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④…꾸준한 성장세 속 저조한 연구개발투자 과제

[기획]제약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① 시험대 오른 형제경영…한미·녹십자
②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워라…동아·대웅·JW중외·제일
③ 30대 상속자들의 도전 통할까…국제약품·삼일제약
④ 전문경영인 시스템의 딜레마…유한양행·삼진제약

국내 제약사 오너가 젊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 사이에서 창업주 등 1세대 오너에 이은 2·3세 후계자들이 경영 일선에 속속 가세했다. 새로 대표자리에 오른 이들 중에는 40~50대는 물론 30대 영맨까지 등장해 주목된다. 이 제약사들의 경영진 교체가 가진 의미에 대해 4회에 걸쳐 짚어봤다.<편집자 주>

오너 입김 없는 유한양행…이정희 사장, 매출 압박 고민
유한양행이 한국 제약산업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남다르다.

최초 연 매출 1조원(2014년)을 돌파했고, 국내 제약사들 중 몇 안되는 전문경영인이 기업 운영을 맡는 제약사다.

창업주인 故 유일한 박사는 회사 발전에 지장이 된다며 생전에 부사장을 지낸 아들은 물론 회사에 몸 담고 있던 조카까지 모두 해고했다. 이후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유한양행 이정희 사장

이런 유한양행을 제약인들은 꿈의 직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CEO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신화창조'가 가능한 몇 안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평사원 출신의 부사장급에서 차기 CEO를 선임한다. 매출 1조원 시대를 연 김윤섭 사장, 현 이정희 대표 등 모두 유한양행 평직원으로 입사해 CEO에 올랐다.

유한양행 사장 임기는 3년, 한 번 연임이 가능해 최대 6년까지 재임할 수 있다. 부사장 중 자질 검증을 통해 차기 사장을 선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5년 CEO로 임명된 이정희 사장은 영남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유한양행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병원영업부, 유통사업부, 마케팅홍보부를 거쳐 경영관리 본부장, 전무, 부사장을 역임한 뒤 대표이사 사장 자리에 올랐다.

유한양행 CEO가 오너 일가의 눈치를 덜 보지만 부담이 없지도 않다. 되레 최대 6년이라는 임기제한이 매출 압박으로 이어진다.

이정희 사장의 경우, 취임 당시 유한양행은 매출 1조원이라는 성과와 함께 매출구조에 대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1조원 매출 달성이 자체 신약 개발 보다 타사 제품 판매에서 기인했다는 지적과 연구개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것이 비판의 이유였다.

유한양행이 베링거인겔하임 등 다국적제약사들과 제휴를 통해 판매한 트라젠타, 프라닥사, 비리어드, 트윈스타, 프리베나 등은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 이를 통해 유한양행은 제약영업의 강자임을 재확인했고, 매출 1조원 달성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약업계 일각에선 이러한 유한양행의 행보에 대해 '유통회사'라고 비꼬기도 했다.

공시에 따른 당시 매출비중을 살펴보면 비리어드, 트라젠타, 트윈스타, 프리베나 등 주요 도입품목이 28.4%를 차지했다. 같은 시기 유한양행의 처방의약품 매출이 전체의 62.6%였음을 감안하면, 도입품목이 절반에 육박한 셈이다.

지난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공시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비리어드, 트라젠타, 트윈스타, 프리베나, 스트리빌드 등 공개한 도입품목의 매출비중이 전체 28.6%(처방의약품 매출 비중은 63.4%)를 차지했다. 공개하지 않은 품목까지 따지면 판매대행 제품의 비중은 더 늘어난다.

유한양행의 연구개발투자비는 금액으로만 따지면 국내 기업 중에 적은 편은 아니다.

2016년 유한양행은 총 865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 금액은 한미약품, LG화학(생명과학사업부) 등이 한 해 1,000억원 가량의 연구개발비를 쏟는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게 사실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6.5%, 국내 1위 기업으로서 신약개발에 투자하는 비중은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증권가에서도 유한양행이 신약개발에 미흡한 제약사라고 평가한 것은 뼈아픈 지적이다.

