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영준비뇨기과의원 이영준 원장

한창 바쁜 시간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형님, 저 준희유! 서천 준희유! 한 사람 아주 딱혀유. 불쌍한 사람 모시고 서울서 내려간께 오늘 수술 좀 잘 혀주슈! 꼭 오늘밤 늦게라도 해주슈잉!”

준희 씨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씩씩하게 들렸다.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1998년 나는 충남 서천군 기산면에 공중보건의사로 발령받았다. 기산면은 서천읍과 한산면 사이에 있는 작은 면으로 중심에는 면사무소와 초등학교, 파출소, 우체국, 농협수퍼와 소방서가 150미터 반경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말뫼다방도 그중 하나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말뫼다방으로 모였다. 모두 모이면 누가 누군지 소개하지 않아도 다 안다. 말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근엄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은 면장이다. 부드러운 양복에 유행하는 넥타이를 맨 싹싹한 분은 농협 조합장이다. 파출소 소장과 소방서장은 제복 차림이다.

“이번에 보건지소장으로 새로 오신 분이지요?”
면장이 나를 보고 먼저 아는 체를 한다.
“예, 저는 비뇨기과를 전공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신고식이 끝나기도 무섭게 질문이 쏟아졌다.
“요즘 미국에서 좋은 약이 나왔다고 하던데요?”
그 무렵 비아그라가 한국에 상륙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는데 벌써 들은 모양이다.
“작년에 미국 다녀오신 우리 형님이 먹어보았다는데, 아주 좋다던디유.”
농협 조합장이 어떻게 좀 구해달라고 한다. 매일 점심시간은 비뇨기과 관련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졌다. 비아그라, 포경수술, 전립선, 여성요실금, 남성수술 등등 사람들의 궁금증은 무궁무진했고, 나는 매일 특강을 했다. 이후 우리는 그 시간을 말뫼다방 특강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농협 조합장이 아주 우락부락한, 마동석처럼 순하고 잘생긴 남자를 데려왔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아당기며 은밀히 화장실 쪽으로 이끌었다.
“소장님께 긴히 부탁드릴 게 있슈우.”
조합장은 마동석처럼 생긴 남자의 바지를 잡아 내리더니 “이것 좀 어떻게 빼줘요. 우리 집안 장손이유” 한다.

만져보니 성기에 뭔가 딱딱한 것이 들어있었다. 귀두 밑은 반쯤 썩어서 진물도 났다. 바세린종이 썩어서 원액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성기를 키운답시고 넣어도 엄청나게 넣었다. 비뇨기과 관련 아는 것이 없는, 무식한 사람이 주사기로 넣은 것이다. 남성 성기의 해부학을 모르는 경험 없는 초짜가 넣은 것임은 첫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많은 양을 넣을 곳은 형무소 유치장밖에 없다. 어떠한 환경이었을지 훤히 그려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깨끗하게 사춘기 총각처럼 만들어 드릴게요. 흉터를 잘 살려서 더 크고 멋지게 만들 수도 있어요.”
조합장 얼굴이 환해졌다. 옆에 서 있는 덩치 큰 사람의 표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놈이 우리 큰집 조카요. 집안 장손이지요. 바다서 해태 양식을 하는디 군산 애들허고 어업권을 놓고 쌈이 벌어져 많은 사람이 다쳤어유. 큰집 다녀왔지. 콩밥 먹고 나왔다닝께유. 거기서 입방 기념으로 꼬추에 이걸 허고 나왔슈우, 세상에! 우리 소장님만 믿어요.”
그렇게 만난 사람이 준희 씨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경찰병원에서 전공의로 전투경찰 의경 대한민국 순경들의 음경바세린종 수술을 4년간 하고 왔으니까. 수술 난이도를 10단계로 보았을 때 이런 정도는 1단계요.”
자신만만한 나의 대답에 조합장도, 준희 씨도 마음이 놓이는 눈치였다.

