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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그가 미국에서 의사로 사는 법을 알려주고 싶은 이유마취과 전문의 그룹 ACI-LLC 박찬왕 CIO가 말하는 ‘미국에서 의사하기’
  • 송수연 기자
  • 승인 2019.01.02 06:00
  • 최종 수정 2019.01.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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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의사들이 많다. 한국에 기반으로 두고 해외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의사들도 많지만 아예 생활터전을 옮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선진 의료기술을 배울 수 있는 미국은 의사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아메리칸 드림’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가 미국으로 생활터전을 옮긴 건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 아니다. 상투적이지만 우연과 필연이 겹치면서 자연스럽게 미국을 선택했다. 물론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영어를 잘하지도 못했고, 거대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현재 미국에서 마취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박찬왕 씨의 이야기다. 그는 현재 마취과 전문의 100명으로 구성된 Private Practice 그룹인 Anesthesia Consultants of Indianapolis, LLC의 파트너 의사이면서 최고정보관리책임자(Chief Information Officer)와 이사(Board of Directors)도 맡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Technology)로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각종 Compliance 문제를 해결하는데 관심이 많아 여러 프로젝트를 시도 중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생계형 의료인’이라고 소개했다. “훌륭한 학자가 되는 목표를 가진 것도 아니고 인류를 구하겠다는 거대한 사명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평범한 미국 마취과 의사로 살면서 세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소박한 아버지다.”

미국에서 마취과 전문의로 살고 있는 박찬왕씨와 그의 딸. 박씨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오랜 꿈인 Medical Informatics를 포기하고 Private Practice를 선택한 이유가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난 2004년 연세의대를 졸업한 그는 “학생 때 미국에서 마취과 의사로 살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사 근무를 마친 뒤 바로 미국으로 갔고, 현재 그곳에서 마취과 의사로 생활하고 있다.

이같은 선택에는 의대 동기로 만나 결혼한 그의 아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녀는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길 원했다. “남자 형제가 없는 내가 부모님을 한국에 두고 미국으로 가도 되는지 고민됐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에 인생을 맡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데 일단 아내를 따라나섰다.”

마취과 전문의 자격은 그의 아내가 먼저 취득했다. 그녀가 마취과 레지던트 수련을 받은 3년 동안(미국은 마취과 전문의 수련 기간이 인턴 포함 4년) 그는 “집에서 밥을 했다.” 이때 갈고 닦은 요리 실력으로 지금은 잔칫상 정도는 혼자 차릴 수 있다. 심지어 가장 자신 있는 요리가 갈비탕이다.

“지금까지 쌓은 경력 중 가장 자랑스러운 게 3년간 쉬면서 애들을 돌보고 밥을 한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한국 남자가 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를 성취했다. 아내가 나보다 대부분 잘하지만 요리는 내가 더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컴퓨터를 '심각하게' 잘하는 마취과 의사

그가 미국에서 ‘의사’라는 정체성을 다시 찾는 데는 ‘컴퓨터를 잘 다루는 능력’이 한몫했다. 그냥 잘 다루는 수준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프로그래밍을 했던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는 ‘한국정보올림피아드(Korea Olympiad in Informatics, KOI)’에서 수상할 정도로 전문가다. 국내 최고 IT 영재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상을 받은 그는 “연세대 역사상 최초로 컴퓨터로 특례입학했다.” 당시 특례입학이 전공과 무관했기에 그는 의대를 선택했다.

그의 능력은 미국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의 아내가 다니던 인디애나대학(Indiana University)은 미국의사면허시험인 USMLE(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를 본 사람을 대상으로 환자를 볼 수 있는 ‘Extern’ 제도를 운영했다(현재는 폐지된 제도). 아내로부터 이런 제도가 있다는 정보를 얻은 그는 6개월간 Extern으로 인디애나대학병원에 다니면서 마취과의 홈페이지 제작이나 데이터베이스 관리 업무 등을 도왔다. 그는 어느새 마취과의 IT Provider로 등록돼 월급까지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이후 마취과 레지던트로 지원했고 “이미 과의 일원이 돼 무혈입성하게 됐다.”

