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마취과 전문의 박광업씨가 전하는 현지 상황 “올림픽 연기 이후 우왕좌왕”

도쿄 올림픽이 일본의 발목을 잡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었지만 3월말까지 일본의 관심은 올림픽 개최 여부에 쏠려 있었다. 올림픽이 연기된 후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급증하기 시작했고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일본 도쿄에서 마취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박광업 씨가 전한 현지 상황이다. 19일 0시 기준 일본 코로나19 확진자는 총 1만807명으로 한국을 앞질렀다. 이는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나온 확진자 712명을 제외한 숫자다. 사망자도 251명으로 한국보다 많다.

박 전문의는 지난 17일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 출연해 도쿄 올림픽 연기 결정 이후 보름여 동안 우왕좌왕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박 전문의는 청년의사와 사전 인터뷰도 가졌다). 박 전문의는 순천향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사 복무를 마친 뒤 지난 20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6년 간 마취과 전문의 수련교육을 받았다. 일본 의사면허는 전문의 수련교육을 시작하기 2년 전인 2011년 취득했다. 마취과 전문의로 근무하던 병원을 지난 3월 퇴직한 후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3월말까지 코로나보다 도쿄 올림픽에 더 관심
코로나 확진자의 50% 이상 감염경로 불분명

박 전문의는 “3월 24일 올림픽 연기 결정이 나기 전까지 코로나19보다는 올림픽 개최 여부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며 “2월 초 난리가 나기 시작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감염도 일본 내 감염으로 집계하지 않고 따로 떼어 발표해 와서 다른 나라 이야기 같은 분위기였다. 현재 크르주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사라졌다”고 전했다.

박 전문의는 “올림픽 연기 결정 이후 보름 동안 우왕좌왕했다”며 “그리고 최근 일주일 사이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고도 했다.

코로나19 확진자의 60~70% 정도는 감염 경로가 불분명하며 한국과 달리 확진자의 동선은 공개되지 않는다.

“일본은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지 않는다. 본적도 없고 연락도 오지 않는다. 일본 국민들도 동선 공개를 요구하지 않는다. 일본이 문제가 되는 게 누적 확진자가 늘어나는 것도 있지만 그 중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비율이 높아 50% 이상이다. 도쿄도의 경우 확진자의 60~70%는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심각하다.”

일본에서 마취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박광업 씨는 지난 17일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 출연해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일본에서 마취과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는 박광업 씨는 지난 17일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 ‘코로나 파이터스 라이브’(코파라)에 출연해 현지 상황을 전했다.

밀려오는 코로나 환자 감당 못하는 의료현장
의료붕괴 현실화 우려되지만 日정부 대책 안보여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의료현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의료붕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이곳저곳 전전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밀려오는 코로나19 환자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한다. 코로나19 의심환자를 태운 구급차는 병원 수십 곳에 전화를 해도 전부 거절당하고 있다. 아수라장인 상태다. 에쥬종합병원이나 나카노에고타병원처럼 수십 명의 원내 감염이 확인돼 클러스터화된 곳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풍선효과로 다른 병원들이 버티다 못해 구멍이 나버리면 말 그대로 의료붕괴가 현실화될 텐데 이에 대해 아직 정부 차원의 시뮬레이션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이 상당수 환자를 진료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2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 중심으로 움직인다. 박 전문의는 “일본은 대학병원 규모가 한국보다 작고 중소병원이 대학병원급의 위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환자를 받을 병원이 없어 난리”라며 “환자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 코로나19 환자를 모든 병원이 다 받는 게 아니다. 받을 수 있는 병원이 한정돼 있었고 이를 조금씩 확대하고는 있다”고 말했다.

중환자실, 에크모 등 의료자원 부족도 우려

중환자실(ICU)이나 인공호흡기, 체외막산소공급기인 에크모(ECMO) 등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할 의료자원 부족 현상도 우려했다.

일본집중치료의학회에 따르면 일본 ICU 병상은 총 6,500여 병상으로 인구 10만명당 5병상이다. 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 이탈리아는 인구 10만명당 10병상이다. 박 전문의는 “인공호흡기나 에크모를 관리할 인력이 부족하고 코로나19 이외 환자도 관리해야 하는 만큼 실제 코로나19 환자에게 쓸 수 있는 ICU 병상은 1,000병상 정도 밖에 안된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각 병원마다 서둘러서 증축 중이라고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일본호흡요법의학회·일본임상공학기사회에 따르면 2월 기준 인공호흡기는 총 2만2,000대이며 에크모는 1,400대를 보유하고 있다. 박 전문의는 “에크모의 경우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의 숫자가 부족해 동시에 최대한 돌린다고 해도 300병상까지만 커버가 가능하다고 한다”며 “현재 800병상 동시 가동을 목표로 에크모넷이라는 인재양성제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시기가 맞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박 전문의는 “앞으로 한두 달 동안 중증 환자가 얼마나 늘어나고 이를 감당해야 하는 의료진이 얼마나 버틸지가 관건”이라고도 했다.

단골의사나 보건소 통해서만 코로나 검사 가능
검사는 위생연구소에서만…민간 참여 방안 마련 중

코로나19 검사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의심증상으로 검사를 받고 싶어도 단골의사나 보건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단검사도 국가기관인 위생연구소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검체를 지역별로 있는 위생연구소로 보내면 하루 이틀 뒤 결과가 나오는 구조다.

“현재는 개인이 보건소를 경유하지 않고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을 수 없다. 38도 이상 발열이 4일 이상 지속됐지만 주변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없었다는 이유로 수차례 검사를 거절당하고 자택요양으로 버티는 사례도 있다. 단골의원을 거쳐서 보건소의 귀국자·접촉자상담센터에서 코로나19 의심증상이라는 판정이 나온 경우에 한해 귀국자·접촉자 외래가 설치돼 있는 병원에서 검체 채취를 받을 수 있었다. 검체는 위생연구소라는 국가기관으로 보내진다. 결국 민간검사기관이 개입할 방법도 없고, 증상이 없는 개인이 원한다고 검사를 받을 수도 없다.”

이같은 복잡한 절차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도쿄도의 경우 의사회 주도로 PCR 검사를 받기 위한 간소화체계가 마련되고 있다. 박 전문의에 따르면 보건소를 거치지 않고 단골의원을 통해 PCR센터에서 검체를 채취한 뒤 민간검사기관에 보내는 방안이다. PCR센터는 도쿄도의사회 산하 의사회가 있는 47곳에 설치되며 개원의 등이 교대로 근무할 예정이다.

도쿄도 신주쿠구(新宿区)는 국제의료연구센터 내 검사스팟을 설치해 PCR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중등도에 따라 환자를 분류해 입원시킬 계획이다. 중증 환자는 대형병원, 중등증 환자는 중소병원으로 보낸다. 경증이나 무증상인 환자는 도가 지정한 코로나19 전용 호텔에 입소하거나 자택에서 대기한다.

“목숨 잃거나 후유증 남는 의료인 없길”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7일 도쿄도 등 7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1차 긴급사태를 선언한 후 거리가 한산해 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16일 긴급사태 선언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일본 내에서도 긴급사태 선언이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박 전문의는 그나마 긴급사태 선언 이후 대응책과 개선책이 나오고 실행되고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처음 겪는 팬데믹일 것이다. 설상가상 올림픽 문제까지 겹치면서 정부가 곤욕을 치렀다. 너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날마다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하루 빨리 안정되길 바랄 뿐이다. 또한 모든 의료인들이 이번 사태로 목숨을 잃거나 후유증이 남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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