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의협, 의료현안협의체서 본격 논의
의협 “논의는 하지만…의사 수 오히려 줄여야”
총선 앞두고 지역마다 ‘의대 신설 마케팅’ 우려

3년 만에 다시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가 의료계를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안정화되면 논의를 진행하겠다는 의료계의 조건이 오는 6월이면 충족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시작하자고 대한의사협회 측에 꾸준히 요구해 왔다. 이때마다 의협은 “코로나19 안정화 선언이 먼저”라며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 근거는 지난 2020년 9월 4일 의협과 복지부가 작성한 ‘의정합의문’이다. 당시 합의문 첫 번째 조항이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협과 합의한다’였다.

하지만 정부가 코로나19 엔데믹을 선언하고 오는 6월부터는 위기단계도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 조정되면 의협으로서는 더 이상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다. 18일 오후 예정됐던 의료현안협의체는 24일로 연기된 상태다.

정부가 이미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정해 놨다는 보도도 나왔다.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3,058명에서 3,570명으로 512명 증원하는 방안이다. 복지부는 일단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복지부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의료계와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의대 정원에 관한 사항은 전혀 결정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정부 입장을 확고하다. 복지부는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서라도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증원 등 적정 의료 인력 확보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논의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복지부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은 의협 측에 의사 인력 수급 문제를 다룰 별도 위원회를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지난달 24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정협의에 따라 의료계와 (의사 수 확대를) 협의 중인데, 의료계가 논의를 회피한다고 해서 계속 끌려갈 수는 없다. 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엔데믹을 선언하면서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한다(ⓒ청년의사).
정부가 코로나19 엔데믹을 선언하면서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논의한다(ⓒ청년의사).

의협 “논의 시작은 하겠지만…” 의대 정원 확대 반대

의협이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시작해도 합의점을 찾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일단 의료계 내부 여론이 강경하다. 지난 2020년에는 이 문제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파업과 의사국가시험 거부라는 단체행동까지 감행했다.

의협은 오히려 의사 인력을 단계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는 2037년부터는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많고 그 이후에는 의사 공급 과잉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의협은 ‘2024년도 대학 입학정원 조정계획 수립’을 위해 의견을 달라는 복지부 요청에 따라 지난해 10월 이같은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의협 김이연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9.4 의정합의에 따라 코로나19 안정화 선언이 있으면 논의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오는 6월 1일부로 위기단계가 하향 조정되면 그 조건에 부합한다”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복지부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필수의료 분야를 전공한 전문의가 자기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현장에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현재 전문의는 많지만 자기 전공을 살려 그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가 적다. 미국에 비해 신경외과 전문의도 4배나 많지만 뇌수술 분야엔 남질 못한다”며 “필수의료 영역에 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일본을 주목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일본의사협회는 의사 수를 늘리고 싶어 하지만 일본 정부는 줄이고 싶어 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의사 수를 늘렸더니 의료 행위도 같이 늘고 보험재정 지출도 늘었기 때문”이라며 “일본 인구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한국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총선 앞두고 지역마다 ‘의대 신설 마케팅’ 우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의대 정원 확대가 ‘의대 신설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우려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거론하면서 정치권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의대 신설을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의대신설법안만 12건이다. 이공계 특성화대학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와 포항공대(POSTECH, 포스텍)도 의사과학자 양성을 이유로 의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계 내에서도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견이 나오지만 이들도 의대 신설에는 반대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박은철 교수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정합의에 따라 감축한 의대 입학정원 351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해 소규모 의대에 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공공의대 신설은 난센스”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선거 때마다 지역에 의대를 신설하면 의료 환경이 좋아지는 것처럼 홍보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공공의대를 신설하고 공공의료원을 만들면 그 지역 국회의원은 그곳을 이용하는가. 지금도 자기 지역구에 있는 공공병원보다는 빅5병원에서 진료 받기를 선호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선거용 구호가 아닌 합리적인 대안을 고민했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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