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②…홀로서기 시작했지만 녹록치 않은 경영환경

[기획]제약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① 시험대 오른 형제경영…한미·녹십자
②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워라…동아·대웅·JW중외·제일
③ 30대 상속자들의 도전 통할까…국제약품·삼일제약
④ 전문경영인 시스템의 딜레마…유한양행·삼진제약

국내 제약사 오너가 젊어지고 있다. 최근 국내 제약사들 사이에서 창업주 등 1세대 오너에 이은 2·3세 후계자들이 경영 일선에 속속 가세했다. 새로 대표자리에 오른 이들 중에는 40~50대는 물론 30대 영맨까지 등장해 주목된다. 이 제약사들의 경영진 교체가 가진 의미에 대해 4회에 걸쳐 짚어봤다.<편집자 주>

강정석 회장, ‘재계 대부’의 짙은 그늘과 오너리스크

동아쏘시오그룹 강정석 회장

올해 1월 동아쏘시오그룹은 본격적인 ‘강정석 회장 시대’를 열었다.

오랫동안 동아쏘시오그룹을 이끌던 강신호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경영일선에서 한걸음 물러서고, 3세인 강정석 부회장이 회장에 오르면서 계열사 사장단도 모두 젊은 인사로 파격 교체됐다. 본격적으로 강정석호 동아쏘시오그룹이 출발한 것이다.

강정석 회장은 강신호 회장의 4남으로 1989년에 동아제약에 입사해 경영관리팀장, 메디컬사업본부장, 동아오츠카 사장, 동아제약 부사장, 동아쏘시오홀딩스 사장과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오랫동안 경영수업과 함께 기업경영 일선에서 활동해 왔다.

하지만 제약업계 안팎에선 동아쏘시오그룹에서 강신호 명예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강정석 회장이 아직 ‘아버지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강 명예회장은 창업주 故강중희 회장 뒤를 이어 35년 간 동아쏘시오그룹을 이끌며 ‘국내 1위 제약사=동아제약’이란 공식을 만든 장본인이다. 현재 진행형인 ‘박카스 신화’, 제약업계 최초 기업부설 연구소 설립 등 제약산업에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2004년부터 29대, 30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재계에도 굵직한 발자취와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도 공식석상에 나서며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만큼, 아직까지도 동아쏘시오그룹하면 강신호 회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후계자에게 아버지의 그늘은 든든한 힘이 되기도 하지만, 넘어서야 할 산이기도 하다. ‘회장’ 취임 첫해로서 임직원은 물론이고 주주들에게도 경영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강정석 회장에겐 전자 보다 후자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동아쏘시오그룹을 둘러싼 여건이 그리 녹록치 않다.

먼저 2013년 동영상 강의 리베이트 파문, 위염치료제 스티렌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투여시 위염 예방’의 유효성 입증과정에서 늑장 자료제출 등의 문제로 벌어진 의료계와의 관계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상태다. 이 과정에서 900억원대 매출까지 기록했던 스티렌은 200억원대로 매출이 급감했다.

또 지난해 부산 지역 영업사원의 성장호르몬 주사제 불법 유통, 올해 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위원 뇌물 건과 리베이트 조사로 의심되는 검찰 압수수색 등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도 안고 있다.

‘오너리스크(owner risk)’도 요주의 대상이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제품 광고인 동시에 기업 이미지를 대표하는 박카스, 국토대장정 등으로 사회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2015년 이른바 재벌들의 갑질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을 때, 강정석 회장이 주차위반 경고딱지에 격분해 관리직원의 노트북을 파손시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후계 자리 굳힌 윤재승 회장, 리더십은?

대웅제약 윤재승 회장

대웅제약 윤재승 회장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부침을 겪었다.

윤재승 회장은 1985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26회 사법시험에 합격, 1995년까지 3년 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했다. 1997년 처음 경영에 참여한 뒤 12년 간 대웅제약을 이끌었지만, 2009년 부친인 윤영환 전 회장이 형인 윤재훈 전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기면서 한차례 밀려났다. 하지만 윤재훈 전 부회장이 3년 만에 경영악화 등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윤재승 회장이 2012년부 대웅제약 대표로 재선임되면서 후계자 자리를 되찾았다.

