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치매가 사회적 이슈인데, 치매라는 용어만큼 환자를 무시하는 말이 없다. 치매는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를 합성한 용어다. 특정 질병을 앓는 환자를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사람'으로 부르는 것이다. 인권 침해다. 치매의 라틴어 어원인 '디멘티아(dementia)'를 일본인이 치매라고 명명했고, 우리는 그 번역을 그대로 따라 써오고 있다. 정작 치매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일본은 요즘 치매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라는 말을 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 200
지방서 사는 김모씨는 두 해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5대암 검진을 출장 검진으로 받았다. 동네 보건소에 검진 차량이 와서 하는 방식이다. 위암 검진은 차량에 설치된 엑스레이 투시기를 갖고 방사선사가 하는 위장 조영술로 했다. 그 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이상 소견 없음, 2년 후 정기 검진 권장. 이게 그가 받은 위암 검진 결과다. 이후 김씨는 위암 걱정 없이 지냈다. 그러다 1년 후, 복통이 심해 내과를 찾았다. 위내시경을 받아보니 위암이 나왔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추가 검사를 한 결과, 위암이 퍼질
지역마다 잘 생기는 질병이 있고, 사망률이 유난히 낮거나 높은 곳이 있다. 대한민국 땅 덩어리가 중국의 100분의 1 정도 밖에 안 되는데도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낙동강 하류 지역은 민물 생선을 날로 먹어 간디스토마 감염이 많아서 담낭암 발생 비율이 다른 곳보다 높다. 강원도의 모성사망률이 높은 것은 취약한 분만과 소아 의료 인프라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갑상선암 발생이 특히 여수 전남 지역에서 높았는데, 그 지역의 몇몇 의료기관이 갑상선암을 열심히 찾아낸
대학병원 외래에 가면 이게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인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수천 명에서 만명에 이른 환자들이 진료가 끝나면 처방약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 주변 약국으로 향한다. 현행 의약분업 제도에서는 병원에 약사가 있어도 병원 밖에서 외래 약을 타야 하기 때문이다. 외래 환자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들을 위해 병원이 문전 약국으로 가는 차량을 제공해도 안 된다. 셔틀 차량은 지하철역까지만 용납된다.서울아산병원은 인근 약국으로 걸어가려면 15분 걸린다. 세브란스병원도 5~10분 걸어야 문전 약국에 닿
가수 신해철을 의료사고로 잃은 지 벌써 두 해가 지났다. 수술 집도의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은 사고 발생 2년이 넘은 최근에야 나왔다. ‘신해철이 떠난 지 벌써 두 해나 됐나?’ 하다가 ‘1심 판결이 이제야 났어?’라며 놀란다. 앞선 두 해는 짧게, 뒷선 2년은 길게 느껴진다. 수술 의사 강모씨는 업무상 과실치사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0개월 금고형이다. 강씨는 초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금고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금고는 수형자를 교도소에 구금하는 중한 형벌(刑罰))이다. 징역과 달리 강제 노동을 하지 않을 뿐이다
두 해 전 이맘 때 도쿄 의대 병원에 60세 여성 환자가 빈혈 증세로 입원했다. 갖가지 검사 끝에 의사들은 백혈병으로 진단했다. 세부 유형은 비교적 흔한 '급성 골수성'으로 봤다. 그에 맞는 항암제를 썼지만 회복되지 않았다. '골수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IBM 인공지능 왓슨(Watson)에 물었다. 왓슨은 수천개의 환자 유전자 특성과 2,000만개 논문을 비교 분석하더니, 희귀한 유형의 백혈병이라는 '정답'을 내놨다. 의사들이 2주 걸릴 일을 왓슨은 10분 만에 해결해 환자를 구했다
한국인의 암 발생 패턴은 수시로 변한다. 다이내믹한 한국 사회 변화가 한국인의 몸에 그대로 담긴 형태다. 암 발생과 생존에는 그 나라의 흡연·식이·운동 등 생활 문화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 제도나 의료 행태도 암 발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대장암을 보자. 수년 전 대장암은 발생 증가 속도가 세계 1위였다. 해마다 가파르게 늘어나 한국인의 전통암 위암을 곧 제칠 추세였다. 그러다 3~4년 전부터 대장암 발생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신규 대장암 환자가 2만6,978명이었는데, 이는
독일 남부, 인구 10만의 소도시 에를랑겐에는 CT와 MRI를 생산하는 세계적인 의료기기 회사 지멘스 헬스케어 본부가 있다. 여기서 자동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500여 병상의 종합병원이 하나 있다. 이곳 심장내과 심혈관조영실에는 항상 지멘스에서 가진 최신 심혈관촬영기 기종이 설치된다. 때론 아직 시장에 내놓지 않은 장비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심혈관조영실에는 아예 지멘스 직원 두 명이 매일 출퇴근한다. 이들은 심혈관촬영기 개발 기술진이다. 심장내과 전문의가 환자를 대상으로 시술하면서 불편한 점이 있거나 개선할 사안이 있으면 즉시 받아 적는다. 지멘스 본부로 돌아가 그러한 점을 장비에 반영할 수 있는지를 즉각적으로 알아본다. 일본 도쿄대병원 내시경실에는 세계적인 내시경 기기 회사인 올림푸스가 개발 중인 최
