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단국대병원 내가 전공의 2년차 알하사니
전공의 번아웃 공감…"근무량, 담당 환자 수 많아"
"무상의료 사우디, 대기시간 길어…환자는 한국 선호"

중동에 진출한 한국 병원과 의료진이 늘면서 '한국 의료'에 대한 중동 의사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단국대병원 2년차 내과 전공의인 무함마드 알하사니(Mohammed Alhasani) 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알하사니 씨는 한국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최초 사우디아라비아인이다.

단국의대와 단국대병원은 지난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 고등교육부와 의대 장학생 유치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의학 연수과정을 지원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하사니 씨와 한국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연수과정에 지원했던 동기들 중 알하사니 씨만 한국에 남았다.

의대를 지망하고 있던 알하사니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었던 지난 2013년 한국에 입국해 2015년 단국의대에 입학했다. 네덜란드에 유학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당시 대세였던 미국·유럽 유학이 아닌 한국행을 택했다.

내국인에게도 진입 장벽이 높은 의대 수업을 듣는 것은 그에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 때 의지가 됐던 게 동기와 교수들이었다. 그는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바로 귀국하려던 계획을 바꿔 단국대병원에서 수련을 받기로 결심했다. 한국 의료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알하사니 씨는 그렇게 '한국 내과 전공의'로 살고 있다. 청년의사는 알하사니 씨를 만나 사우디아라비아인 내과 전공의로서 한국 병원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었다. 오랜 한국 생활 덕분인지 한국어로 대화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단국대병원 내과 전공의 무함마드 알하사니 씨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의사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사진제공: 단국대병원).
단국대병원 내과 전공의 무함마드 알하사니 씨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의사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사진제공: 단국대병원).

- 한국으로 유학온 이유가 궁금하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게 유행이었는데 아시아 쪽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사우디아라비아 고등교육부와 단국의대가 추진하는 국비 유학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국비 지원으로 유학을 가려면 대입 시험에서 상위 5% 안에 들어야 하는데 운 좋게 좋은 성적을 얻어 지원했다. 사실 네덜란드로 갈 수 있었는데 한국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입국한 날이 2013년 2월 21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눈을 봤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계절이라는 게 딱히 없이 꾸준히 쭉 덥다가 정말 더운 시기가 오는 정도다. 사계절이 뚜렷한 게 사우디아라비아와 가장 다르다고 느낀 점이었다. 음식도 많이 달랐다. 사우디아라비아 음식은 느끼하고 짠 게 많은데 한국에는 건강한 음식들이 있어서 좋았다.

- 2013년 한국에 왔는데 의대에는 2년 뒤 입학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유학생들을 위해 단국의대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전용 수업을 마련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 그 프로그램으로는 의대 입학이 인정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의대생들과 같이 한국어 수업을 듣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후 대부분이 귀국하거나 전공과를 바꿔서 의대 프로그램에는 3명이 남았다.

이후 1년 6개월여 동안 어학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의대 입학 시험을 치렀다. 의대에 입학하려면 토익과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점수가 필요했다. TOPIK은 6등급이 가장 높은데 4등급을 요구했다. 입학 시험으로는 화학·물리·수학 시험을 쳤는데 3명 모두 합격해 단국의대에 입학했다.

- 의대 수업이 한국어로만 진행됐을 텐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의사국가시험도 한국어로 봐야 하지 않나.

보통 본과에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한다. 하지만 정반대로 예과 때 더 힘들었다. TOPIK 시험 4급을 딴 후 1년 6급을 취득하면서 일상 회화는 익숙해졌는데 의대에서 배우는 용어들이 너무 생소했다. 가장 어려웠던 게 수소, 탄소 등 화학 기호 용어였다.

국시를 준비하면서도 정형외과와 관련해 뼈 이름 등을 외우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의료법이나 여러 법들이 나오는데 쉽지 않더라. 하지만 의대에 입학하면서 나중에 법규 부분에서 헤맬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교양으로 법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미리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또 동기들 덕분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15학번으로 단국의대에 입학했는데, 한 번도 유급을 하지 않았다. 서로 ‘짤족’(기존에 출시된 문제들)도 많이 공유했고 굉장히 따뜻한 분위기였다.

국시 합격 후 면허를 발급 받는 과정도 험난했다. 지난 2021년 의사 국시에 합격하고 나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 면허를 신청했는데, 내가 의사 국시에 합격한 첫 사우디아라비아인이라 국시원에서도 무슨 서류가 필요한지 알아봐야 한다고 하더라. 여러 절차를 거쳐 면허를 받았다. 지금은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알하사니 씨는 능숙한 한국어로 환자들과의 의사 소통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사진은 알하사니 씨가 환자를 진찰하는 모습(사진제공: 단국대병원).
알하사니 씨는 능숙한 한국어로 환자들과의 의사 소통에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사진은 알하사니 씨가 환자를 진찰하는 모습(사진제공: 단국대병원).