윤재훈 전 부회장은 지난해 대웅그룹에서 분리된 알피코프를 운영하고, 윤재승 회장이 지분 등을 공고히 하면서 현재는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오래전부터 대웅제약을 이끌어 왔지만 윤재승 회장이 후계자 자리를 굳혔다고 평가받는 시기는 2014년부터다. 윤영환 회장이 명예회장직으로 물러나고 대웅제약 회장에 선임된 해이기 때문이다. 당시 윤영환 회장은 자신이 가진 지분 모두 재단에 출연하면서 윤재승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윤재승 회장도 이 때 해외 진출, 조직개혁 등을 주도하며 대웅제약 체질개선에 나섰다. 2014년 국산 보툴리눔제제인 나보타, 고혈압복합제 올로스타 등을 출시했고, 해외사업부를 강화하면서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지역, 미국 진출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윤재승 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효자노릇을 하던 자누비아, 아토넷, 바이토린, 대웅글리아티린의 판권을 모두 종근당에 넘겨줬고, 미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보툴리눔제제인 나보타는 국산 보툴리눔톡신제제 첫 상용화 기업인 메디톡스와 균주 출처 논란에 휩싸였다. 보톡스 균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인사와 관련한 구설수도 있다.

대웅제약은 2015년 직급제를 없애고 호칭을 ‘님’으로 통일시켰다. 또 주요 본부장 자리를 30~40대 젊은 인사로 교체하는 파격적인 인사도 단행했다. 이에 대해 개인역량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고 직무능력에 맞춘 인사라고 밝혔으나 이 과정에서 전문성이 필요한 부서에 경험이 없는 젊은 임원을 배치해 내부에서 비판도 제기됐다. 지난해 오랫동안 대웅제약에서 근무해 온 ‘대웅맨’들이 대거 이탈해 경쟁사로 옮긴 일은 제약업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장 출신인 양병국 전 본부장을 대웅바이오 사장으로 영입한 일도 논란이 일었다. 한 시민단체가 직무관련성이 있는 양병국 전 본부장을 사장으로 영입한 것을 두고 문제를 제기해,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추가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실적 악화도 부담이다. 2016년 매출은 전년대비 0.81% 감소한 7,940억원이었다. 영업이익도 35.74% 줄어든 353억8,900만원에 그쳤다. 이는 2014년 536억9,300만원, 2015년 550억7,300만원과 비교하면 현저히 줄어든 수치다.

이경하 회장, 전문경영인과의 시너지는?

JW중외 이경하 회장

JW그룹 이경하 회장은 지난 2015년 회장직에 오르며 3세 경영체제를 본격화 했다.

창업주인 이기석 사장의 손자이자 이종호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경하 회장은 1986년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하자마자 JW중외제약에 입사했다. 다른 제약사 오너 후계자와는 달리 지역에서 영업을 담당하다가 1996년 JW중외제약 마케팅본부장으로 자리했다. 이후 C&C 신약연구소 대표, JW중외제약 부사장, 사장, JW홀딩스 사장, 부회장을 거쳐 JW홀딩스, JW중외제약 등 대표를 역임했다. 입사 후 30년, 부회장직에 오른 지 6년 만인 지난 2015년에 회장에 오르면서 본격적인 3세 경영체제를 열었다.

제약업계에선 이경하 회장이 다른 후계자들이 영업을 거치지 않은 것과 달리 영업 일선을 경험했다는 점과 3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아왔다는 점 등을 이유로 대대적인 혁신보다 안정적인 기업 운영에 초점을 맞춘 경영자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성장 정체는 이경하 회장이 풀어야할 숙제다.

제약업계에선 중외의 성장 그 주요 요인 중 하나로 2003년부터 시작된 당진 수액공장 건설을 꼽는다. 수액은 중외의 성장을 이끌고 지금도 주요 품목 중 하나지만 다른 의약품 대비 이익률이 크지 않은 분야인데, 중외는 수액공장에 약 1,500억원을 투입했다. JW중외제약은 매출 4,551억원을 기록한 2009년 이후 매출이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다만 2013년 일본 SKK·미국 박스터와의 대규모 수출계약을 맺었고, 최근 수액 생산을 전담하는 JW생명과학의 코스피 시장 상장 등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이경하 회장이 각자대표를 맡고 있던 JW중외제약 대표직을 내려놓은 점도 주목된다.