간호사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특히 지방병원들은 간호사 못 구해 병원 문 닫을 판이라고 난리다. 전북의 한 병원은 간호사 다섯 명이 한꺼번에 그만두고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 병원은 이미 병동 하나를 닫았다. 병상 수를 줄여야 그나마 현재의 간호등급을 유지하여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한 병원은 수년 전 근사한 종합병원으로 새로 지어놓고 간호사를 확보하지 못해 3분의 1로 축소해 운영하고 있다. 지방의 병원장들 얘기를 들어보면, 간호사 부족으로 의료사고 날까 봐 다들 전전긍긍하고 있다. 병원 일에 익숙하지 않은 신규 간호사들을 병동 일선에서 관리 감독하는 중견 간호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의 모두 수도권 대형병원이나 낮 근
대학병원은 야간에도 전문 의료진이 남아서 입원 환자들을 돌볼 거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적어도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일반 병동은 그렇다. 중환자실이나 응급실은 그래도 펠로우(전문의)나 3~4년차 정도의 전공의들이 나서서 환자를 본다. 하지만 입원 병동은 이제 막 전공의 과정을 시작한 1년차들이 맡는다. 지금도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 내과 1년차들이 심근경색증으로 치료받고 누워 있는 입원 병동 당직을 서고, 신경외과 1년차들이 뇌출혈로 누워 있는 입원 병동의 주치의 역할을 한다. 솔직히 전공의 1년차 정도는 아는 게 별로 없고, 경험도 적다. 그도 그럴 것이 전공의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1년차들에게 하루도 쉬지 않는 일주일 연속 야간
한 정형외과 병원이 겪은 일이다. 응급실로 척추 골절 환자가 왔다. 40대 후반 여성으로 아파트 3층에서 떨어졌다. 척추뼈가 박살 나면서 척추관으로 밀고 들어갔다. 양쪽 다리에 신경 마비 증세가 오기 시작했다. 원장은 척수 신경 손상이 올 것 같아 수술로 신경 압박 골절 부위를 해결했다. 환자는 증상이 좋아져 퇴원했다. 몇 달 후 원장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이 환자의 진료비가 삭감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보존 치료를 해도 될 환자를 수술했다는 이유로 260만원이 깎였다. 압박 골절로 인한 척추선 굴곡 각도가 미약했다는 것이 익명 상태의 심평원 자문위원 지적이라는 거다. 원장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기껏 응급 수술로 영구적 신경 마비가 올 환자를 살려 놨더니 과잉진료라는 덤터기를 쓴
서울 강북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의사인 학생 손들어봐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 지역 대로변에 소아과·내과·정형외과 동네의원이 줄줄이 있건만, 그 초등학교에 의사 학부모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의사들이 개업은 ‘강북’에 해도, 집은 ‘강남’에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아이들 교육 환경에 따른 선택이라고 말한다. 정확히는 좋은 학원 때문이지 싶다. 이런 연유로 서울 대치동에는 경기 동남부 지역 근무 의사들이, 목동에는 경기 서부, 인천권 병원 의사들이 많이 산다. 20년 전 국군대구병원에서 군의관 하던 시절, 병원에는 경북의대·영남의대 등 대구 출신 군의관이 많았다. 전역이 가까워지자 다들 병원 근무처를 알아보는데, 같은 과 전문의인데도 영천·문경 등 경북 지
중소기업을 하는 한 지인은 최근 200만원 가량 하는 고가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통해 전신 암(癌)을 찾아 준다는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CT)을 했다. 그는 올 봄에 협심증 증세가 있어 심장 관상동맥 CT도 찍었다. 지난해 말에는 자동차 접촉 사고로 목뼈 CT를 찍은 바 있다. 그가 근래 받은 방사선 피폭량은 어림잡아 40밀리시버트(mSv)다. mSv는 방사선 피폭이 사람 몸에 미칠 영향을 평가한 방사선량 수치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는 한 해 방사선 피폭량으로 1mSv 이하를 권장하고 있다. 벌써 그 40배를 넘긴 것이다. 아무 증상 없는 사람이 암 찾겠다고 PET-CT를 찍기도 한다고 외국 의사들에게 말하면 "에이, 설마!"라고 말한다. 건강검진 기관에서는 피검자에게 최근 방사선 피폭 상황을 묻지
요즘 병의원 진료를 받은 환자들은 진료비를 거의 모두 카드결제 하고 있다. 1,500원 하는 본인부담 진찰료도 카드 결제를 하기도 한다. 일부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현금 결제를 하면 치료비를 깎아주는 편법 행위를 제외하고는 모두 카드 결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럴 때마다 3% 안팎의 결제 수수료가 카드 회사로 넘어간다. 100만원 카드 결제하면 3만원은 카드회사 몫이다. 일반 상점이야 카드결제 편의로 매출 증가와 수익 증대 효과를 봤으니 수수료를 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의료기관은 사정이 다르다.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 분야에도 병원이 카드 수수료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국민건강보험 진료비의 40% 가까이 되는 비급여가 그렇다. 예를 들면 이렇다. 대학병원 종양내과에서 100%
