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임상의사로 일한 기간은 짧았지만, 저에게도 쇼피알의 경험이 있습니다. 인턴 때 파견 나갔던 병원의 응급실에서였습니다. 5~6세 정도 되는 여자 아이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응급실에 왔는데, 도착하자마자 시행한 심폐소생술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심장은 곧 멎었습니다. 울면서 따라온 아이 엄마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얼굴은 거의 다치지 않아 아이가 멀쩡해 보였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현장에 있던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의 의료진들 중 누구도 아이의 사망 사실을 아이 엄마에게 쉽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명시적인 제안이나 지시는 전혀 없었지만, 우리는 돌아가며 긴 시간 동안 쇼피알을 했었습니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땀도 많이 흘렸고, 어쩌면 눈물도 흘렸겠지요. 의사라는 직업은 참 쉽지 않은 것이구나 생각했던 듯합니다.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청년의사 박재영 편집주간

청년의사가 주간지로 재창간했던 지난 2000년 초, 뭔가 ‘재미있는’ 코너를 만들고 싶었던 저는 지인들 중 가장 ‘웃기는 데 진심인’ 주웅 선생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오로지 ‘웃음’을 위한 짧은 칼럼을 써달라고 했지요. 당시 공중보건의사 말년이라 시간이 많았던 그는 흔쾌히 허락했고, 원고지 5매 분량의 짧은 유머 칼럼이 연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칼럼의 제목이 ‘주프로의 쇼피알’이었습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는 ‘쇼피알’이라는 단어가 의사라는 직업의 ‘웃픈’ 속성을 잘 드러내는 단어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쇼피알이 필요한 상황은 참 다양하지 않습니까.

주프로는 주웅 선생의 필명이자 그가 당시 사용하던 이메일 아이디입니다. 어느 날 골프장에서 서로를 김프로, 이프로, 박프로 등으로 부르는 팀을 만났는데, 골프는 더럽게 못 치더랍니다. 알고 보니 그들의 직업이 검사라서 서로를 그렇게 호칭했던 겁니다. 물론 그 ‘프로’는 프로페셔널의 준말이 아닙니다만, 그때 주웅 선생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니들만 프로냐. 나도 프로다. 의사라는 프로페셔널이자 웃기는 데 프로페셔널. 앞으로 나도 주프로라고 불러다오.’ ‘주프로의 쇼피알’이라는 코너 이름의 탄생 뒷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칼럼은 4개월 동안만 지속됐습니다. 그가 산부인과 전공의가 되어 너무 바빴기 때문이죠.

그로부터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2001년 말. 청년의사 편집국에서는 2002년 신년을 앞두고 지면 개편을 위한 회의가 한창이었습니다. 신문사에서 지면 개편 아이디어 회의는 늘 어렵습니다. 새로운 연재물을 기획하는 건 기사 아이템 하나를 찾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니까요. 돌아가며 아이디어를 내보았지만 다 거기서 거기. 답답했던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황당무계한,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 대환영. 모두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뜨릴 만한, 그런 아이디어 좀 내봅시다. 혹시 모르잖아요, 그런 한마디에서 뭔가 건질 수 있을지.”

지금은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막내 기자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도 재미있는 만화를 좀 실어보면 어떨까요?” 참석자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뭐래? 의료 전문지에서 무슨 만화? 누가 그릴 건데? 네가 그릴래? 뭐 이런 분위기였지요. 그 순간, 두 명의 인물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이제 2년차 말이 되어 그래도 시간 여유가 생겼을, 아마도 개그 본능을 억제하고 사느라 힘들었을 주프로입니다. 다른 하나는 <씨네21>에 영화 만화를 연재하고 있던 정훈이 작가입니다. 정훈이 작가와 저는 1999년에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같이 출연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우연히도 같은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어서 이후에도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마주치던 사이였거든요.