다만, 유한양행이 원료의약품(AP)분야에서 강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 연구개발 부문에 집중 투자 모습을 보이고 있음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현재는 유한양행을 떠났지만 BMS 등에서 신약개발 경험을 지닌 남수연 연구소장을 영입해 파이프라인을 두 배 이상 확대했고, 복합제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14년 출시한 고혈압복합제 듀오웰, 로수바미브가 자체 개발 제품이고, 트윈스타 복합제 'YH22162'와 고지혈증치료제 로수바스타틴을 복합한 'YHP1604'도 개발 중이다.

개량신약인 프레가발린 서방형 제제 'YHD1119'는 현재 3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비소세포폐암 표적치료제 'YH25448'도 개발 중이며, 합작회사를 설립해 면역항암제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물론 도입품목으로 규모의 성장을 이룬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한양행이란 이름과 기대에 못미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오너 경영체제를 벗어난 몇 안되는 제약사이자, 매출 1위 기업으로 유한양행이 풀어야 할 매듭이다.

부드러운 리더십의 강한 면모…국내 최장수 CEO 이성우 사장
삼진제약은 유한양행과는 다른 형식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이룩해 주목받는 제약사다.

삼진제약은 최승주, 조의환 회장이 공동창업한 회사로 올해 49주년을 맞은 중견 제약사다. 공동창업주 2세들이 삼진제약에 몸 담고 있지만, 이들은 아직 경영에 나서지 않은 상태다.

삼진제약 이성우 사장

삼진제약을 이끌고 있는 건 이성우 사장이다.

이성우 사장은 지난 2001년 삼진제약 대표로 선임된 후 2016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6번째 연임에 성공하면서 최장수 CEO로 자리하고 있다.

지속적인 매출 성장과 노사 무분규 등으로 공동창업주를 비롯한 회사 안팎에서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이성우 사장은 중앙대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삼진제약에 입사한 뒤 영업담당 전무, 영업담당 부사장 등 영업 관련 요직을 거쳤다. 취임 이후 플래리스, 뉴토인, 뉴스타틴-에이 등 고령화에 따른 노인 및 만성질환자를 대상의 전문의약품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성우 사장 취임 당시 400억원대였던 삼진제약 매출은 2016년 2,393억원으로 6배 가량 성장했다.

특히 메르스 등으로 인해 내수 침체가 심했던 2015년 전년대비 7.6% 성장한 2,165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고, 영업이익 전년대비 13.9% 증가한 360억원, 당기순이익 30.5% 증가한 270억원을 기록하며 그 능력을 발휘했다. 2016년에도 매출 2,393억원에 영업이익 420억원, 당기순이익 301억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연구개발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새로운 약물 개발은 물론이고 원료합성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항혈전제인 플래리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2007년 출시된 플래리스는 2016년 기준으로 48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효자품목이다.

삼진제약은 플래리스 원료합성 연구개발을 통해 2009년, 국내 제약사 중 최초로 미세 구슬형태의 황산수소 클로피도그렐 원료 합성에 성공했다. 현재 국내 제약사 중 클로피도그렐 원료를 자체합성하는 곳은 삼진제약뿐이다.

자체 합성에 성공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입원료를 쓰지 않아도 돼 원가 절감도 가능해졌고, 여기에 원료를 인도네시아, 중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등에 수출하면서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신약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세계최초 경구용 안구건조증 치료제 ‘SA-001’을 개발 중이며, 미국 Imquest사와 함께 겔타입 여성용 에이즈 예방제(IQP-0528)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연구개발비율이 매출액 대비 7.19%(2016년 기준)로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성우 사장은 제약업계에서 부드러운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CEO 자리에 있지만 마포구 지역사회 대소사를 살뜰히 챙기고 보건의료계 중요행사에도 직접 참석하는데, 요란한 의전을 좋아하지 않아 행사에 참석할 때도 최소한의 인원만 대동하거나 아예 혼자 다닐 때가 많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또 매년 전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독감 예방주사를 접종케 하고, 아침식사 제공 및 영업직원의 옷과 구두를 직접 챙긴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덕분에 삼진제약은 노사무분규 및 무교섭 임금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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