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인력난 해법이지만 현행 수가로는 어려워…시행 주체·시기 합의 필요


[청년의사 신문 정승원]

대한내과학회가 도입하려는 입원환자 전담의사(Hospitalist, 호스피탈리스트) 제도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호스피탈리스트는 내과 전공의 정원 감축과 수련환경 개선 등으로 전공의 업무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꼽혀왔다. 여기에 기존 전공의 중심의 진료체계를 전문의 중심으로 개편해 의료의 질 향상과 환자안전 강화까지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내과학회가 내과 전공의 수련 질 향상을 위한 TFT를 구성하고, 지난 1월 내과학회와 보건복지부,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이 호스피탈리스트 제도에 대해 논의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내과학회는 최근 경주 현대호텔에서 열린 춘계학술대회에서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경과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내과 직면 문제, 호스피탈리스트가 해법”

먼저 내과학회 정훈용 수련이사는 ‘입원환자 전담 전문의(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필요성’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내과 전공의 인력난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했다. 정 이사는 호스피탈리스트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로 지난해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 시행으로 전공의 수련·교육·근무시간이 80시간(최대 88시간)으로 줄어든 점을 꼽았다. 기존 전공의 근무시간을 100시간으로 잡았을 때 1년 52주, 전공의 4년으로 환산하면 4,160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의료공백을 메울 필요가 생겼고 그 역할을 호스피탈리스트가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매년 입원환자는 늘어나고 있는 반면 내과 전공의 수는 줄어들고 있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내과 연 입원환자 수는 지난 2011년 860여만명에서 2012년 878만여명, 2013년 909만여명, 2014년 912만여명으로 늘고 있다. 반면 내과 전공의 중 1년차와 2년차를 더한 수는 지난 2011년 1,355명에서 2014년 1,191명으로 줄었고, 1·2년차 총합에 3년차의 절반을 더한 수도 2011년 1,694명에서 2014년 1,529명으로 줄었다. 자연스럽게 내과 전공의 1명당 관리해야 할 입원환자 수도 기존 근무(1주일 1일 휴식, 313일 근무)의 경우 2011년 16.24명에서 2014년 19.06명으로 늘었다. 주당 88시간(191일) 근무로 환산해도 2011년 26.61명에서 2014년 31.24명으로 증가했다.

정 이사는 “입원환자 진료를 필수진료라고 한다면,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양질의 의료인력이 확보돼야 할 것”이라며 “현재 저수가 체계에서는 입원환자 진료와 같은 필수진료를 유지하기 위해 저임금 전공의에게 과도한 업무량과 고도의 역량을 강요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이사는 호스피탈리스트가 ▲전공의 정원감축 ▲수련환경 개선으로 인한 전공의 근무시간 감소 ▲내과 전공의 모집 미달 등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기존 전공의 중심의 입원환자 진료가 전문의 중심으로 바뀌면 국민에게 안전한 병원 환경과 수준 높은 진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삼성서울병원 내과 이준행 교수도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교수는 “외과는 대부분의 일이 수술장에서 벌어지고 의학적 판단도 중요하지만 술기가 우선인 경향이 있다”며 “여기에 전공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로봇수술이나 복강경수술 등 신기술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내과는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신기술이 없다. 세월호의 경우 평형수를 거의 뺀 상황에서 적정량의 두 배가 넘는 화물이 실려 비극이 발생했다”며 “질 좋고 안전한 진료를 위해서는 입원환자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현행 수가로는 불가”

하지만 오래 전부터 호스피탈리스트 제도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온 서울대병원 내과 허대석 교수는 ‘바람직한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제도 도입을 위한 실현 가능한 제언’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진료비 인상 필요성을 주장했다. 허 교수에 따르면, 현재 입원환자 1인당 의학관리료(입원료*0.4)는 상급종합병원 6인실 기준으로 4,024원에 그치고 있고 여기에 선택진료비 5,480원을 더해도 총합은 9,504원 수준에 불과하다. 현행 수가체계는 입원환자 1인당 내과 전문의에 1만원도 돌아가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러한 수가구조 하에서 병원들이 선뜻 전문의 인력인 호스피탈리스트를 채용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호스피탈리스트 제도 연착륙을 위해 전문의 5~6명이 로테이션 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추가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 병원들이 선뜻 전문의 채용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허 교수가 입원환자 전문의 진료비 인상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기존 내과 전문의와 다른 호스피탈리스트의 수입 구조 때문이다. 호스피탈리스트의 수입은 입원환자 전문의 진료비와 행위별 수가뿐이다. 외래를 보지 않는 호스피탈리스트는 기존 내과 전문의의 수입 구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래 진료비가 아예 없다. 게다가 행위별 수가라고 해서 그 수익이 전부 시술을 한 의사에게 돌아가지도 않는다. 결국 입원환자 전문의 진료비 인상이 호스피탈리스트의 주 수입원이 되는 셈이다.

