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감염학회 이동건 이사장 인터뷰①]
"'무천도사' 원하는 현실…근로환경 개선하고 보상 따라야"

우리나라는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대응을 잘한 국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이러한 배경에 감염병 현장에서 온 몸을 던져 희생을 자처한 의료진의 노고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감염내과 의료진은 국민의 안전을 사수하고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와 협력하며, 전장의 선봉에서 감염 관리 정책을 진두지휘한 일등공신 중 하나다. 그러면서 전국민에서 감염 분야는 '필수의료'으로 각인됐다. 하지만 최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이동건 교수는 여전히 감염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적잖다고 지적한다. 이동건 이사장에게 그 이유를 2회에 걸쳐 들었다..

이달 임기를 시작한 대한감염학회 이동건 이사장은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내비쳤다. 정부를 비롯해 일각에선 증원이 되면 낙수효과로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감염내과 등 필수의료를 전공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데, 이러한 전망이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동건 이사장은 3분 진료로 대표되는 임상 현실 속에서 의료기관 감염 관리는 물론 연구 성과까지 올려야 하는 감염 전문가들의 현실을 토로하며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이에 감염내과 전문의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와 적극 논의에 나서는 한편, 학회 차원에서 젊은 의사 등과 소통에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젊은 감염내과 의사들을 격려해주고 싶다고 했다.

대한감염학회 이동건 이사장(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대한감염학회 이동건 이사장(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감염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그간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1961년 11월 대한감염학회 창립 취지서에서처럼 '급성 감염질환의 대유행이 일어나고, 감염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그 연구는 너무나 미미'한 상황이다.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지만 여전히 (감염 질환) 유행은 반복되고, 각종 세균·진균·바이러스 등 미생물에 대한 이해와 진단, 치료제는 부족하다.

이런 와중에도 학회는 지난 60년간 꾸준히 감염과 관련된 학문적 소통과 그 역할을 대표해 왔다. 중요한 시기에 학회의 중책을 맡은 만큼 향후 2년간 전 집행부가 추진하고 있던 일을 지속하고, 미래를 위해 몇 가지를 보강해 학회 발전에 더 기여하고자 한다.

-임기 동안 주력하고자 하는 바는.

이사장으로서 첫 번째로 할 일은 전 집행부가 하고자 한 일을 잘 이어받는 것이다. 크게 두 가지인데, 먼저 감염전문가 충원을 위해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제도 개선에 적극 참여할 것이다. '필수의료'를 넘어서 병원과 지역사회를 연결하고, 타 임상과 및 직역과 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또 다제내성균 감염에 대한 새로운 치료제 조기 도입을 위해 정부와 업계를 설득하겠다. 대한항균요법학회·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등 유관학회와 항생제 스튜어드십 정착과 수가 신설에도 힘쓸 계획이다.

학회의 미래를 위해 몇 가지 보강하고자 하는 바도 있다. 먼저 학회 회원들이 더 원활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다. 특히 이제 막 감염질환을 전공하는 젊은 회원들이 서로를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집담회, 워크숍 등을 신설하고 활성화하겠다. 이를 계기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국적인 보건지표를 제시하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 그동안 준비한 'Infection & Chemotherapy'의 SCIE 진입을 완성해 학회의 국제적인 위상도 높이는 노력도 병행할 계획이다.

-국내 감염내과 전문의 현황은.

내가 2001년에 분과 전문의를 땄을 당시 그 연차의 감염내과 전문의는 전국에 10명이었다. 이후 내과 수련기간이 4년에서 3년으로 줄며 2개 학년이 동시에 나올 때 잠시 30명까지 늘었고, 코로나19 직전 연간 감염내과 분과 전문의 수가 20명대 수준까지 증가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점점 (전문의 수가) 줄어들어 현재는 1년에 17명 정도밖에 배출되지 않는다. 일례로 약 1,400병상인 서울성모병원 감염내과에 현재 전문의 6명, 펠로우 1명이 있는데, 비슷한 규모의 미국 병원에는 감염내과 전문의 20명에 이들이 각각 1명의 펠로우를 데리고 있다. 총 40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펠로우 1년차 때인 1999년 미국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감염내과 의사 25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국내 감염내과 의사가 펠로우까지 합쳐도 100명이 채 되지 않은 시기였다. 내 분과 전문의 번호가 42번이니, 우리나라 전체 감염내과 전문의가 50명 정도일 때 미국의 한 병원에서 25명의 감염내과 의사가 온 것이다. 당시 미국의 한 의사가 내게 어떤 업무를 하는지 물었고, 나는 외래도 보고, 입원 환자, 암 환자, 중환자실, 혈액내과까지 다 본다고 했다. 당시 한 미국 의사가 '나는 그 중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데, 당신은 정말 대단하군요'라더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칭찬이 아닌 '한국의 수준은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비웃은 것이다. 문제는 우린 아직도 당시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25년이 지났지만 현재 서울성모병원에는 감염내과 의사가 7명에 불과하다.

