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감별진단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우리나라 전문의 양성 체계를 보고 있으면, 이해 가지 않는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인구 구조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데,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가 없다. 그것을 만들 구체적인 움직임조차 없다.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를 만들어 고령화에 대비했다. 우리는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13%를 넘어섰다. 7명 중 1명이 노인인데 소아과청소년과만 있고, 노인의학 전문의는 없다.


내과 수련 기간이 긴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의과대학부터 가장 중점을 두고 가르치는 게 내과인데, 내과 전문의 되는데 한국은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해서 5년이다. 미국은 인턴 포함해서 3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러고도 다들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등 분과 전문의 과정을 2년 더 한다. 사실은 의사된 후 7년이나 다름없다.

한국 의료제도에 어울리지 않는 다소 생뚱맞은 게 가정의학과 전문의 대량 배출이다. 우리나라에 주치의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별 인구수대로 의사를 지정하는 인두제를 하는 것도 아닌데, 한 해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300명 안팎 나온다. 전체 전문의의 10% 정도 된다. 내과 다음으로 많다. 그만큼 전공의 숫자도 많다. 최상위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에 가정 주치의를 키운다는 가정의학과 레지던트가 각 병원에서 매년 20명 넘게 뽑힌다. 이것도 내과 다음이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지역 사회에서 흔히 접하는 각종 질병을 통합적으로 돌보는 1차 의사다.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힘쓰는 가족 주치의다. 그런 의사를 배출하겠다는 목적으로 35년 전 1980년에 가정의학과 전문의 제도는 출범했다. 그 이후 과연 이 목적에 부합했는가. 가정의학과 존재의 진가는 다양한 진료 과목 의료서비스가 부실한 지역사회에서 일차적 통합 진료를 하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2014년 의사협회 회원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역에 기반을 둔 가정의학과 전문의 5,878명 중 75%가 서울·부산 등 6개 대도시와 경기도에 있다. 이는 내과 전문의 76%와 같다. 즉, 가정의학과나 내과나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는 것에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서울에 있는 1,827명 가정의학과 전문의 중 강남구 소속 비율이 17%다.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 등 이른바 비급여 위주 전문과목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상당수가 미용과 비만 의료에 종사한다고 볼 수 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중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는 2%다. 신규 전문의 10명 중 1명인 것에 비하면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유독 공공의료 분야에 많이 진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럼에도 왜 가정의학과 전공의 모집 정원은 300명이 넘는가. 왜 한국 사회가 그렇게 많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양성해야 하는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재의 전문의 양성 체계는 의료서비스 문턱을 낮추는 게 최대 목표이던 시절 1980년대에 짜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전체 의사의 90%가 전문의다. 웬만한 지역 사회에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등이 밀도 있게 분포하고 있다. 마치 커뮤니티 내 그룹 프랙티스 형태의 공급 체계다. 반면 만성질환을 줄줄이 달고 지내는 노인 인구는 급속히 늘고 있고, 이들은 적합한 곳을 못 찾고 방황하고 있다.

의료 인력의 근간인 전문의 양성 체계는 시대의 인구와 질병 구조, 의료 환경에 맞추어 변해야 한다. 의사협회와 의학회는 한국 사회의 질병과 인구 패턴에 어울리는 전문의 양성 체계와 진료 제도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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