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선생님 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다. 의사로부터 아이가 힘든 검사나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부모는 고민에 빠진다. 그 괴로운 선택의 순간에서 그들은 어김없이 나를 붙잡고 묻는다.

“당연히 그렇게 할 겁니다.”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쉽사리 대답한다. 당연하다. 이런 질문에 ‘제 아이는 안되죠.’ 라고 말하는 의사가 어디 있을까? 교과서도, 교수님도 필요하다고 하는데 왜 이런 뻔한 대답밖에 나올 리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일까? 잠시 물음표를 띄우지만 쓱 지워버린다.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만난 그녀도 내게 물었다.

“선생님 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겨운 이 질문, 속으로 혀를 쯧쯧 찼지만 처음부터 다시 친절하게 설명했다.

“당연히 검사 해야죠. 우리 이준이는 태어난 지 90일도 안 됐잖아요. 이 때, 열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에요. 엄마한테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는 충분히 받아서 바이러스 감염은 잘 안되거든요. 그런데도 열이 난 것이기 때문에 세균에 의한 요로감염, 뇌수막염, 패혈증의 위험이 높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혈액검사랑 뇌척수액 검사 빨리 하고 항생제 써야 해요.”
“첫째도 감기거든요. 그냥 감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아니면요? 치료 늦어지면 위험할 수 있어요.”

대학병원에서 수련하는 동안 한두 번 설명한 내용이 아니었다. 노래 가사 외우듯이 줄줄 말할 수 있었다. 이 정도 설명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백기를 들고 동의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종종 어떤 일이 일어나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자의 퇴원서까지 쓰고 돌아가는 부모들도 있었다.

자기 아이를 왜 위험에 빠트리지? 너무나도 소중한 아이라 이성적인 판단이 되지 않는 것일까? 물론 항생제 쓰며 입원해도 대부분은 세균이 자라지 않는 것 확인하고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괜히 했어. 별것도 아닌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주 드물지는 않게 어떤 아기들은 패혈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하고, 뇌수막염으로 심각한 후유증이 남기도 한다. 나는 그런 끔찍한 상황을 봐왔기에 지긋지긋한 내용이지만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내게 설득 당했다. 그녀는 펜을 잡은 손을 파들파들 떨면서 척수천자 동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간신히 써넣었다. 응급실이 떠나가라 우는 아기를 인턴선생님이 무자비하게 새우처럼 둥그렇게 말아 붙들고 내가 등에 바늘을 꽂아 넣었다.

커튼 너머에서 아기와 함께 대성통곡을 하는 그녀를 보며 마치 내가 아기를 괴롭히는 악당이 된 것만 같아 입 안이 쌉싸름했다. ‘당연하죠.’ 라고 ‘이성적으로’ 대답했던 그 때의 나는 몰랐다.

아이를 낳았다. 첫 아이는 다행히 백일 동안 열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네 살 터울의 둘째를 낳았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감기를 달고 살아 걱정이었다. 그래도 출산 두 달 전까지 진료하며 온갖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쌓아놓은 내 고급 항체들을 받았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우스갯소리도 했다. 첫째가 열이 났다. 나도 열이 났다. 결국 둘째도 열이 났다. 둘째가 태어난 지 89일 째였다. 90일에서 하루가 모자랐다. 딱 하루.

“선생님 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인디언 속담 중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 그녀의 신발이 내 앞에 놓여졌다. 그녀의 질문이 이제서야 화살처럼 박혀왔다. 열이 올라 끙끙 앓는 내 아이를 안고 고민했다.

그 때는 당연했는데, 내 아이는 당연하지 못했다. 89일이었고 첫째랑 나도 열이 나니 바이러스 감염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그래도 검사 해야지.’ 내 귓가에 대고 교과서가 속삭였다. 교수님도 말씀하셨다. 귀를 막았다.

내 아이는 황달이 오래 지속되어 생후 30일, 50일쯤 두 번의 혈액 검사를 했다. 포동포동한 팔은 혈관이 보이지 않아 양 쪽 팔을 여러 번 찔리고 나서야 결국 목에서 피를 뽑혔다. 셀 수도 없이 아이들을 혈액검사를 했지만 내 아이의 울음은 듣기 힘들었다.

응급실에 간다면 혈액검사를 하고 뇌척수액 검사를 하고 입원하겠지. 그 과정이 머릿속에 너무나도 선명히 그려져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요새 독감이 유행이니 집 근처의 소아과 의원에 가서 독감 검사를 하고 해열제 한번 먹여보고 계속 열이 나면 그 때 가기로 결정했다. ‘의사’가 아니라 ‘엄마’ 로서 내린 결정이었다.

89일 된 아기가 열났다고 하니 의사선생님이 단번에 진료의뢰서를 줄 테니 대학병원에 가라고 하셨다.

“선생님, 제가 “

내 말을 끊으시고 단호하게 내가 수백 번은 말했을 이야기를 줄줄 읊어주셨다.

“아기가 너무 어려요. 대학병원 응급실 가서 다 검사해야 됩니다. 위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 실은……. 제가 소아과 의사인데요. 저도 열이 났고 첫째도 열이 나서 바이러스 감염 같거든요. 독감 검사 해주시고 해열제 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컨디션 봐서 밤에라도 응급실 가겠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날 어떻게 생각하려나. 선생님은 난감해 하시면서도 내 부탁을 들어주셨다. 아기엄마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보이니 옆에서 잘 도와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며 뒤늦게 남편이 의사선생님의 말을 전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독감 양성이 나와 약을 처방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해열제와 약을 먹이고 초조하게 열을 재며 밤을 지샜다.

응급실의 그녀가 나에게 따져 물었다.

‘선생님, 당연하다고 하셨잖아요.’

못 들은 체 하며 열이 올라 뜨끈뜨끈한 아기를 붙들고 제발 좋아지기를 기도했다. 별일도 아닌데 눈물이 흘렀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고 다행히 열은 떨어졌다.

그녀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니 이제야 보였다. 질끈 묶은 머리와 화장기 하나 없던 그녀의 얼굴,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몸으로 손목보호대를 차고 밤새 보채는 아기를 달랬겠지.

‘내가 뭘 잘못해서 열이 났을까? 그 때 손을 안 씻었나, 기저귀를 늦게 갈아줬을까?’

괴로움이 가득한 눈으로 스스로를 질책했겠지.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울었으리라.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소란한 응급실, 커튼을 열고 그녀에게 걸어가 울고 있던 그녀를 껴안아 본다. 그녀의 신발을 신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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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유새빛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한 해의 마지막, 산타의 선물처럼 수상 소식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올해는 둘째 출산과 함께 일을 그만두었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두 아이를 재우고 노트북을 펼쳐 쓴 글이었습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상을 주시고 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멈추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응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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