“사실 엑셀만 잘 써도 큰 도움이 되는데 프로그래밍을 해서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더 환영받는다. 의대에 다닐 때도 의학적인 면으로 평균을 넘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와 무관하게 나는 ‘유니크(unique)’한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그게 무엇이든 대체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닌가는 중요하다.”

마취과 레지던트 수련을 받은 3년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위계질서가 없는 수평적인 관계’였다. “레지던트 윗년차와 아랫년차 간에 한국과 같은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시를 하고 그 지시를 이행하더라도 동료라는 인식이 강하다. 교수와 레지던트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좀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매우 수평적인 관계다.”

마취과 레지던트의 근무시간은 평균 주당 55시간이다.

“의사가 비즈니스를 배울 기회”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마취과 전문의가 된 그는 Medical Informatics 펠로우 과정을 밟을지 고민했지만 Private Practice를 선택했다.

“오랜 꿈이었던 Medical Informatics를 하려면 최소한 1년은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고 그 이후에는 학계나 산업으로 가게 된다. 우리 가족, 아이들에게는 이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하고 싶었다. 현재는 일주일에 4일 일하고 1년에 8주 정도 휴가를 갖는다. 한달에 4~5번 있는 당직도 일이 없으면 집에서 대기하는 형식이다.”

그렇게 그는 Anesthesia Consultants of Indianapolis, LLC의 파트너 의사이면서 CIO 및 이사가 됐다. ACI-LLC는 Indiana University Health 소속 병원들 위주로 Cardiovascular, Neuro, Trauma, Obstetrics 등 전문 분야 마취 서비스를 제공한다. 웬만한 대학병원 마취과보다 규모가 크다.

“의사로서 비즈니스를 배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의료인 대부분은 아카데믹 영역에서 활동한다. 그래서 비즈니스 분야 경험이 있는 의사가 많지 않다. 의사 그룹이 어떤 형태로 운영되고 어떻게 이윤과 의료서비스의 질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지 공부하고 경험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의사가 되기까지 힘들었던 과정 자체를 미국 생활의 ‘장점’으로 꼽았다. ‘이방인’이기에 실력이 아니면 그 무엇으로도 인정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인턴 시절 능력 부족으로 무척이나 힘들었다. 학교 간판이나 말로 대충 때우는 게 통하지 않기에 자신의 능력이 다 드러난다. 의대 다닐 때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했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생리학이 지금은 제일 자신 있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 있어서 좋은 점도 바닥까지 떨어져서 온전한 내 실력을 발견한 것이다. 실력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나의 억양과 출신 학교로 오히려 실력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환경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미국에서 의사되기’만 생각하는 한국 의사들에게

미국 생활을 후회한 적도 없다.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 나오는 게 정답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미국 의사 생활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 의사, 의대생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문 청년의사와 연세의대가 오는 26일부터 27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컨퍼런스&워크숍 ‘미국에서 의사하기’도 그가 처음 제안했다.

기존 세미나들이 ‘미국에서 의사되기’에만 집중돼 있어 그 속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미국에서 의사로 ‘살면서’ 느낀 점을 한국 의사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가 이번 컨퍼런스에서 이야기할 주제도 ▲매칭의 이해와 수련병원의 선택 ▲아카데미아 밖에서 살아남기 ▲외로움과 차별, 경계인의 삶이다.

그는 “한 가지 길이 모든 것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저항할 수 있는 용기’가 우리의 내일을 더 밝게 할 것이다. 저항할 수 있는 용기의 기반은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에서 의사로 살고 있는 그가 한국에 있는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큰 꿈이 없어도 괜찮아. 세상을 구하지 않아도 괜찮아. 슈바이처나 허준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존경받는 의사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오늘에 충실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나은 하루가 될 수 있도록 그것만 생각해봐. 그러다 보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

송수연 기자  soo331@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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