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병원 이동연 국제사업본부장
SKSH 등 국제사업으로 글로벌 위상·역량 확대
미주 진출도 염두…"한국의료 교두보 되겠다"
"후배들 비급여 매달리다 소진되는 것만은 막아야"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을 이끈 손흥민 선수는 '월드컵 키즈'로 불린다. 20년 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보고 꿈을 키웠다. 그리고 이제 영국 잉글랜드 프로축구리그(EPL)에서 활약하는 그를 보며 한국 축구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축구는 물론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는 스타는 그 분야의 성장을 이끈다. 국내에 머물던 시야가 전 세계로 확장되고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꿈을 갖고 도전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청년의사와 만나 서울대병원 해외 진출 청사진을 설명하던 이동연 국제사업본부장(정형외과)이 한국의료에도 '손흥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이 공공보건의료 개념 아래 국제사업에서 독자적 입지를 구축해온 이유기도 하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하기 싫어서 기피하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어도 못하는 현실의 벽 때문에 좌절하고 떠나는 것이다. 젊은 의사 필수의료 기피가 문제라면 해외 진출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의사로서 이상과 역량을 펼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

서울대병원 국제사업 역사는 2011년부터다. 중국 연길시중의병원 건강검진센터 컨설팅 사업을 시작으로 국제 공공보건의료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라오스 국립대병원 설립 컨설팅 사업과 우즈베키스탄 어린이병원 설립 컨설팅 사업이 진행 중이다. 10년 넘게 개발도상국가 의료인프라 발전을 지원해 온 서울의대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의 '사회적 책무 이행' 목표가 현지 병원 설립으로 이어진 셈이다.

지난 2014년 한국 정부 지원 아래 아랍에미리트연합국(UAE) 정부와 맺은 '셰이크칼리파전문병원(Sheikh Khalifa Specialty Hospital, SKSH)' 위탁운영 계약은 국제사업 전환점이 됐다. 서울대병원 의료진과 행정부서가 SKSH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의료 영역이 그만큼 넓어졌다. 이 경험을 살려 쿠웨이트 뉴자흐라병원(New Jahra Hospital) 운영 사업도 최종 계약 단계에 이르렀다.

국제 사업 활성화와 함께 서울대병원은 '한국의료 해외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SKSH에서 경력을 쌓고 현지에 정착해 의술을 펼치는 의사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 ‘네옴시티(NEOM CITY)’에 한국 대학병원 참여가 거론되면서 서울대병원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중동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사업 역량을 쌓은 서울대병원은 이제 태평양 건너 미주 지역을 보고 있다. 단순히 병원 확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료가 미국에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으로 20년 뒤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서울대병원 분원이 생길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서울대병원 분원의 존재가 아니라 그곳에서 활동하는 한국 의사들이 있을 거란 사실이다. 서울대병원이 한국의료 해외 진출 교두보가 되겠다."

청년의사는 SKSH 사업 총괄을 비롯해 지난 3년간 서울대병원 국제사업을 이끌어온 이 본부장을 만나 그간 성과와 목표에 대해 들었다.

서울대병원 이동연 국제사업본부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만나 국제사업 성과와 한국의료 해외진출 교두보라는 청사진을 밝혔다(ⓒ청년의사).
서울대병원 이동연 국제사업본부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만나 국제사업 성과와 한국의료 해외진출 교두보라는 청사진을 밝혔다(ⓒ청년의사).

- 최근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한국 대학병원이 참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SKSH 경험도 있고 서울대병원이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정말 '네옴서울대병원' 계획이 있나.

네옴시티 측이 생각하는 사업 방식에 따라 다르다. 병원 역량 향상이 담보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병원 건립부터 인프라 조성까지 서울대병원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거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인프라를 제공하는 대신 우리 인력을 대거 투입해야 한다면 매력적인 모델이라고 보긴 어렵다.

만약 네옴시티 전체 의료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컨설팅 사업이라면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중요한 점은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중동 지역에서 서울대병원이 역량을 신장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가 될 수 있느냐다. UAE의 SKSH는 의료진을 직접 투입했고 쿠웨이트 뉴자흐라병원은 현지 의료진 역량 향상에 초점을 맞춰 매니지먼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중동에서 소모전을 벌일 단계는 아니다.

- 이번처럼 병원 국제사업에서 서울대병원이 첫선에 뽑히는 배경엔 SKSH가 있다. SKSH 위탁 운영으로 서울대병원이 얻은 성과는 무엇인가.