웃기는 데 진심인 의사가 글을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문 만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만화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의사 아닌 사람들은 간혹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의사들이 주된 독자인 청년의사라면, 그건 상관없지 않나? 의사들만 이해하고 크게 웃을 수 있는 만화를 실으면, 의사 독자들에게는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아이디어에 주프로도 적극 호응했습니다. 신문에 실릴 정제된 원고를 쓰는 것보다는 만화의 바탕이 될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는 것이 더 쉽다고 했습니다. 원고로 정리할 시간이 없었을 뿐,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만화적 순간’들은 충분히 많이 겪었을 테니까요. 정훈이 작가도 재미있겠다면서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콜라보가 2002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의료 전문지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열 다섯 컷 내외로 이루어진 ‘전면 만화’가 실리기 시작한 거죠.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처음엔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주프로가 아주 짧은 대본을 줘도 정훈이 작가가 그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살을 붙일 정도로 ‘찰떡 궁합’을 자랑했습니다. 대본은 대체로 A4 한 장을 넘지 않았습니다. 반 페이지에 못 미치는 짧은 대본도 있었고, 두 장 이상으로 긴 경우도 있었습니다. 글로 된 대본과 완성된 만화를 모두 보는 저로서는 두 가지 버전의 같고 다름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무려 500편에 달하는 만화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은 사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주프로와 정훈이 작가 모두, 넉넉한 뱃살 못지않은 성실함과 끈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던 겁니다. 그 10년 동안 주프로는 전공의를 마치고 펠로우를 거쳐 교수가 됐습니다. 초반에는 주로 전공의들이 주인공이었던 쇼피알에, 점차 펠로우나 개원의나 교수들이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올드 팬(?)들이라면 다 기억하실 ‘알퐁소 도데의 별’ 시리즈가 27편까지 이어지는 동안 남기남과 스테파네트도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주프로의 해외연수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유로 시즌1은 500회에서 막을 내립니다. 10년 동안 매주 고통스럽게 아이디어를 짜냈을 주프로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쇼피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역시 웃기는 데 진심인 서민 교수와 오래 전부터 만화 덕후로 유명한 김응수 원장이 시즌2의 필진으로 새롭게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격주로, 주프로와는 또 다른 결의 만화 스토리를 끊임없이 창작했고, 쇼피알 시즌2는 역시 많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끔은 독자 투고를 바탕으로 만화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지금은 미국으로 간 황지민 선생이 연세의대 학생일 때 몇 편의 ‘의대생 스토리’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시즌2의 대부분은 서민, 김응수 두 분의 작품입니다. 두 분 역시 10년 가까이 대단한 필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청년의사에서 '쇼피알'을 연재한 정훈이 작가
청년의사에서 '쇼피알'을 연재한 정훈이 작가

원래 쇼피알은 오는 5월말에 1,000회를 돌파할 예정이었습니다. 의료 관련 ‘장편 만화’가 1천 편이나 매주 연재되는 일은 모르긴 해도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일이었을 겁니다. 기네스북에 올라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쇼피알은 2021년 12월 3일에 시즌2 475회(시즌1부터 따지면 975회)가 업로드된 이후 ‘무기한 연재 중단’ 상태입니다. 정훈이 작가의 병환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감기 증상으로 동네의원을 찾았던 정훈이 작가는 며칠 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정 작가는 스스로 ‘병원에서 가장 밥 많이 먹는 환자’로 칭하며 씩씩하게 투병 중입니다. 카카오톡 프로필을 ‘고장 수리 중’으로 바꿔 놓은 채 말입니다. 정 작가는 세 차례의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달에는 골수이식을 받을 예정입니다.

정훈이 작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청년의사에서는 그간 연재된 975편의 작품들 중 특히 재미있는 것들을 모아서 두 권의 책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책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대단한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에, 대단치 않은 ‘굿즈’들을 추가해 ‘터무니없이 비싸게’ 선판매하는 방식으로 약간의 돈을 마련하여 정 작가에게 전달할 계획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크라우드 펀딩입니다.