서천보건소 의약계 계장님께 중증 환자가 발생해서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전화로 지원요청을 했다. 얼른 가까운 원광대 병원으로 보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서천군 8개 보건지소 소장들에게 수술이 있다고 통보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수련 받지 않은, 의대만 나온 보건지소장들이 내가 하는 수술이 보고 싶어 몰려왔다. 나는 기산보건지소 평상에 신문지를 깔고 수건으로 환부를 덮고 수술을 준비했다.

리도카인과 봉합사는 한산면보건지소 치과에서 빌리고 포셉과 니들호울더와 이동식 보비는 서해병원 응급실에서 빌렸다. 마취 주사를 놓고 남성 성기 해부학을 강의하면서 수술을 라이브로 보여주었다. 환자의 음경은 포경수술을 하지 않고 바세린 연고를 주사기로 밀어 넣은 상태로 바세린은 포피로 밀려 나와 있었다. 일반인의 눈에는 아주 괴상망측해 보일 수 있지만 전문가의 눈에는 아주 쉬운 수술이었다.

수술 시간 약 30분이 경과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수술 전과 후가 지옥과 천국으로 나뉘었다. 수술을 지켜보던 조합장은 “과연 신의 경지요, 훌륭한 솜씨입니다” 라며 경탄했다. 마동석처럼 침묵을 지키던 준희 씨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지가 우리 소장님을 평생 형님으로 모시것습니다. 저는 정말 바보가 되는 줄 알았시유. 군산 의료원 가보니 불가능하다고 했어유. 다른 병원 몇 군데도 댕겨봤는디이, 인생 볼짱 다 봤다고 포기하고 돌아가라고 하대유. 아버지는 제가 유치장 갈 때 충격받아 돌아가셨슈. 진짜로 죽어버릴라고도 생각했어유.”
“맘고생이 많았군요.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예, 고마워유, 형님! 앞으로 형님, 꽃길을 걷게 하것습니다.”
준희 씨는 덥석 내 손을 잡으며 형님, 형님, 연신 허리를 굽혔다. 꽃길을 걷게 하겠다는 말이 당시는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기산면 보건지소는 그날 이후 수술 센터로 변했다. 환자가 보령, 부여, 청양, 군산 그리고 멀리 전북 김제에서도 찾아왔다. 모두 바세린종으로 성기가 썩어가는 응급 환자들이었다. 대부분 바다에서 양식업에 종사하는데 힘은 세고, 돈은 많고, 시간은 없는 사람들이라서 도착 즉시 수술을 원했다. 수술 후 드레싱을 받으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주 멀리서 오는 바쁜 사람들이라서 수술로 만족했다. 준희 씨가 드레싱은 직접 하라고 안내해 주기도 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서 예약도 없이 찾아왔고 오전에 환자를 보면 오후에는 수술을 했다. 대부분 준희 씨의 대학 선후배로 거친 바다에서 양식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술비는 준희 씨가 알아서 받아줬다. 기억하기로는 건당 70만 원은 족히 된 것 같은데 일주일에 보통 20건은 그런 수술이었다. 그러자 큰 문제라고 생각한 아내가 장인어른께 일러바쳤다. 대전에 사시는 장인어른께서 찾아오셨다.
“내가 대충 들었네. 그런데 보건지소에서 수술을 해주고 받은 돈을 의사가 직접 가져가는 것은 문제가 있네. 나중에 일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이렇게 하여 나의 기산면 보건지소 음경 수술 신화는 5개월 만에 접고 말았다.

1999년, 2년 차 공중보건의로 서천군 서해병원에 배치 받았다. 이젠 합법적으로 비뇨기과 과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근무 첫날부터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대부분 준희 씨가 보내준 음경바세린종 환자였다. 전라북도 바닷가, 충남 바닷가, 목포에서도 환자가 왔다. 전립선비대증, 여성요실금 환자 등 비뇨기과 환자로 나의 수술 스케줄은 꽉 찼다. 다행스럽게 서천군에는 비뇨기과 개업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선배 개업의사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어 마음껏 일할 수 있었다. 서천에 비뇨기과 새역사를 쓰는 신화를 만들고 서해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 2년을 마무리했다.

