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병원 이비인후과 정다정 임상교수

우리는 흔히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한마디의 말은 천금과도 같다" 라는 표현을 한다. 이러한 천금과 같은 말은 어느 때 가장 적합한 말일까? 물론 사람마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과 사의 기로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주치의의 한마디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요즈음은 전공의 특별법으로 전공의 생활에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14년 전 전공의 1년 차의 생활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꽤나 힘든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만큼, 환자나 보호자를 대할 때에도 온화한 말투로 대하기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내가 수련을 받았던 대학병원의 두경부외과는 특히, 응급과 위중한 환자가 많은 편이어서, 당시의 나는 하루하루가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전공의 생활이 조금씩 적응되어 가던 1년 차의 가을, 빡빡한 병원생활 속에 감정이라곤 메말라버린 나에게도 삶에 대해, 그리고 한마디 말이 주는 힘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된 기회를 만났다.

2인실에서 늘 아내와 함께 조용히 창밖을 쳐다보던 50대 후반의 남성. 환자는 혀 기저부 암의 임파선 전이로 혀의 대부분과 양측 목의 임파선을 절제한 환자로, 22시간가량의 긴 수술을 시행 받은 환자였다. 장시간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환자는 암의 진행과 상처의 염증으로 입원 중 2차례 경동맥 파열을 경험하였고, 당시 두경부암 환자의 주치의 경험이 많지 않았던 1년 차로서의 나에게 처음으로 목격한 경동맥 파열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두려운 경험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솟구치는 출혈, 피범벅이 된 손으로 상처를 지혈하며 환자 침대에 올라타 이동하는 고년 차 전공의 선배, 거친 숨을 내쉬며, 마취과에 연락을 하면서 수술실로 뛰어가는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환자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한편 에는 다시는 이러한 일을 경험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지혈 수술이 끝나고 환자분이 입원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안도감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든 건 수술 중 잠시 잊고 있었던 극도의 불안감이었고, 해당 병실의 복도를 지날 때면 나는 한껏 날을 세운 고슴도치처럼 안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환자분께는 늘 곁을 지키는 아내가 있었다. 항상 말이 없고, 조용하고, 병실을 방문할 때면, 큰 불만이 없이 나직이 고맙다는 이야기만 한 번씩 하셨던 보호자여서, 사실 많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입원 중 꽤 오랜 시간 환자분의 상처는 염증으로 일부의 혈관이 노출된 상태였고, 나는 하루 3~5번의 소독을 하면서 환자의 경과를 확인하고 보고하였다. 회진 후에는 고비를 넘기기 힘드실 수도 있겠다는 동료와 선배들의 조심스러운 의견이 들리기도 했고, 예후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내가 보기에도 상처는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늘 말이 없던 환자분의 아내가 회진을 준비하던 나를 찾아왔다. “회진 때 의사선생님들이 남편 손을 한 번씩만 잡아주면 안 되나요?” 조용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며 물으셨다. 힘든 부탁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오후 회진을 돌면서 담당 전공의였던 나와 선배들은 돌아가면서 환자의 손을 잡아주었고, 힘내시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매번 손을 잡아주면서 회진을 진행하던 며칠 후 여느 날과 같이 회진을 돌고 병실을 나서는 데, 환자분의 아내가 조용히 환자 곁으로 다가와 한마디를 건넸다. “OO 아빠, 선생님들이 오늘 당신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하셨어. 매일매일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하시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대학병원에서 15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지금의 나라면 유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당시 경험이 적은 나는 보호자의 이 한마디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내가 환자 상태에 대한 설명을 정확히 못해서 병식이 제대로 없으신 건가?’ ‘내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정확하지 못한 설명을 했다고 고년 차 선배나 교수님께 꾸중을 듣지는 않을까?’ 생각이 짧았던 나는 아내분과 면담을 하면서, “제가 환자분이 좋아지고 계시다고 설명했나요? 지금의 상태는 안타깝지만 심각해질 수도 있고, 그런 일이 없길 바라지만 위험한 상황이 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 이해하고 계시는 거죠?” 그러고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하나하나 조목조목 설명해 나갔다. 다소 싸늘하고 딱딱한 말투. 약간은 다그치는 듯한 설명. 젊은 의사의 배려 없는 대화에도 보호자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너그러운 얼굴로 조용히 대답했다. “다 이해하고 있고, 아기 아빠 상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보호자분은 조용히 병실로 돌아갔다. 머쓱해진 나는 순간 말을 잃었고, 내 생각이 짧았음을 반성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환자의 아내는 똑같이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환자분께 전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나의 주치의 기간이 끝나고도, 몇 개월간 환자는 여러 차례 수술과 입원치료를 받았고, 놀랍게도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퇴원을 하셨다. 그때, 환자의 아내는 주치의였던 내가 미처 하지 못했던 천금보다 값진 말을 환자에게 전해주고 있었으리라.