- 병원 근무를 시작하면서 외국인으로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

한국은 한민족으로 이뤄진 나라기도 하고 병원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아 많이 걱정됐다. 특히 어르신들 중에는 어려운 말이나 사투리를 쓰는 분이 많다. 그런데 먼저 관심을 보이고 더 챙겨드리고 빨리 회복할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보여드리자 오히려 더 많이 챙겨주셨다. 회진 돌 때마다 과자나 요거트, 반찬을 하나씩 쥐어주셨다. 많이 걱정했는데 가족처럼 받아들여줘서 따뜻함을 느꼈다.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뭔지 체감하고 있다.

- 내과를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내과는 다른 과보다 환자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되는데 성격상 대화하는 것을 좋아해 지원했다. 평소에 친구들한테도 수다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리고 인턴할 때 여러 과를 돌면서 경험해보니 오랜 시간 수술하는 게 좀 힘들다고 느껴졌다.

내과 전공의로서는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다. 회진하면서 환자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처방을 낸다. 어려울 때에는 교수님과 상의한다.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 기도 삽관 등 간단한 시술도 하고 있다. 단국대병원에는 외국인 환자들이 많은데 한국어를 잘 못해서 영어로 설명드리는 일도 한다.

-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는가.

내과에는 연명의료 중인 말기 환자들이 많은데 그중 유방암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성형외과 인턴 시절에 소독을 해드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내과 전공의를 하면서 그 분의 주치의가 됐다.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전에 ‘선생님이 잘 챙겨주는 것 같다’, ‘선생님이 주치의라 다행이다’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 때마다 내과 의사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서 기억에 남는다.

근무 중에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이 봤는데, 처음에는 사망 선언을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그 때마다 '환자를 더 잘 챙겼어야 했는데', '내가 부족한 게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계속 남았다.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회진할 때마다 지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상태가 안 좋았던 환자가 걸어서 퇴원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 번아웃을 경험하는 젊은 의사들이 많다.

전공의로서 근무량이 많다는 점에 동감한다. 다른 나라에서 근무해본 적이 없어서 비교하기는 쉽지 않지만 80시간이라는 게 짧은 시간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근무 시간에 보는 환자 수가 정말 많다. 특히 당직을 설 때는 담당 환자 수가 더 늘어난다. 동시에 여러 환자가 상태가 나빠져서 누구부터 먼저 볼지 결정해야 할 때 어려움을 느낀다. 당직을 하더라도 다음날 정시에 출근해서 정규 근무도 해야 하지 않나. 사실 어젯밤에도 당직을 섰다. 그래도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기에 어려운 순간에는 동기들에게 도와달라고 할 때가 많다. 동기들 덕에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중간에 쉴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늘었으면 한다.

- 전공의로서 한국 의료를 경험하고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의료와 차이가 있는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의사로 근무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환자 입장으로 비교해봤을 때 한국 의료체계가 잘 구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립병원 진료비가 무상이다. 국가가 거의 모든 질환을 지원하기 때문에 수납이라는 개념이 없다. 반면 사립병원에 가면 본인이 진료비를 전부 부담해야 한다.

무상진료라고 하면 장점만 있을 것 같지만, 대기 시간이 굉장히 길다. 한국에서는 일주일이면 정밀 검사를 받을 수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훨씬 더 오래 걸린다. 그래서 환자 입장에서는 한국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한국처럼 국민건강보험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고 들었다. 한국처럼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것 같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좀 더 여유로운 것 같다. 친동생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의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한국보다 근무 시간이 짧다고 한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한국인과 아는 사이인데 근무환경이 정말 좋다고 하더라. 하지만 환자 입원이나 검사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부도 꾸준히 중동 의사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의료 기술을 여러 나라와 교류한다면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대병원이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병원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데 실력이 뛰어난 한국 의사들에게 (현지 의료인들이)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내과 전문의 취득 후에도 한국에 남을 생각이 있는가.

의사 면허만 취득하고 바로 귀국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기들, 교수님들과 오래 보기도 했고, 한국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해 남았다. 앞으로 단국대병원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따고 펠로우 활동까지 할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가면 다시 의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단국대병원 같은 3차병원에서 근무하고 싶다. 당장은 내과 분과 중에 어느 과를 선택할지 신중히 생각해 결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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