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호스피스병원 김기경 

호스피스병원은 치유가능성이 없고 증상이나 기능적 장애로 가정에서 돌볼 수 없는 말기암 환자들을 임종 시까지 치료해 주고 고통을 완화해 줌으로써 남아있는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보내다 편안하게 임종할 수 있도록 돌봄을 제공하는 곳이다. 이런 도움은 비단 환자에만 국한되지 않고 어려움을 함께 견디며 감당하고 있는 가족들에게도 같은 맥락에서 유사하게 주어진다. 질병의 치유를 통한 건강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병원과는 달리 호스피스병원의 환자와 보호자들의 대부분은 오랫동안 많은 검사와 힘든 치료과정을 거쳐 오면서 이미 많이 지쳐 있던 상태에서 ‘치료불가’ 라는 말기 판정을 받고부터는 치유에 대한 기대나 희망도 잃고 절망의 나락에서 극한의 고통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장기간의 고되고 힘들었던 투병생활마저 죽음이라는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리면서 육신과 정신은 소진되고 감정은 극도로 예민해지기도 한다. 환자의 다양한 증상이나 치료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쓰고, 작은 일에도 쉽게 오해하거나 고까워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감정과 정서는 의사와 간호사는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환자나 보호자들과 만날 때에는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과 위안이 되면서 실망이나 상처는 주지 않기 위해 용어나 어투, 몸짓까지도 조심하고 절제하게 된다.

그러지 않아도 삶과 죽음이 상존하는 병실에서 시시각각 조여 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힘겹게 투병하고 있는 환자들을 돌보다 보면 의사 역시 매 순간을 날 선 긴장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육신과 영적 고통의 완화와 편안한 임종이라는 대의 명제 앞에서 상황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거부하거나 회피하거나 해태할 수도 없으며 오직 필요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절대 책임만을 지고 가야 하는 것이 의사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였던 어느 부부의 특별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5년 전, 갓 60을 넘은 남편은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으나 이미 뇌와 뼈까지 전이가 된 상태로 수술은 못하고, 병을 낫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서울의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병은 진행되었고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를 지내고 3일째 되는 날 ‘치료불가’ 판정을 받았고, 두통과 섬망, 어지러움 등의 증상으로 그다음 날 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하였다. 세 살 연하인 부인은 남편과 같은 폐암으로 1주일 뒤 수술이 예약되어 있던 상태에서 더 이상 집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급하게 남편을 입원시켜야 했고, 3일째 날 본인의 수술을 위해 귀가하였다.

입원한 남편은 보호자가 없는 상태에서도 약물이 투여되면서 통증이나 섬망 증상은 다소 안정적으로 조절되어 갔으나 많은 시간을 눈은 감은 채 말을 걸어도 별 반응 없이 누워있으면서 기력이 처지는 등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는 여전하였으며, 부인이 수술 후 회복하고 다시 입실할 즈음에는 미열이 나고 얼굴도 불그스레해지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다 상주 보호자로 다시 들어온 후로는 대화하고 깨어있는 시간이 다소 많아지고 표정도 밝아지면서 섬망도 덜해지고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곤 하였다. 그리고 꼭 1주일이 되는 날, 아침 회진을 하면서 본 두 부부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커튼으로 반쯤 가려진 작은 공간 속의 침상 분위기는 놀랍도록 활기가 있고 화기和氣가 넘쳐 보였으며, 침상에 누워있던 환자와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있던 보호자 주변으로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화기애애하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환자의 증상이 완화되어 기분이 좋아진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일상적인 인사를 건넸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아버님, 오늘은 얼굴에 붉은 기운도 없어지고 많이 좋아 보이시네요.”