시간이 흘러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병원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경험하며, 말의 중요성을 느끼며 지내던 나에게 다시 한번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이과영역을 전공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환자분들의 치료를 맡아오던 중, 80대 중반의 진행된 두개저 골수염 환자를 만났다. 환자는 두개저 골수염과 경동맥의 가성동맥류 파열로 인한 대량 출혈로 응급실을 내원하였고, 촌각을 다투는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 첫 번째 혈관중재술로 대량 출혈이 호전되었지만, 일주일 뒤 또다시 대량출혈이 발생하였고, 또 한 번의 혈관중재술을 시행하였다. 두 번째 시술 후 다행히 추가적인 출혈은 없었지만, 두개저 골수염은 나날이 진행되어 패혈증을 피할 수는 없었다.

환자분께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늘 병원에서 환자를 간병하시던 두 아들 내외분과 환자분의 임종 하루 전 처음 뵈었던 마지막 아들 내외분. 환자분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는 잘 모르셨던 두 보호자분들께 요청하신 대로 나는 병실에서 설명을 드리기 시작했다. 환자가 위중한 상태셔서 곁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직접 설명은 듣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이 있어 그러실 거라 생각하며,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때까지도 나는 내가 한 말을 아주 오랫동안 후회할 상황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보호자의 마지막 두 마디의 질문을 듣기 전까지.

“어머님은 가망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이신가요?”
“많이 힘드실 수 있습니다. 위독한 상태이시고, 중환자실 치료는 원치 않으셔서, 현재 상태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병은 처음 들어본 병명인데, 희귀병이나 암같이 치료비를 5%만 내면 되는 그런 병은 아닌가요? 응급으로 받은 시술은 많이 비싼가요?
“금액적인 부분은 알아보고 조금 후에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둘러 병실을 나오면서, ‘마지막 치료비에 대한 이야기는 환자분 앞에서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고 무거운 걸음으로 늦은 퇴근을 하던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정까지 몇 분 남지 않은 시간. 나는 환자의 임종을 보고받았다.

‘치료비를 걱정하는 자식의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리지는 말 걸… 생활이 녹록지 못해 부득이 늦게 어머니를 뵈러 온 것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병실이 아닌 곳에서 면담을 했다면, 그래서 환자가 그 대화를 듣지 못했다면, 3명의 아들 내외가 환자의 손을 따뜻하게 한 번쯤 더 잡아줄 정도의 시간은 벌 수 있지 않았을까?’

얼마 전 친정어머니와 지인의 통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래도 내가 암이 아니라 심장병이 있다는 게 오히려 행운인 것 같아. 심장병은 일이 생기면 바로 죽게 되니까, 자식들이 병수발하느라 고생하는 일은 잘 안 생기겠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환자의 얼굴이 어렴풋 떠올랐다. 의식이 온전치 않으셨지만, 그날 그 환자분도 이러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자신의 병이 자녀들에게 짐이 되었다는 미안함…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 그날의 대화가 천금의 무게로 환자의 가슴을 짓누른 건 아닌지 2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수상소감 - 경북대병원 정다정>

대학병원에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근무하면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오고 있지만, 돌이켜보니 참 많은 경험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환자분의 경과가 좋아 즐거웠던 기억도 있지만, 그런 기억은 잠시, 의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좋았던 경험보다는 아쉬웠던 기억이 훨씬 더 강렬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한번씩 저를 괴롭히곤 합니다. ‘그때 이렇게 했었더라면. . .’ 하는 아쉬운 순간이나 ‘다음에는 꼭 이렇게 해야지. . .’ 하고 스스로에게 되새김한 이 작은 글귀가 문학상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상을 하게 되어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른 의료진 선생님들도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하셨을 테지만, 아마 조금은 덜 바쁜 제가 글로 남기게 되면서 받게 된 상이 아닐까 합니다.

무뚝뚝하고,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애매하고 중립적인 표정. 대부분의 의사들의 표정을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은 이렇게 기억하지 않을까 합니다.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내용을 공부하고, 거의 비슷한 하루 일과를 보내며, 비슷한 경험이 쌓인 저에게는 딱딱한 얼굴 피부 아래로 미세한 작은 표정변화가 누구보다 또렷이 보여지기도 합니다만, 지금의 의료현실에서 환자분들이 짧은 시간 만나는 의료진의 감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필이라는 기회를 통해 보다 많은 의료진 분들의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 안에 환자분의 경과에 따라 울고 웃는 의료진의 진짜 표정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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