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신문 김민아] [청년의사가 만난 사람]

정형선(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얼마 전 보건 전문 학술 저널인 ‘Health Affairs’ 1월호에 우리나라 건강보험 30년을 분석, 정리한 논문을 실었다.

‘Health Affairs’ 는 보건정책 및 보건경제 분야를 통틀어 1~2위를 다투는 학술지다. 건강 보험이 도입된 1977년부터 2007년까지 30년 간 보건의료체계의 변화를 ‘돈의 흐름’으로 살펴본 이 논문은 편집자들에게 ‘의료보장을 확대하고 건강보험개혁을 추구하고 있는 개발도상국가에 특히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논문 전문을 보려면 http://www.mdlinx.com/hospital-administration/news-article.cfm/3437954)

세계 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기고하는 학자는 정형선 교수 말고도 많지만, 이번에 채택된 논문은 정형선 교수의 범상치 않은 이력을 모두 담은 ‘이력서’라고도 볼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OECD를 거쳐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위원이자 보건행정학자로 그리고 웬만한 의료 정책 이슈가 생기면 ‘한 마디’해줄 것을 요청받는, 대표적인 의료전문가로 자리 잡은 정형선 교수를 만났다.

Q. 의료계 뉴스를 챙겨보는 의사들 중에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 하는 경우도 있더라.

여기저기 이름은 많이 나오는데 뭐하던 사람인가 궁금할 수 있겠다, 하하. 결과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분야 사람이 와서 있는 거니까.

이력을 소개하자면 학부는 서울대 영문과를 나왔고, 보건 분야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83년도에 행정고시 합격한 뒤 당시 보건사회부에 지원하면서다. 서울대에서 보건경제로 보건학 석사를, 도쿄대에서 보건관리로 보건학 박사를 받았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등이 일본을 많이 따라했던 터라 실용적으로 일본을 선택했다. 요즘은 오히려 우리 EDI이나 심사평가시스템을 배우러 일본에서 많이 온다. 그때까지는 학문의 길로 들어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1994년 ‘Health Policy’에 실린 박사 학위 논문은 OECD 국가의 의료비를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서 1997년 주(駐) OECD 한국대표부 보건복지 주재관으로 3년간 파리에 있었다. 그 후 2년간은 OECD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다. 누구나 한번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고 싶어 하잖나. 국내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도, 전문성도 쌓았다. 2002년부터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Q. 2007년 OECD 보건계정전문가회의 의장을 역임했는데, 보건계정이란?


나라별로 의료비를 비교할 때 제도가 다르니까 단순 비교가 곤란하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그런 수치를 조정하는 공통기준을 만든다. 이 회의체는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는데, 이를 보건계정체계(SHA: System of Health Account)라고 한다.

OECD 내에서 내가 근무한 곳이 이 작업을 하는 부서였으니 그 이전의 주재관 시절까지 하면 10년 이상을 회의에 참석했다고 보면 된다. 각국 대표 중에서 나보다 오래 이 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기억이 안날 정도다. 국제기구 가입국은 이런 통계를 제출할 의무를 가진다.

OECD 회원국 중에서 EU(유럽연합) 국가는 EUROSTAT(유럽연합통계국)에, 그 외의 OECD 국가는 OECD에, 나머지 전세계국가는 WHO에 보건계정 산출물을 제출한다. 워낙 내용이 복잡하고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혼선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추천해서 지정된 Focal Point에게 책임을 맡기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2006년부터 적용되었는데 정부는 나를 지정했다. 보건계정에 따른 산출작업을 해온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방법론이 틀을 잡았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합의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를 위해 보건경제·정책학회에 보건계정포럼이 만들어진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국가 단위 의료비를 비교할 때는 보건계정을 통해 취합된 자료만이 인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권위는 OECD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만 나올 수 있다. 가끔 인용되는 OECD 의료비통계는 모두 보건계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논문에도 이 기준에 따른 자료원과 추정치를 썼다. (healthaccount.kr에서 보건계정은 물론 정 교수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Q. 정책을 실현하는 정부에서 연구하는 학계로 넘어왔는데?

