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의 좌충우돌

[청년의사 신문 이형기] 보건복지부의 웹사이트 주소가 ‘www.mw.go.kr’인 것은 이 정부가 보건을 얼마나 졸로 보는지 단적으로 나타낸다. 보건복지부의 영문명이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이니 웹사이트 주소는 당연히 ‘www. mhw.go.kr’이 돼야, 즉 보건(health)을 의미하는 ‘h’자가 ‘w’자 앞에 들어가야 옳지 않은가.

그 뿐만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보건을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사실은 조직 인사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현직 장·차관과 본부 정책관·실·국장의 고위직 중에 보건의료 전문가는 단 한 명이다.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를 푸대접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4년에 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 개편된 이래, 부처를 거쳐간 장·차관 42명 중 좋게 보아 보건 유관 인사로 쳐 줄 수 있는 사람은 고작 5~6명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 우리 사회가 겪었던 혼란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더 말해 무엇하랴.

우왕좌왕하는 정부를 보며 사람들은 손가락질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보건의료를 왕따시키다가 급작스레 정부 내 관련 전문가의 리더십 부재를 비난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다.

‘메르스는 내가 막는다’며 독수리 오형제 코스프레를 이어간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행보도 역겹기는 마찬가지. 전문성은 차치하더라도, 언제 이들이 한 번 진지하게 보건의료의 현안에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던가.

메르스 사태가 잦아드는 이 시점에서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대폭 개선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돼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보건 기능을 분리해 보건부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런데 우습다. 보건복지부의 원조는 1949년 당시 사회부에서 독립해 새로 창설됐던 보건부다. 이후에 사회·복지·가족 기능이 보건부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부처명이 보건사회부, 보건복지부, 보건복지가족부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요컨대 현 보건복지부의 등기부 상 주인은 엄연히 보건의료란 말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로부터 보건부가 독립하라는 말은 마치 세입자 대신 주인이 집을 나가라는 주장과 비슷하다. 정작 내보내야 할 부서는 보건부가 아니라 복지부인데도.

미국도 그랬다. 보건의료 부서가 독립한 것이 아니라 복지 기능의 핵심을 담당하는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을 내보냈다.

사실 보건과 복지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잘 지낼 수 있는 시대가 지난 지 이미 오래다. 더 이상 질병이 가난을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보건과 복지를 별도 부처가 담당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더군다나 보건과 복지의 지향점은 동과 서만큼이나 멀다. 보건은 집단 전체에 차별없이 적용되는 보편성을 추구하나 빈곤층의 구제처럼 복지는 특정 집단에 초점을 맞춘다. 새로운 치료법의 도입처럼 진취성이 보건에서 중요하나, 원금 보전이 절대선인 복지는 보수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보건복지부는 보건부를 독립시킬 생각도, 복지부를 내 보낼 생각도 없는 듯 하다. 하긴 부처가 분리되면 갈 자리가 줄 게 뻔하다. 당연히 전문성과 경쟁력이 떨어지는 고위 공무원이 사력을 다해 반대했을 터.분리가 싫으면 웹사이트 주소라도 바꿔라.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제발 노란 점퍼(민방위복) 입고 다니지 마라. 토 나올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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