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제노스코 고종성 대표 대담②]
“‘신약 없으면 죽는다’는 유한양행의 염원이 렉라자 낳아”
"개발 완주 못지않게 기술이전 통한 사업개발 경험 중요"

(왼쪽부터)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조병철 교수와 제노스코 고종성 대표(ⓒ청년의사).
(왼쪽부터)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조병철 교수와 제노스코 고종성 대표(ⓒ청년의사).

국산 항암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 임상시험을 주도하며 개발의 산증인이기도 한 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폐암센터장)와 제노스코 고종성 대표는 유한양행이란 기업의 신약 개발 의지가 없었으면 렉라자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 우여곡절을 옆에서 직접 봤기 때문이라고.

앞서 유한양행은 얀센이라는 글로벌 파트너를 만나기 전 한 차례 고배를 마셔야 했다. 렉라자 임상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 2016년 중국 제약사 뤄신과 총 1억2,600만 달러 규모의 중국 지역 렉라자(개발명 YH25448)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지만 뤄신 측에서 계약금을 보내오지 않아 계약 자체가 무산된 것.

고 대표는 “당시 유한양행 이정희 대표가 와서 계약이 불발돼 미안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오히려 잘 됐다고, 중국으로 넘어가서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보다는 우리가 직접 더 빨리 개발해서 더 좋은 조건에 라이선스아웃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며 그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렉라자 국내 1차 치료 허가의 근거가 된 다국가 3상 임상시험 레이저301(LASER301) 또한 순탄치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차례로 발발한 탓이다. 특히 임상 참가자가 우크라이나 환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하고 마음을 졸여야 했다고. 임상 담당자들이 약 배송과 모니터링을 위해 밤낮 없이 일하면서 고비를 넘겼단다.

조 교수는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 임상이 매끄럽게 진행된 것과 달리 렉라자 임상에는 어려운 점이 참 많았다”며 회상했다.

고 대표는 “유한양행이 렉라자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서 과감하게 베팅을 한 덕에 지금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며 “신약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유한양행의 염원이 렉라자를 낳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레이저301 임상 연구에는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사들, 말뿐 아니라 신약개발 행동으로 옮겨야”

이들은 또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의지와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느겼다고도 했다.

조 교수는 “렉라자가 유한양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성공한 약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여러 제약사들을 보면 말들은 많지만 결국은 행동으로 옮기느는 곳은 많지 않다”며 쓴소리를 했다.

고 대표는 “상업화를 위한 자체 신약 개발 완주도 좋지만 기술이전을 경험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기술이전에 성공한 A제약사 회장님께 이야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기술이전을 위해 BD(사업개발)를 해보면 다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상대가 우리 물질을 가져갔을 때 최우선순위 프로젝트가 돼야 하는데 자칫 ‘원 오브 뎀(One of them)’ 파이프라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며 상대 기업의 신약 개발 열의를 파악하는 안목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더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리브리반트 임상…렉라자와 병용 투여까지

이날 조 교수는 유한양행 렉라자와 얀센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 병용요법 개발에 얽힌 뒷이야기도 귀띔했다.

조 교수는 “2015년 싱가포르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병원 내 폐암센터를 이끌 즈음 해외에서 메일 한 통이 왔다. 이중항체라고 소개를 한 하나의 약물에 대해 자문을 구하는 메일이었다. 그 약물이 아미반타맙이었다. 처음에는 얀센조차 뭘 시험해 봐야 할지 모르던 상황이었다”며 “이를 테면 한 손에는 렉라자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아미반타맙을 쥐고 비슷한 시기 각각의 연구를 병행한 셈”이라고 말했다.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조병철 교수(ⓒ청년의사).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조병철 교수(ⓒ청년의사).

조 교수는 “렉라자 연구에 화룡점정으로 마침표를 찍은 게 마리포사(MARIPOSA) 임상인데, 그 연구의 시작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며 “당시에 50대 여성 환자 한 분이 국립암센터에서 전원됐는데, 엑손 20 삽입 변이가 있는 환자였다. 당시 해당 변이에 대한 약은 없었다. 또 평소에 눈여겨보던 타깃도 아니었고, 그나마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는 급여가 안 되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 환자 아들이 지극정성으로 어떻게 좀 해달라고 사정을 하고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 참석하게 됐다. 얀센 임상팀에서 한 번 보자고 한 터였는데, 딱히 안건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아들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미국에 도착한 뒤 얀센 측을 만나서 지금 이런 환자가 있는데 한번 (임상) 등록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 환자는 전 세계에서 엑손 20 삽입 변이로 아미반타맙을 투여 받은 첫 번째가 됐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그때 그 환자가 엑스레이를 찍으면 오른쪽에 커다란 암 덩어리가 있었다. 근데 그게 2주 만에 없어진 거다. 그래서 그 결과를 얀센 임상 팀 전체에 보냈더니 깜짝 놀라면서 아미반타맙이 엑손 20 삽입 변이에 듣는다는 걸 알게 됐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81명의 피보탈 코호트(pivotal cohort)를 열었다. 이를 토대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신속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얀센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엑손 19 결손(Ex19del)이나 엑손 21(L858R) 치환 변이 관련 단독 투여 임상을 시작했다. 반응이 있으니 3세대 EGFR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8년 11월 유한양행과 얀센이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덧붙였다.

“렉라자, 경쟁 약물보다 더 많은 환자 치료하는 약제 됐으면”

마지막으로 렉라자가 글로벌 신약으로의 도약을 앞둔 현재 심정을 묻자 고 대표는 “렉라자가 FDA로부터 허가를 받아서 경쟁사보다 훨씬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약제가 됐으면 하는 게 첫 번째 바람이고, 조 교수와 또 한 번 새로운 약물을 만들어보는 게 두 번째 바람이다. 또 우리를 보고 신약 연구자들이 용기를 얻어서 신약 개발에 나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무엇보다 환자들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기쁘다. 전 세계에 폐암 치료제가 타그리소 하나만 존재하는 건 환자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고가의 약이기 때문에 보험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타그리소를 처방 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FDA로부터 렉라자 병용 요법 또는 단독 요법 승인이 나면 정말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약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제2, 제3의 렉라자가 나옴으로써 제약 주권을 가진 바이오 강국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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