자 시장 질서가 무너졌다. 상대적으로 제네릭의 약가를 높게 보전해주는 국내 제도도 이 과정을 가속화했다. 리베이트처럼 부정한 방법을 써서 장사를 하게끔 밑천을 대 준 셈이다.

더군다나 제네릭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제대로 품질을 관리하기 어려워졌다. 처음 허가를 받을 때에는 좋은 원료를 쓰다가 나중에는 값은 싸도 미심쩍은 품질의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로 갈아 타는 일이 허다해졌다. 저가약으로 대체 조제하면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단단히 한몫 했다.

자기 회사 이름을 걸고 오리지날이나 제네릭을 만드는 제약회사라면 허가 이후에도 제품의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제품 개발 능력이 떨어지는 회사가 위수탁 또는 공동 생동 방식을 통해 단 하나의 제조 회사에 의존하는 현 제도에서는 ‘나 몰라라’ 하기 십상이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발사르탄 원료 파동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요컨대 제네릭 원료 파동은 약 종류를 바꿔 언제든 재연될 개연성이 크다. 의약품 허가 제도의 근본은 환자, 즉 사람인데도 정부는 언제나 제품을 앞에 놓기 때문이다. 이 철학이 바뀌지 않는다면 정부가 강조하는 ‘안전한 식약 생활’은 공염불에 그칠 따름이다.

원료 파동의 와중에 발사르탄 오리지날을 판매하는 노바티스는 굳건하다. 이 회사는 문제가 된 회사의 원료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매출이 증가하는 중이다. 사람들도 점점 더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네릭의 품질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제네릭 회사를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제네릭 회사를 위협하는 이 상황이 희화적이지 않은가.

이형기 서울의대 교수  leehw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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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품화학 전공자 2018-08-07 08:34:35

    In Europe and Asia, Novartis, the company that originally developed the drug, said Sandoz valsartan and valsartan/HCT film-coated tablets are being recalled because they "do not meet our high quality standards." 의약품 생산에 대한 이해는 커녕 원료의약품이 뭔지도 모르는 분이 제네릭 탓으로 포커스 맞춰서 쓴 글이 기가 차서 남깁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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