다행히 희소식으로 환자와 보호자에게 첫 아침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 그들도 공감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던 중, 병세가 일시 호전되었을 때 환자나 보호자들이 일반적으로 보이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면서 좀 더 색다르고 극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구체적인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남편의 얼굴을 조물조물 쓰다듬고 있던 부인의 환한 표정과 이를 즐기는 듯한 남편의 흐뭇해하는 표정에서는 애틋한 사랑의 기운이 조금 달라진 정도를 넘어 화끈함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다소 감정이 격앙된 듯한 부인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청하지도 않은 놀랍고 수수께끼 같은 신묘한 체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고, 그동안 단단하게 응어리진 채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부부간의 어둡고 아팠던 내막까지도 풀어놓았다.

남편은 착실하고 가치관이 확고하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퇴직하고 출판사를 경영하였고, 부인은 자기주장도 있으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조용한 성격으로 고등학교 과학교사를 하다 명예퇴직하고 개인 사업을 하였던 전직 부부 교사였다. 이들 부부는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교직에 있으면서 맞벌이로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이 살아온, 어쩌면 남들의 부러움을 받기에 충분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성과 가족의 여건들이 치열한 현세를 살아가는 데 있어 좋은 성정이고 장점일 수도 있으련만, 교사라는 동일 직종이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라는 다른 학교에서 느끼는 상대적 우열의 감정과 자기 본위의 강고함이 지나치고 서로 간의 이해나 타협 없이 각기 다른 곳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던 이들 부부 사이에는 충돌과 갈등이 싹텄고 이는 무관심으로 깊어져 갔다. 한 가정 속의 같은 가족이었지만 서로의 마음은 멀어졌고 작은 스킨십도 거부되었으며 이별을 위한 연습에 익숙해지면서 남편은 교회에서, 부인은 성당에서 따로 예배를 보는 지경까지 치닫게 되었다. 좋아하고 화목해질 수 있는 서로의 장점들은 무시되고,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핑계들로 갈등만 키워가면서 두 부부는 서로를 백안시하며 지내왔다.

말기암 진단을 받으면서 남편의 성격은 더 예민해지고 고집은 세어졌으며 점차 기력이 떨어지고 섬망 같은 신경 증상이 나타나면서는 의사소통은 물론 약물의 도움 없이는 간병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한편, 오랫동안 남편의 병 수발로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지난해 말 남편과 같은 폐암진단을 받은 부인은 이제는 그동안 남편이 이제까지 해왔던 암과의 싸움을 자신이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은 격랑으로 소용돌이쳤고 더욱 어렵고 아픈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1월 초 폐수술을 받고 특히 전이가 없이 종양이 깨끗하게 제거되었으며 남편과는 달리 수술만으로 폐암이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크게 안도하고 다시 생명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체험하면서 힘들었던 마음도 많이 회복되었다. 절망과 재생의 굴곡진 아픈 시간을 지내면서 강고했던 심경에 깨어지고 부서지면서 회복되는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남편의 보호자로 다시 입실한 부인은 얼마 지나지 않은 즈음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회진이나 처치를 하면서 건네는 ‘좋아졌다’ ‘예쁘다’는 이야기에 유난히 남편의 표정이 밝아지고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우연하게 알게 되었다. 특히 ‘예쁘다’는 말에 천사 같은 모습으로 바뀌는 남편의 표정을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는 의구심이 들어 ‘정말 (내 남편이) 그렇게 예쁘냐’고 간호사에게 물었고 ‘예, 예뻐요’라는 당연하다는 듯한 대답을 듣는 순간에도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내 남편이) 그렇게 예쁜가’ 하는 의문을 다시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큰 기대 없이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고집불통에 인물이라고는 볼 것 없는 밉상으로만 각인되어 있었던 남편의 모습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정말로 예뻐 보였고 그 후로 그런 좋은 감정은 이제까지도 여일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에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로 이어갔다.

“남편이 며칠 전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해요. 스킨십도 잘 받아주고요,”
전혀 기대할 수도 없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놀라운 일이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오늘은 뽀뽀까지 하자고 했어요.”