공중보건의사라는 직분으로 36개월의 국방의무를 끝내고 충남 서산의료원에 취업했다. 서산의료원에는 매이저 과목으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가 있었고 마이너과목으로 비뇨기과만 있었다. 그런데 나의 수술로 비뇨기과는 일반외과와 정형외과 그리고 산부인과 신경외과를 앞섰다. 나를 찾아오는 바세린종 환자들은 확대되어 멀리 제주도에서도 찾아왔으니 서산의료원에서 비뇨기과는 명실상부한 메이저 과가 되었다.

어느 날 준희 씨가 서산으로 찾아왔다.
“형님도 이젠 서른일곱이시유. 나와서 꿈을 이루실 때가 되었어유. 인제 형님도 벤츠를 타셔야지유. 우리 형님은 대한민국에서 세금 최고로 많이 내게 될 거여유. 세금만 최고로 많이 내면 인생은 다 풀리게 되어 있시유. 제가 큰집에 있을 때 일본의 어느 부자가 쓴 『2% 부자의 법칙』을 읽고 큰 감명 받았었슈. 2% 안에 드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새벽에 날마다 ‘올해도 세금을 일등으로 낼 수 있게 기운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어유.”

듣고 보니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었다. 세금을 일 등으로 많이 낸다는 것은 소득이 일 등이라는 것 아닌가. 참으로 듣기에 좋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출근길에 하늘에 기도를 드렸다.
“하느님, 제가 세금을 제일 많이 내게 도와주십시오.”

개업 3년 차 되는 어느 날 테니스 모임에서 이비인후과 강 원장이 말했다.
“우리 이 원장 참으로 대단해! 서산에서 의원 중 세금 1등이래요. 근데 더 대단한 것은 2등과 3등을 합친 것보다 많대요. 아주 탁월한 일 등이지요.”
내가 정말 그런가? 나도 깜짝 놀랐다. 정말 하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건가, 나는 하늘을 우러렀다.
개업 8년 차 되는 어느 날에는 소아과 후배가 오더니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대전에서 소아과 모임이 있었어요. 서산에서 왔다고 하니 서산의 비뇨기과 의사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대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대전, 충남, 충북, 세종을 모두 대전 세무서에서 총괄하는데 4개 광역단체 의사 중에서 소득세 랭킹 1위가 서산의 비뇨기과 의사래요.”
후배는 나를 바라보며 “원장님이 맞지요!” 한다.
이제 개업한 지 21년이 지났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공중보건의 시절에 준희 씨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수술을 거절했다면, 지금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꽃길을 걷게 해주겠다던 준희 씨 말이 떠오른다.
“하느님, 제가 세금을 제일 많이 내게 도와주십시오.”
출근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수상소감 -삼성이영준비뇨기과의원 이영준〉

-숨어 있는 비뇨기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5년 전 우연히 비뇨기과학회 밴드에 “발기부전 치료 인공보형물 삽입술 시 합병증에 관하여”라는 보고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읽은 어느 원로 시인이 필자에게 문학적 재능이 다분하다고 글을 써보라고 권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좋은 주제가 떠올라도 첫 줄을 시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술술 써 내려가는 것이 이야기이고, 그 행간 사이사이 가슴에 와닿는 느낌을 형상화하면 수필 문학이 된다는 것을 알기까지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원초적 본능이란 무궁무진한 글감의 보고임을 알았고, 비뇨기과 이야기는 깊고 깊은 태평양의 심연이었습니다. 극히 제한된 소수의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보물창고 말입니다.

그 심연에 숨어 있는 소재들을 형상화하여 세상 사람들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고귀한 청자연적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널려있는 소라 껍데기를 꺼낸다면 그것으로 작은 소품이라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심연의 재료를 다룰 수 있음은 제가 받은 축복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물질하여 꺼내 써보려 합니다.

이런 기회를 주시는 한미약품과 많은 작품 속에서 저의 작은 이야기에 관심을 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읽어주실 독자를 생각하면 설렘으로 두근거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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