이경하 회장은 한성권 공동대표 체제에서 한성권-신영섭 대표체제로 바꾸고 자신은 홀딩스 회장직만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당장 JW중외제약 성장을 이끌 제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한계로 지목된다.

대신 리바로의 경우 스타틴계열에서 당뇨병 안전성에 대한 차별화 전략으로 지난해 처음으로 400억원을 돌파하며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올해 JW중외제약은 한성권-신영섭 대표 체제로 원외처방 활성화 전략을 통해 원외처방 비중을 40%까지 늘릴 계획이다.

R&D 파이프라인이 이제 막 갖춰져 이를 성공시키는 것도 숙제다.

암세포의 성장과 암 줄기세포에 관여하는 Wnt/β-catenin 기전을 억제하는 표적항암제 ‘CWP291’가 기대주지만 상용화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파이프라인 확보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이경하 회장은 지난해 9월 일본 쥬가이제약과 합작으로 세운 C&C신약연구소의 성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C&C신약연구소는 전임상 중인 항암제와 면역질환 치료제 등 8종의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꽁꽁 숨겨왔던 한상철 부사장의 경영 능력은?

올해 6월 지주사 전환을 앞둔 제일약품은 오너 3세인 한상철 제일약품 부사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에 나설 전망이다.

한상철 부사장은 40대 초반으로 창업주 故 한원석 회장 손자이자 한승수 회장의 장남이다. 한승수 회장은 지난 2011년부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제일약품은 그동안 한상철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다.

그러나 최근 제일약품이 낸 분할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한상철 제일약품 부사장은 지주사 제일파마홀딩스 총괄 사장으로 내정됐다. 제일약품 사업총괄 부사장직도 유지한다. 현재 일반의약품 사업부문을 분할한 제일헬스사이언스 대표이기도 하다. 한상철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가 확실해 진 셈이다.

한상철 부사장은 1976년 연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로체스터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7년에 제일약품에 입사한 이후 마케팅본부 상무, 경영기획실 전무, 경영총괄 부사장을 역임했다. 2011년부터 경영기획실 전무로서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에 참여했다.

제일약품은 오는 6월 지주사인 제일파마홀딩스, 신(新) 제일약품으로 분리되며 제일헬스사이언스, 제일앤파트너스 등을 포함한 그룹으로 변화를 예고했다. 아직까지 한상철 부사장의 지분율은 많지 않다. 아버지인 한승수 회장이 27.31%를 가지고 있고 본인은 4.66%로 5%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오너일가를 합치면 45.99%인 만큼 일단 지주사 전환은 무리없이 진행될 전망이다.

지주사 전환으로 경영권을 승계할 발판이 마련됐지만 한 부사장이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다. 일단 고질적으로 자사 제품보다 판매대행 상품 매출이 많다는 비판에 대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지난 3월 공시된 제일약품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의약품 분야에서 리피토, 리리카, 쎄레브렉스 등 화이자를 중심으로 한 타 제약사 도입 상품의 매출이 70.13%에 달한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는 3.62%에 불과하다. 매출 규모를 봤을 때는 10대 국내 제약사 중 한 곳이지만, 혁신형제약기업 37개에는 속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제약업계 안팎에선 남의 상품만 갖다가 팔고 의약품 개발은 뒷전이란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다. 현재 뇌졸중 치료제, 항암제, 통증치료제 등을 개발 중이지만 성공을 가늠하기에는 이르다.

한상철 부사장의 경영 능력의 1차 가늠자는 일반의약품 분야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의약품 분야는 성석제 사장이 전문경영인으로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한상철 부사장은 제일헬스사이언스 대표인만큼 상대적으로 실적이 저조한 일반의약품 분야에서의 반전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표 품목인 케펜텍 등의 성적표가 주목되는 이유다.

여기에 장기적으로는 성석제 사장이 구축해 놓은 한국화이자제약과의 ‘공고한 파트너십’을 어떻게 활용할지, 판매 대행을 넘어 ‘약을 만드는(개발하는) 회사’로서의 제일약품을 만들 수 있을지도 한 부사장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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