이 대목에서는 입을 한 손으로 반쯤 가린 채 나의 면전으로 가까이 들이대며 신기한 비밀 이야기라도 해주듯 속삭였다. 남편이 건강을 되찾았다는 기쁨 때문일까, 부부 사이였지만 한동안 잊고 지냈던 애정표현과 사랑을 새롭게 경험하면서 느끼는 벅찬 희열 때문이었을까. 부끄러움이 섞여있으면서도 신이 나는 몸짓으로 새롭게 되찾은 꿈같은 두 부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궁금했던 그날의 수수께끼는 그렇게 모두 풀렸다.

“호스피스병원이지만 보기 드문,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네요. 부부 간에 아쉬움 없도록 행복한 관계 회복하시고 끝까지 좋은 시간 가지세요.”
신나고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회진을 마치고 돌아 나왔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등 뒤로 보람을 전해주는 작은 메아리가 내 귀를 간질이었다.

영육靈肉이 사위어가고 절망만 있을 것 같았던 삶의 마지막 여정에서, 자신의 심경心境의 변화를 통해 영적인 회복과 사랑을 되찾았던 한 부부의 놀라운 체험을 보았다. 주치의로서 시한부 생명의 끝에서 마음은 절망하고 육신은 지독한 증상들을 견디며 극한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와 이들을 지지해 주며 마음을 지키고 있는 보호자들을 만나면서, 이들도 앞서의 부부처럼 부부 간이나 가족 간에 서로의 선한 실체를 바르게 인식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준비될 수 있다면 갈 사람이나 보내는 이들에게 최선이자 최고의 위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환자는 호스피스환자 중에서도 드문 예로서 입원 시 보다 다소 회복되고 안정된 상태가 되면서 집 가까운 병원으로 전원하였고, 그 후의 소식은 듣지 못했으나, 요즘도 그 병실을 지나칠 때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던 이들 부부의 환영이 떠오르곤 한다.

한미약품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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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 샘물호스피스병원 김기경〉

2022년 성탄을 앞두고, 새해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수상 소식을 들으니 무려 2년 동안을 기쁜 소식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기쁨도 두 배이다. 우선 이런 귀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청년의사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대 교수로 봉직하다 정년퇴직을 하였으며, 그 후 제자 병원을 거쳐 현재는 호스피스병원에서 특별한 진료를 하고 있다. 이렇게 의료와 인연을 맺고 함께 해온 세월이 46년이 되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차안대(遮眼帶)를 차고 달리는 말처럼 앞만 쳐다보며 달려온 것 같았으나 차분히 뒤를 돌아보니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도 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소위 ‘작은 나의 버킷리스트’도 몇 가지는 경험해 보았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여야 할 것은 주변의 많은 도움으로 대과大過 없이 이제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긴 과정에 많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그들의 질병을 만나면서 어찌 우여곡절이 없었고 희로애락이 없었을까마는, 처음 의사가 되면서부터 마음에 견지해 왔던 의사로서의 나의 영혼에 깊은 상처를 줄 큰 변고變故가 없었으며, 그로 인해 오늘도 환자 곁에서 진료를 할 수 있음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처음 호스피스병원에 근무를 시작하면서 특별한 상태의 환자들과 낯선 진료 환경에 적응을 하고 일정 자격기준을 갖추느라 어려움도 있었다. 나의 건강이 언제까지 힘이 되어줄지 알 수 없으나, 호스피스환자 진료가 나의 의사로서 마무리하는 천직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환자와의 좋은 인연으로 상까지 받게 되니 보람도 크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고, 이를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운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뻔뻔함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한편으론 해봐도 좋겠다는 격려를 받았다는 믿음이 생기기도 하였다.

계묘년 벽두에, 뒷다리가 길어 경사를 잘 오르는 토끼처럼 위를 보며 꾸준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죽으면 털과 가죽까지 모든 것을 사람에 주고 가는 토끼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건강과 행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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