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전공 의대 진학 허용 → 대통령실 "검토도 안 했다"
의료계 우려·불만 속출…"2020년 단체행동 재현될 수도"

정부가 자율전공학부생의 의과대학 진학을 허용한다는 보도에 의료계가 다시 뒤집혔다. 이번에는 교육부 장관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대통령실은 "검토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발언이 나온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본다. 자칫 '제2의 의전원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9일 공개된 복수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 겸 부총리는 자율전공학부 의대 진학 금지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대학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의대 쏠림 방지책으로 "반응이 긍정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나온 대통령실 입장은 달랐다. 이도운 대변인은 "검토한 적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 역시 "입시 정책이 어떤 아이디어로 나와선 안 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관련 움직임에 의료계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사진은 지난 19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혁신 전략회의'에서 국립대병원장들을 만난 윤석열 대통령(사진 출처: 대통령실).

의료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설령 자율전공학부 진학을 허용해도 의대 쏠림 부작용은 못 막는다고 했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불러온 폐해를 답습할 뿐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이날 청년의사와 통화에서 "의료계와 사전 협의가 전혀 없던 내용"이라면서 "이미 실패한 의전원 정책을 부활시키는 셈이다. 소위 '있는 집 자식'이 의대에 가기 위한 의례적 장치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자율전공 2년을 마치고 3년차에 의대에 진학한 학생과 처음부터 의대로 진학해 2년간 의예과(예과) 과정을 거친 학생 간 교육 수준을 어떻게 맞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교육은 물론 대학 내부 혼란도 불가피하다"고 했다.

1,000명 증원 논란처럼 정부가 원칙 없이 의대 정원을 다룬다는 방증이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 장관 발언은) 국립의대를 중심으로 (증원 규모) 1,000명을 채울 수요를 창출하라는 (대통령실) 주문을 받고 방안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궁여지책 중 하나로 보인다"고 했다.

尹 정권 못 믿겠다는 젊은 의사들…"투쟁 기폭제 될지도"

교육부와 대통령실 간 '해프닝'을 지켜본 젊은 의사들은 허탈하다고 했다.

서울 소재 의대 의학과(본과) 3년 A씨는 "장관 발언이 진짜여도 아니어도 문제다. 정책을 '아님 말고' 식으로 한다. 의료계가 반발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벌어지는 일"이라면서 "자율전공 의대 진학을 허용한다는 말도 똑같다. 의대생이나 의대를 목표로 하는 최상위권 수험생 노력을 무시하니까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했다.

젊은 의사들은 '검토도 계획도 한 적 없다'는 대통령실 입장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에는 여론에 밀렸지만 언제든지 재추진하리란 전망이다.

또 다른 의대 예과 2년 B씨는 "의대생들이 막무가내식 증원은 안 된다고 하면 '고작 수능 한두 개 더 맞은 주제에 유세 떤다'고 비웃더니 이제 수능 6등급도 의대 가게 생겼다"며 "장관 혼자 지어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에서) 의대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다시 추진할 거라 확신한다"고 했다.

경남 소재 대학병원 외과계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C씨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었는데 뒤늦게 그런 적 없다고 하면 죽은 개구리가 살아나느냐"면서 "오히려 시끄럽게 울던 개구리도 죽었겠다 후일 더 편하게 난리 칠 판을 깐 셈"이라고 했다.

C씨는 "의료계가 경악할 일만 골라서 벌이고 있다. 현 정부의 얼마 안 되는 재주라면 재주다. 의사가 반대할 일을 하나하나 실현하는 게 내년 총선 대비 '승리 계획'인 듯하다"며 "앞으로 또 뭐가 올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2020년 정부 의대 입학 정원 증원 정책 등에 반발해 의료계가 단체행동에 나섰지만 OECD는 의사 증원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이번 자율전공 의대 진학 허용 논란이 지난 2020년 단체행동 같은 의료계 투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자율전공 의대 진학이 정부 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기폭제로 삼자는 의견도 나왔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여론 전환'에 이용하니 의료계도 정부 정책을 '국면 전환'에 쓰자"는 것이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전공의 D씨는 "지난 2020년 단체행동도 공공의대 학생 선발 기준 논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공정하지 않다는 감각이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자율전공 의대 진학도 똑같다"면서 "한 번 불 붙으면 타오르는 건 순식간이다"라고 했다.

자율전공 진학 허용은 "대학 전체를 의대화"…'손해 없다' 시각도

의대도 이번 발언이 단지 이 장관 개인의 '아이디어'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자율전공 의대 진학이 해결책도 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신찬수 이사장(서울의대)은 "최근에 (정부에) 그런 의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협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는 없다"며 "사실이면 입학 정원 운용이라 총장이 결정하고 의대는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 장관이 밝힌 대로면 자율전공학부 정원 상당수가 '의대 예비군'이 된다고 했다.

신 이사장은 "소위 '의대 광풍'이 대학 입시를 넘어 대학까지 1~2년 더 연장된다. 온 대학이 의학과가 돼버린다. 과거 의전원 시절에도 정원 10배 가까운 학생이 몰렸다"며 "정말 하더라도 아주 제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지역 의대 E 학장 역시 "대단히 위험한 정책이다. 도리어 이공계를 피폐화하고 의료계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우려했다.

E 학장은 "지금도 공대나 자연과학대에서 의대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 (자율전공에서 진학을 허용하면)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일반대나 이공계에 절대 남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한 정부 정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용 급조 카드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한편 의대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마찬가지로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의대 F 학장은 "실행에 옮긴다면 (의료계) 대부분 반대하겠지만 의대만 놓고 보면 손해는 아니다. 오히려 일반대나 생명과학대 등이 반대할 사안이다. 의전원 때와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예과 정원 1.5배 수를 뽑으면 학생들 스스로 경쟁한다. 자율전공학부에서 의대로 진학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고 경쟁을 거쳐 학생이 들어온다면 상관없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