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증원해도 충실한 의학 교육 어렵다" 우려
증원 전에 필수의료 매진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부터

의과대학 정원 증원만 문제가 아니다. 학생을 뽑은 다음도 문제다. 지금 의학 교육 현장은 늘어난 학생까지 어엿한 의사로 키워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강의하고 실습할 공간과 자재는 물론 교수조차 부족하다.

의학 교육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학생을 밀어 넣는다고 능사가 아니"라고 하는 이유다. 교육 인프라 부족은 교육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헌신할 의사를 키우겠다고 하지만 자칫 의사 양성 기반 자체를 해칠 수도 있다.

청년의사는 최근 의대 정원 증원 논란을 의학 교육 차원에서 살펴봤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신찬수 이사장(서울의대)과 대한의학회 정지태 회장(고려의대), 한국의학교육학회 윤보영 총무이사(인제의대)가 답했다.

의과대학 정원을 증원해도 의대가 증원 수만큼 교육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의학 교육 부실화를 불러온다는 지적이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의과대학 정원을 증원해도 의대가 증원 수만큼 교육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의학 교육 부실화를 불러온다는 지적이다(사진 출처: 게티이미지).

-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증원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현재 의학 교육 현장에서 감당 가능한 규모인가.

윤보영: 100명 정원 의대를 동시에 10개 신설한다는 소리다. 기존 의대에서 수용 불가능한 숫자다.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100명 들어가는 공간에 200명을 밀어 넣을 수는 없다.

정지태: 제대로 된 교육은 사실상 못 한다고 봐야 한다. 애초에 많이 보낸다고 그만큼 의사가 나오지도 않는다. 교육 과정에서 탈락할 수도 있고 난이도에 따라 국가고시 합격자가 크게 줄 수도 있다. 의학회 차원에서 계속 문제 제기를 했지만 복지부 담당자가 모두 교체돼 소용없어졌다.

신찬수: 단순히 계산해도 각 의대 정원이 약 30% 늘어난다는 건데 이 수준이면 현장 혼란은 불가피하다. 이미 겪어보지 않았나. 5년 전 폐교한 서남의대 정원을 나누면서 당시 전북의대 정원이 30% 정도 늘었다. 그러면서 전북의대가 큰 혼란을 겪었다. 이와 마찬가지다.

-그럼 실제 의대 정원 증원이 결정될 경우 마지노선은 몇 명인가.

윤보영: 당장 의대 교육 환경을 바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마지노선은 높게 잡아도 300명이다. 현장에서는 500명까지도 각오하고 있다지만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정지태: '제대로 잘' 교육 가능한 선은 200~300명 선이 최대다. 그 이상을 넘으면 그저 감당해 내는 거지 제대로 교육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의학 교육 질이 크게 떨어질 거다. 부실한 교육에서는 부실한 의사만 나올 뿐이다.

-증원 규모 외에 실제 교육 과정에서 벌어질 문제는.

윤보영: 최근 의학 교육은 강의 위주를 벗어나 소그룹 학습이 많다. 실험·실습할 공간도 필요하다. 학생이 늘면 그만큼 물리적 공간이 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대마다 과연 공간 여유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교수들 사이에서 '오전반 오후반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찬수: 의학 교육에 필요한 제반 시설은 단기간에 갖추기 어렵다. 그러나 교육부가 정원은 줘도 강의실 지을 예산은 안 준다. 더 큰 문제는 교원이다. 임상의학은 진료 분야에서 사람을 불러오더라도 기초의학은 지금도 교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정지태: 지방은 고사하고 수도권조차 의대 교수를 못 구해서 난리다. 서울 대형 의대도 교수가 부족하다. 있는 교수도 나간다. 지방에서 서울로 교수들이 이동하는데도 그렇다. 의대가 더 투자할 여력도 없다. 의학 교육 부실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정치권 시각은 다른 듯하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전임 교원 수가 충분하다고 발언했다. 교원과 학생 비율만 두고 보면 '개인과외 수준'이라고도 했다.

신찬수: 이렇게 언급할 가치도 못 느낀다. 의대는 일반대보다 교육 과정에 더 많은 교원이 필요하다. 미국 하버드대를 예로 들겠다. 전체 교수 인원이 1만2,000명인데 그중 의대 교수가 9,500명이다. 이 정도는 돼야 소위 '일류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필수의료 살리기와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서 증원은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늘고 있다. 증원이 불가피하다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전제 조건은 뭔가.

정지태: 의대생들이 필수의료 현장에 나아갔을 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놔야 한다. 수가를 현실화하고 부당한 사법적 책임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증원은) 그다음 문제다. 해결할 문제는 내버려 두고 사람만 몰아붙여 해보겠다는 건 더 이상 용인되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이를 단순히 의사 이기주의로 치부해선 안 된다.

윤보영: 의학 교육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의대 과정에서부터 필수의료와 지역의료를 강조하고 제대로 경험하고 훈련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의사가 지역에 가길 바란다면 의사가 지역에서 교육받고 수련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 해외는 이를 위해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했다. 이런 부담은 감수할 생각 없고 단지 '몇 명 늘렸다'고 보여주기에 빠지면 안 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