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아심장 분야 권위자 박인숙 전 의원
“의대를 만병통치약처럼 환상 심는 정치인들”
“미래 보이지 않는 소청과, 혁명적 대책 필요”

“정치가 한국 의료를 망치고 있다.”

박인숙 전 의원은 의료가 사회 문제가 돼 버린 현 상황을 이같이 표현했다. 박 전 의원은 재선 의원이기 이전에 소아심장 분야 국내 1인자로 불린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박 전 의원은 정치권이 한국 의료가 가진 문제를 본질적으로 개선하기보다는 의료를 ‘득표 전략’으로 이용하면서 더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의과대학 신설 문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의대 신설 요구가 이어지고 시민사회단체와 정부도 가세했다. 지자체들은 아직 ‘실체가 없는’ 의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전라남도는 TV 광고까지 하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정치권이 “의대를 만병통치약처럼” 이용하며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대가 생긴다고 해서 그 지역 의료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는 사실을 서남의대가 보여줬다고도 했다. 오히려 신설 의대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 부실 교육 피해자만 늘어난다는 지적이다. 지난 1995년 신설된 서남의대는 2018년 2월 폐교되기 전까지 ‘부실의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박 전 의원은 의대 신설에 투입할 재원을 지방의료원 등 그 지역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투자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의원은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직도 의대 신설 얘기가 나오는 현실이 기가 막힌다”고도 했다.

박 전 의원은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베일러의대(Baylor College of Medicine) 부속병원인 텍사스어린이병원(Texas Children's Hospital)에서 소아심장과 조교수로 근무했다. 지난 1989년 귀국해 3월부터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심장과 교수로 근무했으며 여성 최초로 울산의대 학장을 지냈다. 박 전 의원이 쓴 〈선천성 심장병〉은 선천성 심장병 학계에서는 교과서로 불린다. 제19대와 20대 국회의원(송파갑)을 지냈다.

박 전 의원은 우리아이들병원 명예원장으로 지금도 여전히 소아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

박인숙 전 의원은 청년의사와 만난 자리에서 의료가 정치에 이용되고 있다며 쓴소리를 쏟아냈다(ⓒ청년의사).
박인숙 전 의원은 청년의사와 만난 자리에서 의료가 정치에 이용되고 있다며 쓴소리를 쏟아냈다(ⓒ청년의사).

- 국회에는 의대 신설 법안만 12건이 발의돼 있으며 지자체마다 의대 유치 경쟁이 치열하다.

의대나 공공의대를 신설하자는 얘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되는 한 계속 나올 것이다. 자신의 지역구에 의대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이 표로 이어지기 때문에 득표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의대를 만든다고 그 지역 의료 환경이 좋아지는가. 그렇지 않다는 걸 서남의대가 보여주지 않았나. 의대를 만들기보다 거기에 들어가는 재원을 그 지역 공공의료기관을 발전시키는 데 쓰는 게 낫다. 의대를 설립한다고 해서 당장 그 지역에 근무하는 의사가 늘어나지 않는다. 그 재원을 지방의료원 의료 인력 확충과 시설 개선에 투입하면 당장 1~2년 안에 효과를 볼 수 있지 않겠나.

- 의료인력 부족뿐 아니라 의사과학자 양성 등 다양한 이유로 의대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이 의대만 신설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줘서 그렇다. 의대를 만병통치약처럼 말한다. 공공의료를 강화를 위해 그 분야에 종사할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게 얼마나 허황된 얘기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지방의료원을 의사만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가.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이 아프면 자기 지역구에 있는 지방의료원 가는가. 아니다. 그들도 서울 대형병원을 찾는다. 그래 놓고 의대만 신설하면 공공의료가 강화되고 지역 의료 인프라가 좋아질 것처럼 말한다.

- 연봉 3억~4억원 이상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지방의료원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됐다. 일부에서는 ‘의사들이 배가 불렀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하는 이유로 지방의료원 의사 구인난을 들기도 한다.

