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병들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확보 준비
"이대로면 확보한 병상도 조만간 소진"
전원‧중환자분류체계 개선 함께 이뤄져야
일반 중환자 진료 기능 축소 불가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을 마련하라는 행정명령을 받은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들이 공간 확보 작업으로 분주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행정명령이 내려진 이상 어떻게 해서든 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을 확보하겠지만 그로 인해 다른 질환자들은 치료 시기를 놓치는 등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의료 인력도 문제다. 감염병인 코로나19 중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일반 중환자보다 더 많은 의료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데도 이에 대한 대책은 없다.

진료 우선순위 등을 정한 중환자 분류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한 행정명령으로 확보한 병상도 금방 소진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대부분이 환자 여러명이 입원해 있는 다인실 구조여서 코로나19 중환자를 받으려면 동선 분리, 음압기 설치 등이 필요하다. 
상급종합병원 중환자실 대부분이 환자 여러명이 입원해 있는 다인실 구조여서 코로나19 중환자를 받으려면 동선 분리, 음압기 설치 등이 필요하다.

행정명령 전부터 1% 이상 중환자병상 확보한 병원들도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는 지난 18일 지자체에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치료병상 확보 명령’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민간병원 병상 동원을 위한 최초 행정명령이다. 오는 26일까지 상급종합병원은 허가 병상 수의 최소 1%를, 국립대병원은 1% 이상을 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으로 확보하라는 내용이다. 오는 23일까지 목표의 60%를 먼저 가동해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은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6병상에서 총 17병상으로 늘릴 예정이며 총 20병상을 마련해야 하는 서울아산병원도 확보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9병상이던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을 4병상 더 확보해 운영할 계획이다.

이미 행정명령 수준보다 많은 중환자 병상을 코로나19 환자에게 내준 병원들도 많다. 서울대병원은 코로나19 치료 병상 32병상 중 20병상을 중환자용으로 운용 중이다. 여기에 4병상을 더 확보해 운영할 계획이다.

가천대길병원은 이미 3월부터 국가지정음압격리병상 10병상과 중환자실 10병상을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또 일반 병동에서 142병상을 코로나19 환자용으로 전환해 운용 중이다. 길병원은 코로나19 2차 유행이 있던 지난 8월 치료병상을 192병상까지 늘리기도 했다. 길병원 전체 병상 수는 1,400병상이다.

총 925병상인 인하대병원도 행정명령 이전부터 중환자실 10병상을 코로나19 중환자 치료에 사용하고 있으며 일반 병동에서도 144병상을 코로나19 환자 치료용으로 전환했다.

‘긁어모은 중환자 병상’도 지금 이대로면 금방 찬다

행정명령이 내려진 이상 상급종합병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중환자 병상을 확보하겠지만 문제는 그 이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처럼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00명 이상씩 급증하면 위중증 환자도 늘어 행정명령으로 확보한 병상이 모두 소진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병상 소진 시간을 일주일 정도로 예상하기도 했다.

때문에 전원 시스템과 중환자 분류체계를 하루빨리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상이 호전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중환자도 진료 우선순위 등을 정해 중환자실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고려대안암병원 박종훈 원장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코로나19 중환자를 치료해서 증상이 호전되면 그 아래 병원으로 빨리 전원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중환자를 또 받을 수 있다”며 “정부도 신경 쓰겠다고 했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선에서는 입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집에서 대기하는 환자만 생각하고 병상을 긁어모으고 있는데 지금도 응급실에는 입원할 병상이 없어서 대기하는 환자들이 있다”며 “병상만 달라고 할 게 아니라 확보된 병상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중환자의학회 박성훈 홍보이사(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는 “행정명령이 떨어진 만큼 상급종합병원마다 중환자 병상을 준비하겠지만 이마저 금방 찰 것”이라며 “중환자실 입원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저 급한 순서대로 환자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기저질환이 없고 침상 생활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증상이 악화된 경우는 응급으로 반드시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한다”며 “반면 생존율이 높지 않은 환자들은 중환자실 입원 순위가 밀릴 수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는 이미 이런 기준을 마련해서 적용하고 있다. 병상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북대병원 의료진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경북대병원 의료진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은 어떻게?

병상보다 의료인력 확보가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박 이사는 “병상도 문제지만 의료진 수급 대책에 대한 말은 전혀 없다. 무엇보다 간호 인력이 중요한데 중환자실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많지 않다”며 “일반 중환자의 경우 환자 1명당 간호사 1명 정도지만 코로나19 환자는 최소 3명이 필요하다. 의사도 중환자 20병상에 20명을 필요하고 그 중 5명은 중환자의학을 전공한 세부전문의여야 한다”고 말했다.

A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인력 부족으로 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을 더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중환자는 언제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생체신호가 불안정해질지 알 수 없다. 의료진이 음압격리병실에 한번 들어가면 몇 시간씩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중환자 진료 인력이 역량을 갖추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도 인력을 갈아 넣어서 운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관계자는 “중등증 이상인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려면 장비도 더 확보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의료진이 부족하다”며 “의료진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중환자병상을 더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 중환자 진료 기능 축소 불가피…“대책 있나”

코로나19가 아닌 일반 중환자들이 치료 시기를 놓치는 등 또 다른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일반 중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병상이 부족해질 뿐만 아니라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진료과마다 진료를 축소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중환자 전담치료병상을 마련하고 있는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체 병상의 1%를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으로 전환하려면 중환자 진료 역량의 절반을 쏟아부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코로나19가 아닌 다른 중환자 치료 기능을 줄일 수밖에 없고 비코로나19 중환자 중에서 입원할 병상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진 전 중환자의학회장(여의도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은 “일반 중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급종합병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심근경색 환자가 발생해도 병상이 없어서 입원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응급 중환자 진료 시스템이 마비된다”고 걱정했다.

홍 전 회장은 “현 상태로는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의료원 등을 코로나19 중환자를 위한 코호트병원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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