독일 남부 인구 10만명의 소도시 에를랑겐에는 CT와 MRI를 생산하는 의료기기 회사 ‘지멘스 헬스케어’ 본부가 있다. 지멘스 관련 직원이 약 2만명이 여기에 거주한다. 그 식구까지 합치면 도시 인구 절반이 지멘스 사람이다. 에를랑겐은 지멘스로 먹고산다고 보면 된다. MRI 공장 한쪽 벽면에는 340명 기술자의 이름이 액자에 모셔져 있었다. MRI 제조와 관련해 기술 특허 287개를 출원한 기술자 명단이었다. 그들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땄다. 공장 한쪽에는 각 분야 최고 기술자들의 실험실이 모여 있어 공과대학 연구실 같은 분위기다. 여기서 기초과학과 엔지니어링이 만나 섞인다. 독일 의료기기 산업은 그런 식의 만남에서 출발했다. 1895년, 독일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은 인류 최초로 X-선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미국 미네소타에는 질레트 아동병원이 있다. 미국 최초로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치료하겠다고 나선 병원이다. 지금부터 119년 전인 1897년이다. 질레트는 정형외과 의사 이름으로, 설립자다. 당시 장애가 있는 사람은 교육, 취업뿐만 아니라 치료에서도 차별받았다. 젊은 정형외과 의사 질레트는 수많은 근골격계 장애 어린이가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현실을 개탄했다. 이에 그는 장애 어린이를 돌볼 기금을 만들자고 미네소타 국회를 설득했다. 그것이 질레트 아동병원의 씨앗이 됐다.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기부금이 답지했고, 의료진이 몰려들었다. 질레트 아동병원의 정신은 미국 전체로 퍼져 나갔다. 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 아동병원을 시찰 간 적이 있다. 널찍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앞으로 어느 진료과목 전문의가 유망할 것 같나요?” 직업이 의학전문기자다 보니,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의사 출신 기자로서 의료 사회학, 건강보험 제도, 미래 의료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흐름을 접할 것이라 짐작하고 묻는다. 의과대학 교수나, 젊은 의사도, 자식이 의대에 다니는 학부모들도 같은 질문을 한다. 최근 진단검사의학과 주최 심포지엄에 의료 관련 주제 강연차 참석했는데, 거기서도 한 의대 교수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어느 과가 전망이 좋을 것 같으냐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여기 계신 진단검사학과 선생님들은 탁월한 선택을 하신 거라고.” 왜냐고?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의사들도 늙는다는 점 때문이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전세계 의료계 어디에도 드문 두가지 현상이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전통 중국의학을 모태로 한 이른바 오리엔탈 메디신 의료인이 현대의학을 바탕으로 한 의료기기를 직접 쓰겠다고 한 주장이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OMD(oriental medicine doctor) 면허 제도가 있지만 이들이 초음파나 엑스레이를 단독으로 운영하며 직접 판독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없다. 또 다른 현상은 국가가 인정한 교육 과정을 통해 배출되는 한의사를 의사협회가 없애겠다고 하는 이른바 ‘의료 일원화’ 주장이다. 중국의학과 한의학은 기(氣)와 혈(血)을 근간으로 하는 의술 체계다. 그것이 초음파나 엑스레이에 잡힌다면 모를까, 한의학이 그러한 의료장비를 꼭 써야 진료가 가능하다는 주장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우리나라 전문의 양성 체계를 보고 있으면, 이해 가지 않는 게 한둘이 아니다. 우선 인구 구조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데,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가 없다. 그것을 만들 구체적인 움직임조차 없다.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노인의학 전문의 제도를 만들어 고령화에 대비했다. 우리는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13%를 넘어섰다. 7명 중 1명이 노인인데 소아과청소년과만 있고, 노인의학 전문의는 없다. 내과 수련 기간이 긴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의과대학부터 가장 중점을 두고 가르치는 게 내과인데, 내과 전문의 되는데 한국은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해서 5년이다. 미국은 인턴 포함해서 3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러고도 다들 소화기내과, 심장내과 등 분
[청년의사 신문 김철중] 의사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몇몇 병원의 과잉진료 사례가 나온다. 그중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한 것도 있다. 의과대학 교수를 포함하여 여러 신경외과 의사들은 특정 병원을 지칭하며 “너무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잉 진료 성토다. 인공 디스크를 여러 레벨의 척추에 2~3개를 집어넣고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진료비를 받아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수술을 하면 500만~700만원이면 충분한 것을, 첨단 인공 디스크 삽입술이라면서 2,000만원을 받는 식이다. 물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다. 수술 받은 진료비 전체를 그대로 대주어야 하는 실손보험회사들은 이 병원에 대해서 손사래를 젓는다. 모르긴 몰라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태세다. 그 병원의 행태를 두둔하는 의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