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활동·진료 중단하고 “정책 투쟁” 올인
범대위 합류 비판에 “과거 복기해 문제 파악”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사안…교수들 적극적”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던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집행부가 ‘강성’으로 돌아섰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 때문이다. 이필수 회장은 투쟁을 외치며 삭발했고 강성 이미지가 강한 최대집 전 의협 회장과 손을 잡았다.

최 전 회장은 의협이 구성한 투쟁체인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범의료계 대책 특별위원회’(범대위)에서 투쟁분과위원장을 맡았다. 대정부 투쟁 전면에 전(前) 회장이 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최 전 회장은 모든 정치 활동을 중단하고 의대 정원 확대 저지 투쟁에 ‘올인’한다. 운영하던 의원도 휴업하고 5일부터 의협에 상근하며 투쟁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최 전 회장은 4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이번 투쟁은 정책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 반영된 ‘정치 투쟁’이 아니라고 했다. 집회 참석 등 정치 활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한 이유도 이번 투쟁에 정치색을 덧입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 전 회장은 지난 2020년 9.4의정합의문을 체결한 당사자로서 “폭력적인 방식으로 약속을 어기고 무리하게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정부”에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의협 투쟁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이 회장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협 투쟁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서는 최 전 회장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지난 2020년 의사 단체행동에 앞장섰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못마땅한 표정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 전 회장을 투쟁위원장에 임명한 의협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은 9.4 의정합의가 독단적이었다고 비판한 제23기 대전협 집행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최 전 회장도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을 알고 있다고 했다. 최 전 회장은 당시 갈등이 “대화와 소통 부족” 때문이라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 전 회장은 “회장일 때는 일체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과의 뜻도 여러 번 밝혔다”며 “내가 원해서 한 소송도 아니었다. 당시 전공의들 사이에서 고소·고발이 이뤄졌고 ‘의협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강행한 게 아니다’라는 걸 밝혀줘야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전공의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했다.

의협은 범대위 산하에 투쟁분과 외에도 조직강화분과와 홍보분과를 구성하고 위원장으로 최운창 전라남도의사회장과 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장을 각각 임명했다. 또한 오는 11일부터 15일까지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실시하고 17일에는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대한민국 의료붕괴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주 용산 대통령실 앞 철야시위도 시작한다.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장(왼쪽)은 의협 이필수 회장의 요청으로 투쟁위원장을 맡았으며 "구속될 각오"로 의대 정원 확대 저지 투쟁을 이끌겠다고 했다(ⓒ청년의사).
최대집 전 대한의사협회장(왼쪽)은 의협 이필수 회장의 요청으로 투쟁위원장을 맡았으며 "구속될 각오"로 의대 정원 확대 저지 투쟁을 이끌겠다고 했다(ⓒ청년의사).

- 의협 투쟁위원장을 맡아 전면에 나서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전직 회장은 보통 고문이나 자문 역할을 하지 투쟁 전면에 서는 전례는 없다. 전직 회장이 발언을 하면 현직 회장이나 집행부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안 자체가 중대하고 지난 2020년 9.4 의정합의 당사자로서 정부가 무참히 약속을 깨는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문재인 정부 때 이뤄진 합의라고 해도 정부가 한 약속은 지켜야 된다. 사기꾼도 아니고 너무 폭력적인 방식으로 약속을 어기고 단기간에 무리하게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 근거도 없다. 이런 식이면 우리나라 의료제도를 아예 붕괴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필수 회장이 같이 싸워보자고 했을 때 아무 조건 없이 백의종군하는 각오로 전면에 나서겠다고 했다. 대신 신변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 신변정리는 무엇을 말하나.

이번 투쟁이 제대로 된다면 나는 구속될 것이다. 그럴 각오로 이번 투쟁에 임하고 있다. 우선 진료를 중단하고 사실상 상근으로 뛸 예정이다. 진료는 오늘(4일)까지만 한다. 제도권 정치를 한다고 선언한 상태여서 이 부분도 정리가 필요했다. 의협 투쟁위원장을 하는 동안에는 외부 정치 집회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연사로 참여하기로 한 집회들이 있었지만 양해를 구했다. (의대 정원 확대 저지 투쟁을 위해) 모든 걸 다 버렸다.

- 정치적인 목적이 있어서 의협 투쟁위원장을 맡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에 예비후보로 7개월을 뛰었고 당시에도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도 전개해 왔다. 그래서 의료계를 정권 퇴진 운동에 이용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전혀 무관하다. 내년 총선용도 아니다. 국민 70~80%가 찬성한다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반대하는 건 총선에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현 정권이 의대 정원을 총선에 이용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일관된 입장을 보여 왔다. 의협 투쟁위원장을 맡은 것은 정책 투쟁 차원에서다.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책과 대안을 제시하고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의대 정원 확대 근거를 대야 한다. 이를 통해 9.4 의정합의대로 원점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 의료계 내부 결집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의사 단체행동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의협 최대집 투쟁위원장’에 부정적이다.

비판적인 견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당시에도 우리 내부적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회장으로 있을 때는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았다. 사과의 뜻도 여러 번 밝혔다. 그 이후 (23기 대전협 집행부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내가 원해서 한 소송도 아니었다. 당시 전공의들 사이에서 고소·고발이 이뤄졌고 ‘의협이 일방적으로 합의를 강행한 게 아니다’라는 걸 밝혀줘야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전공의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했다.

결국 대화와 소통이 부족해서 내부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났다. 당시 과정을 복기하면서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했다. 이번에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자발적으로 투쟁할 수 있도록 요구사항이 있으면 정부를 상대로 100% 관철시킬 것이다.

- 의대 정원 문제로 의료계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보는가.

워낙 큰 사안이기 때문에 의협 집행부가 일어나지 말라고 해도 회원(의사)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지난 2020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의대 정원 확대 규모가 크다. 자발적으로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전공의와 의대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초등학교 한 반에서 25명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60~70명을 가르치라고 하는 것과 같다. 교사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한가. 감당할 수도 없다. 이번에 전공의들이 움직이면 교수들이 묵인하거나 허락하는 정도가 아닌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료를 붕괴시킬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에 싸우지 않을 수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