병원 발전을 위해 재투자할 여력이 생겼다. SKSH 위탁운영으로 받는 매니지먼트 비용을 고려하면 서울대병원 본원 의료 수익과 맞먹는 이익을 국제사업에서 거두고 있다. 그만큼 병원의 재투자 여력도 커지는 셈이다. 환자안전이나 병원 경영에서 더 빠르게 글로벌 기준을 갖추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의료진과 직원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처음에는 낯선 언어와 문화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진료에 적용할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늘었다. SKSH 경력을 바탕으로 UAE 현지에서 활동하는 의사들도 있다. 온전히 개인 자격으로 시도했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SKSH에 참여하면서 면허·자격 문제가 해결됐고 진료와 언어·문화 양쪽에서 경험을 쌓으며 '준비된 인재'가 될 수 있었다. 한국의료 우수성을 알리고 위상 제고를 이룬 점도 중요하다.

- 인도적 지원과 봉사 차원과 다른 병원의 국제 '사업'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외부는 물론 내부 의견 수렴도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맞다. "우리나라 사정이 급한데 남의 나라까지 챙기느냐"는 의견도 있고 핵심 인력이 국제사업으로 이동하면 정작 본원 의료 역량이 저하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면 "우리에겐 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훌륭한 후배들이 많다"고 설득한다. 후배들이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 핵심 인력이 국제사업으로 빠진 적은 없다. 라오스 국립대병원 같은 컨설팅 사업은 교육 사업의 연장이라 병원 예상보다 교수들이 굉장히 적극적이다.

- 아시아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서울대병원의 '넥스트 스테이지'가 있나.

아직 병원 차원에서 구체적인 지역 설정은 없다. 차기 임원진 구상이 가장 중요한데 병원장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 다만 미주 지역 문을 두드려볼 때라고 판단하고 있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지만 현지 주립대병원과 협력해 의료진을 파견하는 모델은 충분히 가능하다. 단독은 아니라도 현지 의료기관과 공동사업 형식으로 거점을 마련해 서울대병원 의료진과 직원들이 돌아가며 현지 경력을 쌓으면 이를 바탕으로 '직영점' 운영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 언젠가 캘리포니아서울대병원이나 서울대병원 뉴욕센터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당장 우리 세대는 어렵다. 20년 정도는 소요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캘리포니아서울대병원 만들기가 아니다. 미국 진출을 당장 병원 매출과 성장 차원에서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10년, 20년 뒤 후배들을 위한 활동 무대 마련이 더 중요하다. 본인 마음 먹기에 따라 미국에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만약 서울대병원이 미국에 거점을 마련하고 성공적으로 정착한다면 비단 병원 구성원만 아니라 젊은 의사 누구나 현지로 오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 그럼 서울대병원이 국제사업에서 달성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목표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결국 '왜 굳이 국제사업을 하느냐'는 의문과도 맞닿아 있다. 먼저 병원의 공식적인 목표가 아닌 개인 생각임을 밝힌다.

우선 서울대병원 국제사업본부는 한국의료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전초부대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경험이 곧 국제사회에서 한국의료 위치와 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지난 3년간 국제사업에 참여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그렇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량과 강점을 목격하며 이를 후속세대를 위한 기회로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SKSH가 UAE 정착 계기가 된 것처럼 서울대병원 국제사업이 역량 있는 의사의 해외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한국 의료에 훌륭한 인재가 모이고 있지만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 '의료의 본질'에 봉사하고자 시작한 후배들이 전공의가 되고 전문의가 될 때쯤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다. 선배로서 의료계의 삼성전자나 네이버는 못 만들어줘도 최소한 후배들이 비급여 진료에 매달리다 소진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나. 큰일 하게끔 해줘야 한다. 박세리의 US오픈 우승을 보고 박세리 키즈가 골프를 시작했고 손흥민을 보면서 축구 꿈나무들이 세계 어디든 뻗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의료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안에서만 맴돌면 개중 장사가 되는 방향으로 틀 수밖에 없다.

- 국내 의료계가 필수의료 붕괴를 논하는 시점에 젊은 의사 해외 진출을 강조하는 게 말이 되냐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필수의료 차원에서도 해외 진출은 중요하다. 의대생들이 처음부터 필수의료를 절대 안 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수의료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오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러나 본인 의지와 능력이 있어도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만약 국내에서 기회가 없어도 해외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어떨까.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참여자는 많아진다. 손흥민이 해외 리그에서 활동한다고 국내 선수가 부족하지는 않다. 오히려 축구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더 많아졌을 것이다.

물론 의료계 상황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시도는 해봐야 한다. 국내에서 필수의료 양성하겠다면서 억지스러운 정책만 내면 안 된다. 젊은 의사들에게 필수의료도 활로가 있고 자기 이상을 펼칠 무대가 있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서울대병원이 국제사업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우수한 인적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과 서울대 의과대학·간호대학이 공공의 의미를 생각하는 인재를 양성해왔기 때문에 가능했고 앞으로도 가장 큰 자산이자 강점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속에서 서울대병원의 역할, 한국의료의 역할을 꾸준히 찾아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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