쇼피알을 20~30대부터 보기 시작하신 분들은 이제 40~50대일 것이고, 40~50대부터 보기 시작하신 분들은 어느덧 60~70대가 되셨을 겁니다. 975편의 만화를 거의 다 보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근년에 보기 시작하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청년의사 지면이나 사이트가 아니라 SNS 등을 통해 널리 퍼진 작품 몇 개만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대한민국의 의사라면 누구나, 적어도 몇 번, 혹은 몇 십 번, 혹은 몇 백 번은 만화 쇼피알을 보면서 울고 웃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료 웹툰인 줄 알고 즐겨 보았는데 알고 보니 후불제 유료였다 생각하시고, 쇼피알을 사랑해 주셨던 많은 의사들이 펀딩에 참여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중에 책을 받아 보시면 의사로 살아온 지난 시간들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실 겁니다. 좋은 날도 있었고 덜 좋은 날도 있었고 좋지 않은 날들도 있었지요.

목표 금액은 975만원입니다. 975회에서 멈춘 쇼피알이 1,000회, 2,000회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정한 액수입니다. 리워드는 최소 10만원부터 시작입니다만, 리워드 없이 소액만 후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쇼피알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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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오는 6월에 출간 예정인 <청년의사 남기남의 슬기로운 병원생활(1, 2권)>에 실릴 ‘발간사’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읽어 보시면 펀딩 참여 욕구 및 금액이 더욱 커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청년의사 남기남의 슬기로운 병원생활> 발간사

심폐소생술을 뜻하는 약어 CPR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워낙 많은 의학드라마가 방영됐기 때문이다. 신문 청년의사의 연재만화 제목인 ‘쇼피알’은 CPR에서 파생된 의사들의 은어다. 이미 환자는 안타깝게도 사망했지만, (보호자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거나 너무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가족이 아직 환자의 사망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거나 하는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의미 없는 심폐소생술을 지속하는 경우를 뜻한다. 의사들에게는 가장 괴롭고 힘든 순간인 동시에 의사라는 직업의 복잡한 속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만화 쇼피알은 역사가 길다. 1992년에 월간지로 창간된 청년의사가 주간지로 전환한 직후인 2002년 1월 7일자 신문에 1회가 실렸으니 꼬박 20년 동안 매주 독자들을 만났다. 타블로이드 신문 1면 전체를 차지하는 15컷 내외의 만화가, 그것도 주로 의료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만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연재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의사가 스토리를 만들고 전문 만화가가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협업 방식으로 이루어졌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청년의사의 독자들이 꾸준히 관심과 사랑을 보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쇼피알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주프로’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이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주웅 교수가 대본을 맡은 시기가 시즌 1, 단국의대 기생충학교실 서민 교수와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응수 원장이 나누어 대본을 맡은 시기가 시즌 2다. (시즌 1과 시즌 2 모두 아주 드물게 다른 의사 혹은 의대생이 대본을 쓴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대본은 이렇게 세 명이 썼다.) 시즌 1은 2012년 4월 6일에 끝났는데, 무려 500편의 만화가 만들어졌다. 10주간의 공백기(그 기간 동안은 독자들이 직접 뽑은 베스트 작품 10편이 연재됐다)를 가진 이후 2012년 6월 22일부터 시작된 시즌 2는 2021년 12월 3일자 475회까지 연재된 이후 잠시 연재가 중단된 상태이다.

1,000회 특집을 불과 25주 앞두고 연재가 중단된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 한결같이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온 정훈이 작가의 병환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 말, 그는 심한 감기 증상으로 동네의원을 찾아갔다가 정밀검사를 권유받았고, 며칠 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정 작가는 씩씩하게(?) 투병 중이다. 스스로를 ‘병원에서 밥 가장 많이 먹는 환자’라고 칭하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고장 수리 중’이라고 바꿔놓은 채.

