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차 유행보다 상황 더 나빠
중환자 분류체계 개편 등은 진행도 안돼
“문제 해결할 생각 없이 행정명령만” 비판

두 번째 민간병원 병상동원 명령이 발동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유행이 있었던 지난해 12월 이후 8개월만이다. 대상은 더 확대됐다. 그러나 그 뿐이다. 8개월 전에도 문제로 지적됐던 의료 인력 확충이나 전원 시스템, 중환자 분류체계 등은 개선된 게 없다.

행정명령을 받은 의료 현장에서 한 숨부터 나오는 이유다. 3차 유행에서도 경험했듯이 행정명령으로 병상을 확보해도 현재와 같은 체제에서는 금방 소진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지 않고 ‘행정명령’이라는 손쉬운 방법만 동원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급종합병원들은 더 이상 내놓을 병상도 없다고 하소연 한다. 정부가 300~700병상 이하 종합병원으로 대상을 확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포화상태인 상급종합병원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13일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병상 확보 행정명령을 내렸다.

오는 27일까지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28곳(국립대병원 2곳 포함)은 허가 병상 수의 1%였던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을 1.5%로 확대해야 한다. 700병상 이상 규모인 종합병원 9곳은 허가 병상의 1%를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이를 통해 추가로 확보되는 중환자 전담치료병원은 총 171병상이다.

300~700병상 규모 종합병원은 중등증 환자 전담치료병상을 마련해야 한다. 이들 중 코로나19 치료병상을 운영하지 않고 있는 26곳은 허가 병상의 5% 이상을 중등증 환자 전담치료병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렇게 확보되는 중등증 전담치료병상은 총 594병상이다.

상급종합병원 상당수는 이미 중환자실이 포화상태여서 별도 공간에 중환자 병상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다른 환자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분리하고 음압장비, 인공호흡기 등을 설치해야 하기에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1개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일반 병상 2~3개를 비워야 한다. 기존에도 병상 가동률이 높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추가 공간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고려대안암병원 박종훈 원장은 “지난해 12월 행정명령이 내려졌을 때도 별도 병동을 비워서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만들어서 사용했다. 하지만 그 이후 원상복구한 상태”라며 “전체 병상의 1,5%를 중환자 병상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박 원장은 “중환자실은 다른 환자들도 있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다. 완전히 분리된 다른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어떻게 해서든 이번에는 병상을 추가로 확보한다고 해도 추후 환자가 더 많아지면 2%로 늘리라고 하지 않겠느냐.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환자 진료 시작되자 떠나는 의료인력

종합병원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경기도 소재 A종합병원은 코로나19 병상 50개를 확보하기 위해 입원 환자 100명을 다른 병원 등으로 내보내는 작업부터 해야 했다. 3개 층을 통으로 비워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병상 확보뿐이 아니었다. 코로나19 병상을 운영한다는 소식에 의사 12명, 간호사 38명이 사표를 냈다.

A종합병원 원장은 “의료 인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간호사 20명 정도만 보내줄 수 있다고 하더라. 병상이 부족하다고 해서 확보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일부 병상을 먼저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현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환자를 보낸다. 사용할 수 있는 인공호흡기는 5대 뿐인데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코로나19 환자를 9명이나 보냈다.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전달체계가 엉망이어서 코로나19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도 전원이 쉽지 않다. 앞으로 위중증 환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대응이 주먹구구식이어서 답답하다”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그저 행정명령으로 병상만 동원하면 된다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A종합병원처럼 이번 행정명령으로 코로나19 치료병상을 새로 확보해야 하는 종합병원은 총 35곳이다.

서울의료원 의료진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격리병동 환자 진료를 위해 나서고 있다(사진제공: 서울의료원).
서울의료원 의료진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격리병동 환자 진료를 위해 나서고 있다(사진제공: 서울의료원).

중환자 분류체계 재정비 없이 병상 확보만? “유지 어렵다”

이번 조치도 ‘땜질식 처방’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행정명령에 따라 수도권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들은 코로나19 치료병상을 확보하겠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빠르게 소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령자 중심으로 위중증 환자가 발생했던 3차 유행과 달리 4차 유행에서는 50대 이하에서 위중증 환자가 많이 생기고 있다. 이들은 재원 기간이 길어 병상뿐만 아니라 에크모(ECMO) 등 의료자원도 더 많이 투입된다.

전원 시스템이나 중환자 분류체계 등을 재정비 하지 않고 병상만 확대하면 오히려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중환자 진료체계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리고 이같은 지적인 8개월 전에도 똑같이 나왔다.

대한중환자의학회는 최초 병상동원 명령이 내려졌던 지난해 12월 중환자 병상 부족 사태가 반복되는 원인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환자 진료체계에 있다며 행정명령을 통해 확보한 중환자 병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려면 환자 분류(triage)와 우선순위(priority)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코로나19 중환자 분류와 우선순위에 대한 권고안도 마련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4차 유행이 온 지금까지 중환자 진료체계 개선 논의는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의료 인력 문제도 해결된 게 없다. 오히려 1년 7개월 동안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해 오면서 번아웃을 호소하는 의료인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인력 부족을 이유 코로나19 환자 수용을 거부하면 손실보상금을 감액하겠다는 방침도 발표되자 일부에서는 “차라리 페널티를 받고 코로나19 환자를 보지 않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코로나19 중환자를 진료해 온 의료기관들은 힘들게 버티고 있다. 그런데 지금보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져 환자가 늘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진다”며 “중환자 병상은 말처럼 그렇게 쉽게 늘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중환자들이 써야 하는 병상을 나눠 쓰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의료인력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인건비(수당) 지급을 확대하고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파견 인력이 더 많은 수당을 받아 역차별 논란이 일면서 기존 인력의 의욕을 꺾고 있다는 것이다.

엄 교수는 “병원마다 중환자실 근무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다. 이들이 코로나19 중환자를 돌보도록 설득해야 한다. 현재는 파견 인력이 두세배 높은 급여를 받다 보니 위화감이 조성돼 제대로 일하기 힘들다고도 한다”며 “지금과 같은 인건비 지급 방식으로는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1차 유행이 발생했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중환자 진료에 필요한 간호사만이라도 충분히 확보해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병원에 권한을 더 주고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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