이에 허 교수는 “현재 9,504원으로 어떻게 입원환자 전담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호스피탈리스트는 외래를 보지 않아 외래 진료비가 없다. 5인 1조로 돌아간다면 1일 환자 30인 기준 4만5,700원 또는 1일 환자 40인 기준 3만4,200원 등이 지급되고 전문의 당직비가 따로 추가돼야 제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패널토의에 참여한 대구경북병원회 김권배 회장은 “호스피탈리스트를 채용한다고 해도 한두 명이 아니라 여러 인원이 필요한 만큼, 재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한병원협회의 입장”이라며 “병원들이 전공의 교육을 통해 국민건강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을 고려해 재정적 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무엇보다 환자가 안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고 학회에서도 제도를 만들어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성인 전 대한전공의협의회장도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위해 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전 회장은 “호스피탈리스트를 입원환자 전담 전문의라고 했을 때 그 수익은 입원환자의 입원료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상급종합병원에서도 현재 의학관리료로는 전문의 5~6명을 로테이션 근무를 시키기 부족하다”며 “현재 입원료도 원가의 75% 수준 밖에 되지 않아 2만7,000원에서 3만5,000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비용이 추가되면 (입원환자 전문의 진료비로) 호스피탈리스트의 급여가 충당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스피탈리스트, 누가·언제 할 수 있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호스피탈리스트 연착륙을 위한 과제들도 제시됐다. 우선 대한의학회 박중신 수련교육이사는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위한 전문과목 간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내과학회가 전문과목 학회를 대상으로 한국형 호스피탈리스트 도입 필요성에 대해 발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는데, 그 자리에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누가 주관할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는 것이다.

박 이사는 “전문과목 학회 간 모임에서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내과에서 주로 담당해야 하겠지만 다른 과에서도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일정 자격을 만들어 놓고 어느 과에서든 지원할 수 있다는 방법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는 “어떤 과에서는 ‘현재 수가 그대로 가면 상대가치점수에서 진료과별로 분란이 생길 수 있어 추가 재정이 투입되는 방향으로 일이 추진돼야 한다’고도 했으며 ‘호스피탈리스트가 도입되면 전공의 정원 감축이 가속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고 했다.

내과학회도 호스피탈리스트 제도를 독점하려는 입장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내과학회 김재규 표준진료지침이사는 호스피탈리스트는 내과계에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다른 과에서도 할 수 있지만 (호스피탈리스트가 되기 위해 내과학회의) 교육이나 시험을 이수하는 방식으로 준비를 하고 있다”며 “보수교육 등을 시행해 통과하든지 평점을 받는 식으로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의 구체적인 시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충북대병원 내과 박선미 교수는 “시간이 절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오는 8~9월부터는 시범사업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호스피탈리스트 채용 공고를 내도 왜 지원을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보다 정부 주도 하에 제도가 추진된다는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호스피탈리스트라는 명칭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의학회 박중신 이사는 “현재 병원들이 ‘호스피탈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전문의를 모집한다고 하지만 호스피탈리스트를 채용해 잘 운영이 되면 정부가 추가 재정이 필요 없다고 여길 수도 있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전했다.

호스피탈리스트는 분명 환자안전 강화와 의료의 질 향상, 그리고 전공의 인력난 해소까지 기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다. 하지만 학회와 병원계에서 우려하는대로 현행 수가구조에서는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이 요원하다. 내과학회는 오는 5월 7일 호스피탈리스트 도입과 관련해 국회에서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앞으로 호스피탈리스트 연착륙을 위한 의료계와 정부의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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