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①…성공사례 적다보니 제약업계도 관심 집중

[기획]제약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① 시험대 오른 형제경영…한미·녹십자
②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워라…동아·대웅·JW중외·제일
③ 30대 상속자들의 도전 통할까…국제약품·삼일제약
④ 전문경영인 시스템의 딜레마…유한양행·삼진제약

국내 제약사 오너가 젊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 사이에서 창업주 등 1세대 오너에 이은 2·3세 후계자들이 경영 일선에 속속 가세했다. 새로 대표자리에 오른 이들 중에는 40~50대는 물론 30대 영맨까지 등장해 주목된다. 이 제약사들의 경영진 교체가 가진 의미에 대해 4회에 걸쳐 짚어봤다.<편집자 주>

올해 초 주요 제약사들 가운데 한미약품과 녹십자의 행보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두 제약사가 이른바 ‘형제경영’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한미약품과 녹십자는 지난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오너 2·3세를 나란히 사내이사 및 대표로 선임했다. 한미약품그룹은 임종윤·임종훈 형제, 녹십자그룹은 허은철·허용준 형제가 경영 전면에 나섰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두 회사의 형제가 모두 지주사와 핵심 기업 대표를 맡으며 경영능력을 평가받았다는 점이다.

단독 경영 1년 임종윤 대표…첫발 내딛은 임종훈 전무

한미약품 임종훈 전무

임성기 회장의 아들인 임종윤, 임종훈 형제는 한미약품그룹에 입사해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아 왔다.

먼저 장남인 임종윤 대표는 지난해 3월 임성기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면서 자연스럽게 단독대표가 돼 회사를 진두지휘해 왔다. 임 대표는 한미약품, 한미IT, 한미메디케어 이사를 맡고 있으며, 한미중국유한공사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올리타(성분명 올무티닙) 늑장공시 및 미공개 정보유출, 임상시험 중 사망 사례 늑장보고, 당뇨병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 임상시험 일시 중단 등으로 단독 대표 첫해부터 곤욕을 치렀다.

이후 한미약품 대표 교체 및 내부 규율 강화 등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당뇨병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의 임상시험 재개 여부에 따라 임 대표의 위기관리 능력은 다시금 평가받을 수 있다.

한미약품은 2015년 사노피와 3개의 당뇨병치료제 후보물질들에 대한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지난해 12월 1개는 반납하고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시험은 올해로 미뤘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시험이 계획대로 흘러갈 경우 문제될 게 없지만, 또다시 지연되거나 하는 경우에는 한미약품의 기술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임 대표가 다시한번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동생인 임종훈 전무는 3월 한미약품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되며 본격적으로 경영에 발을 내딛었다. 사내이사는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에 대표와 함께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우종수, 권세창 대표가 한미약품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임종훈 전무는 사내이사로서의 활동을 통해 경영능력을 검증받을 것으로 보인다.

형제가 나란히 대표이사에 오른 녹십자

(왼쪽부터)녹십차 허은철 대표, 녹십자홀딩스 허용준 대표

제약업계에선 지난 1월 녹십자홀딩스 이병건 대표가 종근당홀딩스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문과 함께 녹십자가 형제경영 체제로 돌입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았다.

실제로 오너 3세인 허은철 대표에 이어 동생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이 녹십자홀딩스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소문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들은 고 허영섭 회장의 아들로 오너 3세다. 창업주 허재경 회장에 이어 녹십자를 이끌던 허영섭 회장이 타계한 이후, 동생인 허일섭 회장과 조순태 부회장이 회사를 이끌어왔다. 허은철 대표는 조순태 부회장과 함께 녹십자 공동대표를 역임하다가 2016년 단독 대표로서 바통을 이어받았다.

허은철 대표는 1998년 입사해 녹십자 경영기획실, 목암생명공학연구소 기획관리실, 녹십자 R&D 기획실 등을 거쳐 녹십자 최고기술경영자(CTO), 녹십자 기획조정실 실장(부사장) 등을 역임하다가 2015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허은철 대표는 깔끔한 성격으로 업무에 있어서도 명확한 것을 좋아한다는 평가다. 관련 해외 학회 등에 참가해 전 세계 의료진과 환우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들을 정도로 혈우병치료제 등 대표품목을 직접 챙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반면 불분명하거나 본인이 파악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빠르게 결단을 내려 문제를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하는데, 올해 초 사내 팀 하나가 해체된 것도 이러한 경영 스타일 때문이란 후문이다.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은 허용준 대표는 2003년 녹십자홀딩스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경영기획실, 영업기획실을 거쳐 경영관리실장(부사장)을 역임하고 최근에는 대표이사 부사장이 됐다. 10년 이상 회사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지만, 지주사인 녹십자홀딩스 대표이사가 된 만큼 본격적인 경영능력 평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한미·녹십자, ‘형제의 난’ 극복할까

많은 기업들이 형제경영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 형제가 돌아가면서 기업 및 재단 대표를 맡는 두산 정도를 제외하고는 경영권을 두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기 일쑤다.

제약업계도 마찬가지다. 안국약품, 대웅제약 등 세력다툼에서 밀려난 형제들은 지분을 모두 넘기거나 분리 경영체제를 택하기도 했다.

시너지를 내며 회사를 키운 성공사례가 적기 때문에 롤모델이 없는 한미약품과 녹십자의 형제경영에도 우려 섞인 시선이 적지 않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아직 두 회사의 경영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이른 것 같다”면서도 “형제에게 각각 회사를 맡긴 것은 경영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인데 같이 자란 형제라도 가치관과 경영목표와 전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형제경영이 시너지가 될지, 분란의 단초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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