-업무 과부하가 상당할 것 같다.

2006년 미국 연수 당시 나의 멘토가 외래를 일주일에 한 번, 10~15명을 봤는데, 외래 후 나를 붙잡고 힘들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외래를 일주일에 세 번, 한번에 환자 100명씩 보고 있다.

통상 대학병원에 가면 '3분 진료'를 한다는데, 현실은 '2분 진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오는 환자를 막을 수도 없다. 내가 그 환자를 안 보면 그 환자는 죽기 때문이다. 내게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이 암환자, 이식환자다. 한 명이라도 진료를 더 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 환자들이 2분 진료를 해도 만족하고 갈 수 있도록 전날 밤에 병원에 남아 차트를 모두 열어보고 100여명 환자들의 상황을 정리해 놓는 것이다. 이렇게 8시에 진료를 시작하면 겨우 2시에 점심을 먹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현재 의대 증원이 초유의 관심사다. 일각에선 증원 후 낙수효과로 필수의료과에 전문의가 늘어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전혀 없다고 본다. 정부가 의사 수를 늘릴 수 있겠지만, (늘어난 의사들이) 소아과나 감염내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무천도사'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나? '전문과목이 없이, 월 1,000만원의 수익을 내는, 도시에 사는 의사'를 뜻한다. 수련기간도 필요 없이 의사 면허만 있으면, 개업한 선배 밑에 2~3년 들어가 배운 후 개업할 수 있으니 '전문의'라는 것이 필요가 없다. 심지어 피부과나 성형외과도 대학병원에서 남는 경우가 없어 고민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모자라다고 하는데, 적절하게 배분만 잘하면 모자라지 않다. 정부가 젊은 사람들이 힘든 것을 하지 않으려 하는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 수만 늘린다면, 결국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로 쏠리는 현상만 부추기게 될 것이다.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에서 의전원을 만든다면 물리, 화학, 항공공학 등을 하는 학생들은 모두 다 그곳으로 갈 것이다. 실제로 한 카이스트 교수가 어느 학생의 추천서를 쓸 때 '나는 이 학생이 의전원에 가는 것을 반대한다'고 쓴 사람도 있었다. 능력 있고 똑똑한 학생들이 모두 의대에 간다면 어떻게 되겠나. 또 그들을 다 의사로 만든다고 한들, 그들이 무의촌에 가거나 세상을 위해 봉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생각하고 직업을 선택한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그렇지는 않기에 그 중 책임감 있는 몇몇을 잘 발굴해,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학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격려하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젊은 회원들을 위한 모임 활성화가 그 일환인가.

그렇다. 특히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젊은 감염내과 의사들을 격려해주고 싶다. 이들이 충분히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보자고 격려하며 지치지 않게 도와주는 일을 학회에서 할 것이다. 학회는 현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고생해 준 젊은 의료진에게 '고생했다. 우리의 미래는 여러분들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자리가 없었다. 상도 윗사람들이나 받았지, 밑에서 고생하고 밤새 집에 가지도 못하며 환자를 직접 만나는 의료진은 이런 상을 받지 못했다.

학회는 젊은 의사들을 모아 학회 프로그램에서는 이야기하지 못하는 주제를 서로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 줄 생각이다. 주니어 스태프가 듣고 싶어하는 것은 깊숙한 이야기다. 예를 들면 보험 삭감을 어떻게 해결할지, 다른 과를 어떻게 설득하고 협업할지 등이다. 학회의 이런 노력들이 모여 젊은 감염내과 의사들이 '내가 좋은 곳에 들어왔구나. 일은 힘들지만 보람은 있다'라는 생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젊은 의사들에게 당신이 현재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들에게 시선을 맞춰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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