돈을 많이 주는데도 의사가 가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방의료원을 찾는 환자들이 질환군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의사 입장에서는 전공을 살리기 힘든 경우도 많다. 열심히 공부한 내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공무원이나 노동조합 위주로 돌아가는 문화도 의사들이 지원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의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지방의료원을 새로 설립하겠다는 지역도 늘고 있다. 의료원 설립이 선거를 통해 뽑힌 지자체장한테는 업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립해 놓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나 몰라라 하지 않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의료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는 다들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 한다.

소아심장 분야 권위자인 박인숙 전 의원은 '기피과'가 돼 버린 소아청소년과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혁명적인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소아심장 분야 권위자인 박인숙 전 의원은 '기피과'가 돼 버린 소아청소년과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혁명적인 발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청년의사).

소청과 전문의들, 소아진료 현장 떠나지 않도록 해줘야

박 전 의원은 의료체계 곳곳에서 ‘균열음’이 들리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부모들은 아이가 아프면 진료를 받기 위해 ‘오픈 런’과 ‘마감 런’을 하지만 정작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간판’을 내리는 고민을 할 정도로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청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박 전 의원은 소청과가 한국 의료의 위기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의사 수’만 늘리면 된다는 근시안적 대책만 나오고 있다고도 했다. 박 전 의원은 “의대 졸업생들이 소청과를 선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다른 필수의료과도 마찬가지다. 정원을 늘린다고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분야에 지원자가 더 오겠느냐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은 인터뷰 내내 “혁명적인 발상, 충격적인 수준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소청과를 전공하려는 의사들이 점점 줄고 있다. 2023년도 전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청과를 지원한 의사는 33명뿐이었다.

소아 진료에 평생을 바쳐온 입장에서 너무 안타깝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화가 난다. 소청과 전공의 충원율만 높이려는 근시안적 대책만 내놓아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저출산으로 소청과 진료 대상인 환자 수 자체가 적어졌고 소아진료 자체가 수익이 되지 않는 구조다. 소청과의원은 소아 환자만 봐서는 유지하기 어렵다. 대형병원에서도 소청과는 수익 면에서 하위권이고 타과 의사에 비해 인센티브도 적다.

요새 소청과의원을 보면 소아진료만 하는 곳이 없다. 성인 환자도 진료하고 도수치료에 발달 치료, 언어치료 등 다양한 분야를 한다. 소아 환자만 봐서는 병원을 유지하기 힘드니 수익을 낼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부모들이 아이 진료를 위해 몇 시간씩 기다리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폐업하고 있다. 점점 풀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의대 졸업생들이 소청과를 선택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소청과를 선택한 의사들만이라도 소아진료 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세부 전공도 소아 분야는 기피 대상이다.

위험부담이 크고 치료하기도 어려운 중증 위주로 보상이 더 강화돼야 하는데 정부 정책 방향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소아심장 분야를 전공한 소청과 전문의가 대학병원에서 일반 소아 진료를 하는 게 현실이다. 대학병원마다 소아심장 환자가 많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M&A도 필요하다. 모든 대학병원에 소아심장 전문의가 있을 필요는 없다. 권역별로 특정 분야 전문의들이 모여서 진료할 수 있도록 센터화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계 내부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 정부도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내놓고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가장 필요한 대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결국 수가다. 소청과 진찰료도 올려줘야 한다. 아이 한명을 진료하려면 여러 명이 참여해야 한다. 성인 환자 진료와는 다르다. 소아진료는 더 어렵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소아 환자를 본다고 해서 수가를 가산해주는 게 없다. 환아 나이에 따라 수가를 차등 지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린 아이일수록 진료가 더 힘들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소청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의사에게 축하금으로 1억원씩 지급하겠다는 정도로 혁신적이고 충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혁명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다.

-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그들에게 소청과를 전공하라고 권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면 한다. 의대를 다니는 아들이나 딸에게 소청과 등 필수의료 분야를 전공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할 수 있겠는가. 그저 시야를 넓히고 더 멀리 보라고 말하고 싶다. 원하는 대로, 후회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후회 없이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고 전공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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