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의사 토크쇼에 몰린 의대생·전공의들
"다양한 진로 모색"…"10년 뒤 환경 고민"
기동훈 대표 "의사 엑소더스 본격화될 것"

의사·의대생 플랫폼 ‘메디스태프’는 29일 강남역 인근에서 ‘영국·일본에서 슬기로운 의사 생활’ 토크쇼를 개최했다(ⓒ청년의사).
의사·의대생 플랫폼 ‘메디스태프’는 29일 강남역 인근에서 ‘영국·일본에서 슬기로운 의사 생활’ 토크쇼를 개최했다(ⓒ청년의사).

최근 해외 취업으로 눈을 돌리는 젊은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의사로서의 꿈을 펼치려는 이들의 도전은 언뜻 고무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논란, 열악한 수련 환경 등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느껴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이들도 있다.

이에 앞으로 의사들의 ‘엑소더스(Exodus)’ 행렬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의료정책에 실망한 의사들이 '각자도생'을 택하며 해외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의사·의대생 플랫폼 ‘메디스태프’가 지난 29일 강남역 인근에서 개최한 토크쇼 ‘영국·일본에서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선 의대생과 의사들의 해외 취업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유료로 진행된 행사임에도 4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 중에는 의대 예과생, 본과생부터 전공의, 심지어 전문의들도 있었다. 이들은 강연 동안 발표 슬라이드를 촬영하거나 중요한 내용을 받아적는 등 열의를 보였다.

참석자 중에선 의사로서의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참석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서울 소재 의대에 다니는 예과 1학년생 A씨는 “아직 예과인 만큼 다양한 분야로 진로를 찾고 싶어서 참석했다. 친구 중에서도 해외 취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몇명 있다"며 "현재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앞으로 해외 취업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궁금해서 강연을 들으러 왔다”고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1년 차 전공의인 B씨도 “전문의 자격증을 딴 후 해외 유학을 고민하고 있다. 대학원을 갈지 다시 전공의 과정을 밟을 지 고민이 돼 참석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에 교육받을 기회가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좀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 유학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 환경을 고려했을 때 앞으로 한국에서 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을지 고민을 품고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이도 있었다.

본과 2학년생인 C씨는 “최근에 주변에서 의료 정책에 불만을 갖고 ‘USMLE를 준비해야 한다’ 등의 얘기가 나온다. 모든 나라가 완벽할 수 없겠지만 요새는 특히 어려운 시기 같다”며 “앞으로 의료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고민돼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했다.

지방 소재 의대에서 공부하는 예과 2학년생 D씨는 “해외 취업한 선배들에게 많은 얘기를 들었다. 여기에 의료 정책을 생각했을 때 의사에게 우호적인 것 같지 않아서 해외는 어떤지 궁금해졌다”며 “10년 뒤에 의사가 될 텐데 한국이 좋을지 해외로 나가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E씨는 “해외에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서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에서는 앞으로 의료 정책이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아이들이 의학이나 과학에 관심이 크고 의사가 되고 싶다는데 한국보다 해외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필수 의료 인력인 전공의, 해외에선 '수련의' 개념

문승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영국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청년의사).
문승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영국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청년의사).

이날 강연자들은 해외 국적으로 영국과 일본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점과 일본·영국의사시험 통과 비법, 근무 환경, 해외 생활을 위한 팁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수련 환경에 대해 강조했다. 전공의와 인턴이 병원 내 주요 의료 인력으로 여겨지는 한국과 달리 영국과 일본에서는 ‘수련의’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소속인 Swansea Bay University Health Board(SBUHB)에서 근무하는 문승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자신의 전공의 경험을 돌이켜보며 ‘외동딸’이 된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문 전문의는 “영국에서의 전공의 기간은 그야말로 ‘꿈을 펼칠 수 있는 기간’이다. 교수들도 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라고 권유한다"고 했다. 또 "전공의에게는 일대일로 비서가 배정돼 일정 관리도 도와준다”며 “1년차부터 대학 강의를 하거나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져 다양한 일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전문의는 “근무 시간도 연차와 상관없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인데, 교수들도 전공의가 힘들면 의료 질이 나빠지는 것이니 눈치 보지 말고 퇴근하라고 한다”며 “환자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련의를 키우는 것에 비중이 더 크다. 전공의 교육을 위해 수술이나 외래 시간을 줄이는 것이 당연한 문화”라고 했다.

일본 쇼와대학병원 남성현 연수의도 “병원 내에서 각 과에 전공의를 유치하기 위해 의국설명회를 여는 등 전공의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 홍보한다. 설명회에서는 여러 핸즈온도 경험할 수 있는데 국내에선 100만원 상당을 내야 하는 세미나에서 다루는 술기들도 알려준다”고 했다.

남 연수의는 “기본적으로 오전 8시 30분부터 5시까지 정규 근무하고 2시간 정도 시간 외 근무를 한다. 그 이후에 근무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연수의들이 없어도 병원이 돌아가는 게 당연한 시스템이다. 연수의들 모두 가르침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크며 전인적 교육을 통해 1인분을 하는 의사로 키운다는 게 일본의 의료 정책”이라고 전했다.

"각자도생 분위기 속 한국 의사 엑소더스 본격화될 것"

일본 쇼와대학병원 남성현 연수의는 일본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청년의사).
일본 쇼와대학병원 남성현 연수의는 일본에서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청년의사).

앞으로는 의사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엑소더스’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의 의료 정책과 수련 환경 등에 실망하고 ‘각자도생’을 택할 의사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메디스태프 기동훈 대표(중앙대병원 응급의학과)는 “의사들의 엑소더스가 본격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의대 정원을 3,000명을 늘리면 3,000명이 (해외로) 나갈 것”이라며 “어차피 의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각자도생하겠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외국으로 가거나 임상이 아닌 다른 분야로 진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기 대표 “지난 2020년 파업 이후 의사들은 자신의 업에 대한 최선을 놓고 있는 것 같다. 사실상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포기한 모양새”라며 “예전과 달리 좀 사무적으로 환자를 보게 되거나 소송이 두려워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이에 앞으로 더 많은 의사들이 해외 진출을 고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이어 “당장 의대 정원을 늘려도 현직 의사들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 보이기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무작정 정원을 늘려도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서 제대로 된 의사를 배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문 전문의가 전공의 기간 동안 ‘외동딸’이 된 경험을 했다는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수련 환경이 보장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의 해외 진출이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남성현 연수의는 “한국 의사들이 해외 취업을 고려하는 것에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현실이 받쳐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에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막을 수 없는 흐름이 된 만큼 기왕 해외에 나간다면 열심히 활동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