내가 하는 학문은 정책과 밀접한 응용과학이다. 보건정책의 실제 흐름과 동떨어져서는 의미가 없다. 요즈음의 무상의료 논쟁에서 보듯이 현실정치와도 관련이 크다. 그래서 ‘학문한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지 않는다, 하하. 건강정책심의위원회 위원이기도 한데 그 활동을 통해서 내가 연구한 이론을 시현하려고 노력도 하지만 덕분에 최근의 이슈를 가장 빨리 접할 수도 있기도 하다.

이론과 정책 현장 모두가 지금 내게 풍부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물론 행정고시 동기들은 대부분 국장급 이상이니까 더 적극적으로 뜻하는 바를 정책화할 수 있다. 그러나 조직의 일원으로서의 한계도 있다. 학교에 있으니 하고 싶은 얘기 마음껏 할 수 있고 자유롭다.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고 시간도 마음대로 배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대안 없이는 비판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안 없는 비판의 무책임함을 답답해하는 입장에 있어봤기 때문에.

Q.정치적 지향점이 다른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볼 수 있는데, 색깔(?)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무상복지 논란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에서 이상이 교수와 대비되어 ‘무상복지’에 대해 반대하는 것처럼 나왔다. 사실 나는 무상급식에는 우호적이다. 의무교육에서 점심 주는 것과 교과서 지급하는 것과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본다.

이것을 하면 다른 복지는 못하는 양 호들갑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아마 좌파인가보다. 의료도 보편적인 ‘무상’은 있을 수 없지만, 보장성은 대폭 확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한겨레신문에 실으려는 글이 있었는데 무상의료에 반대하는 내용이라고 하니까 사양하더라. 동아일보는 글을 보자고 하더니 일부 내용만 토론형식으로 사용하면서 ‘반대’ 쪽을 더 부각하더라. 갑자기 우파가 됐다. 예전에 의대 정원 늘려야한다는 글을 조선일보는 안 받고 한겨레는 받더라. 나가고 나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의협에서는 한마디도 안하더라. 전에 비슷한 내용을 발표한 다른 학자에게는 비난 발언을 쏟아냈던 것 같은데. 괜히 건드릴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지, 하하.

사실 항상 일관된 얘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시민단체 소속도 아닌 사람이 때로는 우호적인, 때로는 쓴 소리를 하니 정체를 모르겠다고 하나보다. 나는 똑같은데 언론이나 의료계나 사안에 따라 편 가르는 것 같다. 하긴 건정심의 공급자나 가입자 대표들끼리도 가끔 정 교수가 이번 사안에서는 어디로 튈까 같이 추측도 해보고 한다고 하더라, 하하.

Q.보건복지부에 있을 때도 보건행정학자로 보건의료계에 대해 발언할 때도 의사들을 많이 상대하게 되는데.

머리 좋은 사람들이 의대에 가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최상위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쏠리는 것은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들도 겉으로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 같더라, 하하. 의료정책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의 걱정은 의사들의 기대수준이 너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연봉 수억 원인 삼성 임원을 거론하면서 이들보다 못 벌지 않느냐고 하는 의사도 만났다. 삼성 임원 같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극히 예외적인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그들이 삼성을 선택할 당시의 실력에 비해 결과적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일수도 있다. 이러한 예외적인 사람들을 비교상대로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의료 정책자들에게 의사들의 이런 태도가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우리 같은 최고 엘리트들에 대해서 왜 당신 같은 사람이 왈가왈부하고 이것저것 간섭하려드느냐”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이런 것 비판하면 “이 사람 우리 편 아니다”라고 생각하겠지. 이번에 무상의료를 비판했을 때는 “우리 편인가보다”했을지도 모른다, 하하. 정치적 입장에 따라 말 바꾸지 않는 ‘합리적인’ 학자라고 봐주면 고맙겠다.

글 김민아 기자 licomina@docdocdoc.co.kr

사진 김형진 기자 kimc@docdocdoc.co.kr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