사실 만화 쇼피알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는 것들을 모아서 단행본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시즌 1을 마칠 무렵에도 있었다. 하지만 의료인 아닌 사람이 볼 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만화도 적지 않은 등의 이유로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1,000편 가까운 만화가 쌓이다 보니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만화도 꽤 많이 축적됐고, 연재 중단을 아쉬워하는 애독자들의 허기를 달래줄 필요도 생겨, 결국 두 권의 책으로 묶게 되었다. 크라우드 펀딩과 책 판매를 통해 마련될 수익금을 전달함으로써 투병 중인 정훈이 작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만화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전공의를 비롯한 대학병원 의사의 애환을 웃프게 그린 내용도 많고(주웅 교수가 특히 이런 내용을 많이 썼다), 개원의를 비롯한 평범한 의사들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내용도 많고(김응수 원장이 특히 이런 내용을 많이 썼다),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국의 의료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내용도 많다(서민 교수가 특히 이런 내용을 많이 썼다). 영화나 TV드라마를 패러디한 작품도 많고(이건 씨네21에 25년간 만화를 연재한 정훈이 작가의 원래 특기이기도 하다), 게재 당시 화제가 된 사건 사고나 정치적 상황을 소재로 삼은 작품도 적지 않다. 온 국민이 아는 유명한 시 전문을 패러디하여 의사들의 마음을 대변한 주웅 교수의 작품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열다섯 컷 내외의 한 회로 마무리되는 짧은 이야기가 가장 많지만, 2~3회에 걸쳐 이어지는 경우도 꽤 많고, 5회 내외로 이어지는 제법 긴 분량의 만화도 가끔은 등장했다. 완전히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속편 형태로 비슷한 스토리가 변주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변주가 흔히 다른 작가에 의해 행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서민 교수가 ‘의대 과커플이 불리한 점’이라는 이야기를 쓰면 그 다음주에는 김응수 원장이 ‘의대 과커플이 좋은 점’이라는 이야기를 쓴다거나, 김응수 원장이 ‘앤트맨 메디칼 히어로’라는 이야기를 쓰고 나면 얼마 후 서민 교수가 ‘앤트맨 리부트’라는 이야기를 쓴다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천 편 가깝게 만들어진 쇼피알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연작은 ‘알퐁소 도데의 별’ 시리즈다. 의사 커플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인 이 연작은 시즌 1에서 무려 27편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별’이라는 이름이 붙지는 않았지만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이후 다른 작품들에서도 같은 설정으로 가끔씩 등장했고, 심지어 시즌 2의 대본을 집필한 서민 교수나 김응수 원장도 가끔씩 이들을 소환하곤 했다. 결국 남기남과 스테파네트 커플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30편이 넘는다.

만화 쇼피알은 신문 청년의사의 30년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존재다. 청년의사에 실린 모든 연재물 중에서 단연 최장수 코너이며, 종이 신문 시절이나 온라인 신문 시절 모두 가장 인기 있는 코너이기도 했다. 실제로 독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설문조사에서 가장 열심히 보는 코너 1위로 꼽히기도 했고, SNS가 보편화된 이후에 만들어진 여러 작품들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널리 공유되기도 했다. 페이스북 공유만 500회 혹은 1,000회 이상 이루어진 작품들도 많은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지인으로부터 환자 관련 민원을 받는 의사들의 솔직한 심정을 묘사한 ‘의사 친구에게 부탁하기’, 여의사의 애환을 리얼하게 그려낸 ‘의대생 김지영’,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처하는 의사들의 수고를 표현한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심정을 잘 표현한 ‘나는 지방의사다’, 의사가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싶은 순간들을 코믹하게 묘사한 ‘의사인성교육’,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정부가 의사들의 뒤통수를 친 데 대한 서운함을 그려낸 ‘어떤 은혜갚기’ 등이 있다.

만화 쇼피알은 공연계의 용어를 빌리자면 ‘오픈런’ 작품이었다. 병원과 의사들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했고, 대본을 쓰는 몇몇 의사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다. 30대 초반의 청년 만화가가 50대 초반의 중년 만화가가 되는 동안, 정훈이 작가는 특유의 성실함과 세대를 아우르는 유머 감각으로 우리를 웃기고 울렸다. 영원히 지속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1,000회는 물론이고 1,500회, 어쩌면 2,000회까지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975편까지 만들어진 시점에 갑자기 정훈이 작가를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쇼피알은 잠시 중단되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쇼피알이 재개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두 권의 만화책을 펴낸다. 20년 넘게 의료 만화를 그려온 내공에 더해 힘든 투병까지 경험한 정훈이 작가가 더욱 깊이 있고 실감나는 작품들로 우리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희망한다. 만화 쇼피알을 늘 기다려주셨던 많은 독자들께도 창작자들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22년 6월
청년의사 편집주간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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