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벤처 힐링페이퍼 이끄는 연세대 의학전문대학원 홍승일·박기범·양경호


▲ 왼쪽부터 양경호·홍승일·박기범 김형진 기자

[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청년의사가 만난 사람]

3학년 학생실습을 하면서 알게 됐다. 의사가 환자의 말을 8초 만에 끊을 수밖에 없는 이유. 의사가 화장실도 뛰어 다녀와야 할 정도로 밀려드는 환자, 오래 기다려 의사 앞에 앉은 환자는 진단에는 필요도 없는 얘기부터 꺼낸다. 1초, 2초, …8초, “잠시만요.”(의사)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풀어보지, 뭐. 알고 보니 두 번의 전력이 있다. 5~6년간 학원이 주도해온 의학전문대학원 친목 사이트를 대신할 사이트를 만들어 3개월 만에 주도권을 잡았고, 문제만 있는 기존 문제집 대신 독학이 가능한 의전원 입시 문제집을 만들었다.

문제를 발견하면,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일이 내게 직접적으로 이익이 되지 않아도 나서는 연세대 의학전문대학원 의전원생들이 세 번째 문제해결에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작년 5월 한참 실습을 하면서 느낀 ‘문제점’에 대해 모여 얘기하면서 점점 확신은 깊어졌다.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었다.

진료시간은 늘릴 수 없으니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올바른 정보공유가 가능하도록 의료인이 함께 하는 공간, 물론 이들이 익숙한 IT를 이용한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7월 힐링페이퍼가 탄생했다. 12월 특성화 실습에서 이 해결책을 모색하기로 뜻을 모았고 이를 위해 학생들이 설립한 법인이었다. 연세의대 사상 처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힐링페이퍼는 얼마 전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 3기로 사업비를 1억1천1백만 원을 따냈다. 이 돈을 사업비가 아닌, ‘이익에 달려들지 않게 해줄 인내자금’이라 표현하는 이들은 얼마 전 의전원 4학년 진학 대신 휴학을 택했다. 본격적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미겠다.

사회적 벤처 힐링페이퍼 CEO 홍승일, CCO(Chief Content Officer)양경호, COO(Chief Operating officer) 박기범 군을 만났다.

Q. 어떤 내용의 서비스인지 설명 부탁한다.

- 문제점은 간단했다. 의사는 시간도 없는데 환자는 필요 없는 얘기만 하고, 환자는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했는데 의사가 말을 자르는 데 대한 불만이 있었다. 기존 환우회 사이트 등에서 의사가 질문마다 댓글을 달아줄 수도 없는데 잘못된 의료정보는 넘쳐난다. 이런 문제를 풀 수 있는 웹 공간을 만들어주면 의사, 환자에게 다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질문에 개인적으로 답글을 달면 그 내용이 자신의 공적인 의견처럼 굳어지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같은 질문을 하는 환자가 모였을 때 의사가 한 번만 답변하면 환자 개인에게 답변이 가는 식의 시스템을 만들었다(페이퍼 랭크). 진료시간이 제한된 문제는 환자가 평소에 증상이나 부작용, 기분 등을 적는 힐링리포트를 의사가 공유하는 것으로 풀 수 있도록 했다. 부작용 체크에서도 의미 없는 부작용 대신 의사가 꼭 알아야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체크할 수 있도록 한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자기관리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될 텐데 그것을 의사와 공유하는 식이다. 있으면 좋은 비타민이 아니라 꼭 필요한 페인 킬러(Pain killer)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Q. 창업사관학교 펀드를 땄는데.

- 수익 모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가 있고 해결책은 이거고,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했다. 심사위원들도 꼭 필요한 시스템이라고는 인정하셨지만 수익모델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해보라고 하시더라. 섣불리 돈을 벌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투자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도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벤처라고 생각한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에서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면 오히려 수익은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문제해결부터 하면 수익도 따라올 거라고 생각한다. 환자와 의사가 불만족을 느끼는 것은 미국도 비슷하다. 환자가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툴은 부족하다. 우리가 만든 데이터는 의학 분야이니 당연히 국제 공용이다. 우리나라에서 피드백을 받으면서 잘 다듬어서 글로벌화를 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Q. 비슷한 일을 하는 선배나 투자자들에게 조언 얻은 것은 있는지.

- 선배들을 만나보면 우리가 하는 고민을 똑같이 하셨더라. 이런 방법으로 수익을 내도 되는지 어디까지 마지노선인지 고민이 많다. 모든 의료정보서비스가 시작할 때 뷰티, 성형 배너 광고로 돈을 벌겠다고 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쪽으로 많이 가 있다. 광고 배너로 돈을 얼마를 번들 우리에게는 손해일 것 같다. 우리가 의료계 쪽에 속해있는 한, 환자에게 기여하는 것이 우리 가치가 더 상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움말을 주신 분들은 너희들이 더 잘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철학은 지킬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을 하신다. 환자들을 위한다는 데 점수를 많이 주셨다.

Q. 의전원 4학년을 앞두고 휴학까지 한 것은 큰 결심인데(박기범·홍승일 공동 대표). 의사자격증을 갖고 사업을 하는 게 더 든든하지 않을까.

- 작년 12월에 특성화 과정에서 문제점이 더 구체화되면서 확신이 생겼다. 사실 휴학계를 내는 날까지도 고민을 했다. 동기 120명이 없어지는 거나 다름없고 벌써 공부한 것이 기억 안난다. 하지만 헬스케어 쪽에 큰 흐름이 있고 이미 시작 했는데 일년 뒤에 다시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뭔가를 해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도전해보자는, 의사가 아니라도 인생을 걸어볼 만한 프로젝트라고 생각도 했다.

Q. 환자진료에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 (CCO양경호)교수님들 밖에 없다, 하하. 실습 돌면서 외래 보면서 어떤 점들이 불편한지 여쭤보기도 하고 컨텐츠 감수를 부탁드리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수현, 김기준 교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유방암 환우들을 대상으로 시작을 했는데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 있고, 암환자들 중에서도 여자분들이 카페에 글을 많이 올리시니까 첫 집단으로 유방암환자분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유방암환자를 보시는)이 교수님이 매칭이 된 것이 기적이다.

Q. 암환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인데.

- 길은 환자분들이 제시해준다. 여러 과를 가야한다는 것, 약물체크가 어렵다는 것 등도 환자들이 다 말해준 것이다. 어떤 길을 따르는 대신 환자들에게서 들은 내용을 따라가면서 증명해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환자 뿐 아니라 의사들도 많은 조언을 준다. 김기준 교수님은 병원 QI팀 전체를 소개시켜주셨고 이수현 교수님은 환자가 컨디션 추이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치료에 유의미한 지표인지 알려주셨다. 의사와 환자가 모여서 진짜 필요한 것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우리 강점인 것 같다.

Q. 전업(專業)하고 가장 달라진 것은.

- 예전에는 내 인생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짐작이 갔지만 지금은 깜깜하다. 그래도 뭔가 한 발짝 내디뎠다는 쾌감이 있다. 아이디어가 생기고 적용돼서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불확실성과 뿌듯함이 교차한다. 지금 힐링페이퍼는 정해진 포맷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들의 의견으로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의사선생님들이 진료를 하면서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그런 불편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궁금하다. 이런 기능을 구현해달라고 연락해주시거나 찾아오라고 하시면 기꺼이 가겠다. 참여의사가 있으시다면 환자를 대상으로 최소버전으로 피드백을 받아보셔도 좋다. 조언을 통해서 힐링 페이퍼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contact@healing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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